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히 Dec 14. 2023

멀어지고 다가서는 한 걸음

전재복 작가의 산문집

가을인 듯 겨울인가 싶은 12월이다. 

쏜살 갔은 한 해가 지났다. 았던 기억과 견딜 수 없는  아픔의 시간이  과거로 자리 잡는다. 

그때를 기억하며 후회와 추억이 교차되는 지금 시간이 내겐 최선을 다해야 하는 현재이고 과거이며 동시에 미래이다.

사는 동안 나설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이치일까 생각해 본다.


[한 발짝 멀어지기 한 걸음 다가가기]


전재복 작가님의 평소 모습처럼 제목에서부터 편안함이 묻어난다.


알록달록 고운 낙엽 빛깔의 표지를 넘기며 만나는 이야기들. 손수 가꾼 텃밭 속 못난이 배추의 고소한 맛과 생 무 맛이 어우러져 침을 돌게 한다. 그때 담근 김치맛이 어떨까 궁금증을 일으키는 작가의  평이한 문체는 독자에게 따뜻함과 편안함을 준. 


진실이와 옥정이 부부의 다섯 형제를 한 마리씩 독립시키며 느끼는 미안함은 멍멍이들을 키우는 모든 이의 마음 같아 더 애틋했다. 애완동물을 키우며 가족이 늘어나는 상황이 내겐 기쁨이면서도 동시에 부담이 되었던 경험을 해 본 터였다. 에미 곁을 떠나는 어린 강아지의 눈망울이 마음에 걸려 며칠간 속을 태웠던 기억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다.      


글쓰기 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 일기가 전부였던 내게 수줍은 미소와 잔잔한 설명으로 '느끼는 대로 쓰는 글이 제일'이라고 하시던 선생님. 그녀의 성품이 산문집 [한 발짝 멀어지기 한 걸음 다가가기]에 고스란히 담겨있어서 12월을 보내는 내게 보석같이 귀한 선물이 되었다.


함께 세월을 지내오고 계신 남편과의 애틋한 마음 또한 산문집 곳곳에 연인들의 설렘처럼 표현되어 내 가슴까지 두근거리게 하니 진정 소녀작가가 따로 없다.


'눈발이 하얗게 나부끼는 주차장에 라이트를 켜놓고 한 남자가 연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따뜻한 차 안으로 연인을 맞아들이며 멋진 중년의 그 남자는 달콤한 음악을 깔고 있었다. 하얗게 낙하하는 눈꽃 속 ᆢᆢ

설원 속에 움직이는 건 우리 둘밖에 없는 듯했다.

ᆢ희끗희끗한 머리가 자꾸 빠져서 걱정인 그 남자가 바로 사랑하는 나의 남편이다'(한밤의 데이트 p108)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두 분의 첫눈 데이트가 그림처럼 떠올라 핑크 빛 가슴을 만들어 주는, 마술이 따로 없는 글이.


이제는 장성한 딸이 어렸을 적에 일하는 엄마로서 직장과 가정에서 감당해야 했던 작가의 벅찬 죄의식. '그냥 엄마만 되고 싶어'표현된 글은 지나버린 나의 그때 시간인 듯했다. 동짓달에 하늘로 떠나신 어머니를 그리며 담아낸 딸로서의 불효한 마음. 이 또한 내 마음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가을날 홀연히 가신 내 엄마를 가슴 한가득 쏟아내며 작가와 하나 되는 순간이 되었다.


'영원한 내 것이 없다 하여 아무렇게나 살다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비록 잠시 빌려서 살다가는 살림살이일망정 알뜰하고 정갈하게 그리고 윤기 나게 살아야 할 것 같다. 돌아보면 좀 더 열심히 살지 못했음이 후회스럽고 좀 더 너그럽지 못했음이 부끄럽기만 하다.' (저무는 계절에 p171)


잠시 왔다 가는 인생길. 우리 모두가 아무렇게 가 아닌 '열심히'란 이름의 진실되게 살아가는 오늘이기를 바라본다.

떠나는 시간 앞에서 좀 더 너그럽게 살며 저무는 계절을 만들고 싶은 12월의 저녁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름답게 늙어가는 묘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