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추워진단다. 김장 언제 할 거냐ᆢ 올해 김치는 얼마나 할래! 그 집 사장님께 꼭 최상품 젓갈로 부탁해라"
20여 년 동안 김치를 담아 엄마와 동생들까지 챙겨 왔다. 직원들과 유치원생들 식사를 위한 김장까지 매년 오육백 포기의 배추김치와 총각김치, 깍두기, 파김치, 백김치까지 종손집 버금가는 김장을 한 것은 바로 김치에 진심인 우리 엄마 때문이었다.
육쪽마늘을 사야 하는 6월부터 고추구입하는 8월과 9월을 거쳐 각종 젓갈을 준비하는 김장시기 11월이 되면 내 핸드폰은 호떡집같이 울렸다.
" 이 집 고추가 진짜 국산이라니 올 해엔 꼭 거기서 사라."
"작년 젓갈 집은 아닌듯하니 이 가게로 가서 육젓을 최상품으로 사고 잡젓을 섞은 속젓을 사서 액젓에...."
" 생굴이랑 생새우는 꼭 당일에 사야 한다. 청각은 넉넉히 넣고...,!"
엄마의 끝도 없는 지시와 설명에 나는 풍월 읊는 서당개를 넘어 엄마표김치에 특화된 김치 전문가가 되어갔다. 그럼에도 못 미더운 딸을 향한 성화가 이어졌다.
그러다 겨울이 될 때쯤이면 엄마의 반복되는 김치타령 덕에 성깔 사나운 딸과 한 번쯤 얼굴 붉히는 상황이 일어나곤 했다.
TV에 김장뉴스가 나온다. 그런데 내 전화기가 조용하다. 김장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그래 김장 때가 되었구나. 엄마의 빈자리가 이렇게 시작되나'
가을이 한창이던 날 홀연히 떠난 울 엄마, 유난히 좋아하셨던 생김치를 그곳에선 맛보기나 하려나. 젓갈은 맛있는데 배추가 단 맛이 없어 별로라고 한소리 하지는 않으려나.
늘 상관하던 열성을 어떻게 다 놓으시고 못 미더운 딸만 남긴 채 그리 떠나셨나 야속한 마음에 또 눈물이다.
촉촉한 잡곡밥에 매콤 쌉쌀한 갓김치로 맛난 한 끼 차려놓아야겠다. 하늘 가신 우리 엄마 생각하며 한 수저 들다 보면 어느새 엄마가 내 곁에 오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