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 시간(4)

오후 7시~ 밤 9시

by 작가지망생

오후 7시16분


저 멀리 해안가를 두고 웅장한 카지노 건물이 보인다. 솔레어 카지노!

나에게 정말 많은 기쁨과 좌절과 분노를 함께 주었던 곳

한국에서 강랜을 다니는 사람들은 강랜을 악마성이라고 부르지만, 이 곳 솔레어는 악마성이 아니라 진짜 중세의 거탑과 같은 느낌이다. 일단 그 규모가 내 느낌상 마카오의 베네시안 카지노와 맞먹는 것 같다.

나는 카지노에 가면 주로 룰렛과 캐리비안포커 그리고 홀덤을 한다

룰렛은 그날의 운을 점치는 정도? 캐리비안 포커가 주 종목이고 어느정도 땄는데 카드를 쪼고 싶으면 홀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원정도박을 온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생계도박을 위해 왔다.

아까 택시비를 내고 남은 돈은 3800페소

우리돈으로 1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아직 그 성냥곽같은 캡슐호텔에는 4만7천페소(120만원이 채 안되는 돈)이 있지만, 난 일단 오늘 이 돈으로 이곳에서 하루 생활비를 벌어볼 계획이다. 일단 숙소는 있으니, 저렴하게 세 끼 식사를 하는 비용(600페소)과 저녁에 시원한 캔맥주와 가벼운 안주 먹을 돈(150페소) 이럻게 750페소만 벌어보기로 한다.

카지노에 들어설 땐 항상 계획이 거창하다

타이슨이 그랬던가?

'누구나 근사함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 대 줘 터지기 전에는!'

오랫만에 들어서며 솔레어 멤버십 카드를 만든다

아마 예전에 흥청망청 도박할 때 진작 만들었었다면 아마 포인트만 해도 충분히 솔레어에서 먹고 자고 열흘은 가능했을 것 같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는 항공기 마일리지나 카지노 포인트카드를 절대 만들지 않았고, 뒤늦게야 그 카드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사실 카드를 만들면 내 플레이 기록이 남아 나의 승률이 좋으면 블랙리스트에 오를 것 같아 안 만들었는데, 나의 승률은 -1000%이니 그냥 헛웃음만 나온다)

안으로 들어가니 룰렛이 나를 반긴다.

하지만 나는 그냥 지나친다

나는 오늘 목숨을 걸고 온 것이다.

내가 갈 곳은 운보다는 실력이 필요한 포커룸이다

이곳 솔레어에서 가장 작은 테이블은 미니멈 바이인이 1000페소인 곳이다 블라인드는 25/50으로 200BB 미니멈 800BB 맥시멈인 테이블이다 (이 내용을 잘 모르는 독자는 인터넷 검색 후 홀덤 규칙을 보기를 바란다)

그 테이블은 이미 만석이다. 나는 대기를 걸어놓고 그냥 곁에서 구경을 한다

필리핀의 솔레어 미니멈 테이블은 거의 로컬 필리피노 뿐이다.

관광객은 최소 50/100 이상에서 놀기 때문이다. 하긴 힘들게 비행기 타고 와서 10만 바이인 게임을 할 이유가 없다.(이 곳 로컬플레이어들은 너무나 타이트한 플레이어들이라 레이즈도 잘 안나오고 그냥 체크가 다반사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압도적인 칩리더는 있다

100페소짜리 칩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아 얼추 봐도 10만페소는 있어보이는 칩리더와 대부분 적어도 칩이 1만페소 이상은 있어보인다

즉, 여기 있는 사람들은 고인물들이다.

심하게는 열흘동안 칩리더를 유지하는 사람도 봤다

원래 규정상은 안 되는 일이지만, 중간중간 알바를 고용해 쪽잠을 자면서 버티는 것이다

난 그들에 비하면 진짜 아무것도 없는 초짜이다

이럴 때 난 아주 순진한 초보인척 연기를 한다

아예 팟 참여를 두바퀴 정도는 안 하는 것이다

그리고 참여를 해도 누가 레이즈를 하면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한숨을 쉬면서 카드를 덮는다

(물론 AK이상 강한패가 나오면 올인을한다)

보통 이러면 한 번 정도는 운빨로 먹을 수 있어 내가 목표한 750페소는 금방 모아야 정상이지만, 그 날 나의 운은 최악이었다

회심으로 들어갔던 AA는 플러시에 넘어가고, 플랍에 플러시 메이드였는데 더 높은 플러시에게 밟히고 정신을 차려보니 나에게 남은돈은 800페소뿐이었다. 게임도 참여도 할 수 없는 돈이다.

숙소까지 택시비는 250페소, 카지노에서 LRT역까지는 걸어서 30~40분, LRT야 한국에서처럼 은근슬쩍 무임승차한다고 쳐도 이 날씨에 걷는 것은 엄두가 나질 않았다.

300페소를 꺼내 여권넣어두는 복대에 깊숙히 넣어둔다

이 돈은 절대 쓰지 말자!

이제 500페소뿐이다. 이 돈으로 할 수 있는 게임은 룰렛밖에 없다

안 될 걸 알면서 돈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내가 그랬다

500페소까지 다 털릴 때까지 걸린 시간은 10분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9시 5분 전이다

카지노란 곳은 돈을 따거나 나의 시드 (자본금)이 넉넉하면 너무나 재미있고 신나는 곳이다. 하지만, 오링나면 그 순간부터는 너무나 냉혹한 장소로 변한다.

일단 택시를 타고 오늘은 쉬기로 마음먹는다

택시 스탠드로 나와 마닐라 밤하늘을 본다

오늘따라 맑고 별이 보이네...

아마 내 인생 가장 처량한 밤9시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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