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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OK Aug 25. 2020

1화. 술,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처음 술을 마셨던건 중학교 1학년, 친구네 집이었다.

초등학교가 집에서 100걸음 떨어져 있던 나는 자유가 없었다. 집에가면 항상 엄마가 있고, 어디서 무얼 하는지 항상 보고해야 했다. 그러다 집에서 버스로 4정거장 떨어진 중학교에 들어가자 신세계가 열렸다.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이 있는 친구를 만난것이다.


학기 초 친구가 집에 나를 초대했다. 언덕 중턱에 있는 그 집은 나무 울타리가 쳐진 작은 정원이 있었다. 현관에 들어서자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1층인줄 알고 들어온 곳이 사실 2층인 특이한 집이었다.

'우와..이런곳이 있구나.'

처음 접해보는 집구조에 놀라고 있는동안 친구가 아래층 냉장고에서 시원한 맥주 2캔을 가져왔다.

"우리 이거 마시자."

친구는 익숙한 듯 캔을 따서 마시곤 TV에서나 보던 '캬~' 하는 소리를 냈다. 왠지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어 나도 늘 있던 일이라는 듯 캔을 따서 차가운 맥주를 삼켰다. 따가운 탄산이 목구멍을 때렸고 '캬~'하는 소리에 비해 알 수 없는 맛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른채 나의 술 첫 경험은 끝났다.


그렇지만 이때가 내가 술을 시작한 때는 아니다.


겁이 많았던 나는 성인 이전에 술을 마시면 뇌세포가 죽는다는 속설을 철썩같이 믿는 청소년이었고* 중학교 이후 외떨어진 천주교 학교에 진학하여 술을 접할 일이 없었다.

*2017년 뉴욕 주립대에서 뇌세포하고는 상관없다고 발표하였습니다.

학교 도서관 수녀님과 친하게 지내며 마음의 평화를 찾은 나는 심지어 수녀가 되어 이곳에 계속 남는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술과는 점점 멀어지는 삶을 살던 내가 다시 술을 마신건 2008년 1월 1일이었다.



새해 첫 날을 이태원 바에서

성인이 되는 2008년 1월 1일 고등학교 친구들 3명과 같이 이태원 바에 갔다. 해밀턴호텔 건너편 2층에 위치한 바였다. 2008년의 이태원은 외국인이 더 많았던 시기라 갓 20살 된 한국인 4명이 들어서자 이목이 집중됐다. 목재로 장식된 바는 서양인들의 키에 맞춰진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 우리는 의자에 기어올라 앉아 다른사람들이 마시는 생맥주를 시켰다. 여전히 무슨 맛인진 모르겠지만 성인으로 바에 들어와 술을 시켰다는 점이 멋진 어른이 된것 같아서 신이 났다. 친구들도 들뜬 기분으로 잘 알지도 못하는 맥주 맛에 대해 떠들어 댔다. 이건 이 안주와 먹어야 맛있다느니 하며 다들 맥주 전문가처럼 굴었다.


그때 옆테이블에서 흑인이 다가왔다. 자신을 프로 축구 선수라고 소개한 그는 자신이 한국에 어떻게 오게됐는지, 한국 음식은 무엇이 맛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테이블에 있던 백인이 한국 음식은 불고기가 최고라며 대화에 합류했다. 우리는 처음 바에 와본거라 얘기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 자신의 '바보같았지만 즐거웠던 첫 바'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너희 포켓볼 치지않을래?"


모여든 사람들 중 섹시한 검은 슬릿 롱드레스를 입은 여자분이 제안했다. 안그래도 바 한켠에 마련된 포켓볼이 궁금해서 대기자에 이름을 적어놓은 터였다. 그분을 따라 포켓볼이 있는곳으로 이동했다. 내 키만한 큐대를 어떻게 드는지 몰라 '정석'을 물어보자,


"그런게 어딨어, 자기가 쥐고 싶은 대로 쥐는거지."


하며 벽에 등을 비스듬히 기댄채 한손으로 큐대 끝을 오토바이 핸들 쥐듯이 쥐곤 하얀 공을 탁 쳐냈다. 하얀공은 다른색 공을 정확히 때렸다. 색깔있는 공이 모서리에 있는 구멍으로 들어갔다. 그 여자분은 처음보는 다양한 포즈로 공을 밀어 넣었다. 우리는 어디선가 봤던 당구치는 모습을 따라하며 여러번 턴이 돌아 간 후 겨우 게임을 마쳤다.


"나는 서울바에 내기 포켓볼하러 갈건데 같이 갈래?"


그분이 우리에게 왜 그런 제안을 했는진 모르겠으나, 쫄보였던 우리는 모르는사람은 따라가지 말라는 어렸을적 부모님의 지침이 따라 작별 인사를 했다.



열심히 마셨습니다, 그래서 해줄 이야기가 있어요 

나에게 첫 바의 경험은 모험같은 일이었다. 새로운 사람과 모르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어른 같은 풍경속에 있는 내가 좋았다. 술이 음식처럼 맛이 다르다고 했다. 궁금해졌다.


나는 그렇게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술을 마셨다. 와인, 양주, 사케, 막걸리, 칵테일 등 주종을 가리지 않고 마셨다.

그랬더니 술에 관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이미 술을 즐기고 있는 사람, 어쩔수 없이 일때문에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 한가지 술만 고집하는 사람들 모두 더 맛있게 한잔 할 수 있도록 인생의 한조각 즐거움이 될 작은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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