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히 Mar 24. 2024

첫선 보던 날

우연과 필연사이의 콩깍지

"나는 결혼 안 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다섯을 둔 엄마는 그날도 중매얘기로 큰 딸과 입씨름 중이었다. 연애   해본 큰 딸은 결혼보다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다. 대학원공, 연극에 다니는 방송국 일도 더 잘하고 싶었다.

그녀에게 결혼은 순위에 없는 그저 엄마의 로망 같은 남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  엄마의 주장이 강온 양면으로 만만치 않았다.


"총각이 성격 좋다지, 직업은 전문직에 집안도 좋은데 왜 싫어! 니가 뭐 잘 났다고!!ᆢᆢ

이번 한 번만 만나 봐, 선보라는 말 다신 할게. 엄마가 진짜 약속한다"


그 말에 넘어간 딸은 생전처음 맞선 아침, 엄마  이끌려 미용실까지 가게 되었다. 미용실 원장은 선자리에 나가는 단골손님의 딸을 위해 심혈을 기울이며 작품 같은 헤어스타일을 만들다.

내키지 않던 머리단장에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꾹 누르던 딸은 거울 속  자신을 본 순간 거품 물고 쓰러질 만큼 놀랐다.  

미스코리아가 울고 갈 정도로 힘이 들어간 '사자머리'모습이 영락없는 연말 시상식장의 연예인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쩔 줄 몰라하던 그녀는 결국 앞에 놓인 물 스프레이를 자신의 머리에 사정없이 뿌려댔다. 순식간에 비 맞은 생쥐꼴이 되어버린 딸의  모습에 사색이 된 건 엄마가 아닌 미용실 원장이었다.

이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딸은 갖고 있던 고무줄로 젖은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집으로 버렸다.

목소리를 높이며 따라 들어온 엄마의 불호령이 속사포처럼 이어졌다.


" 지금 무슨 짓이야!!

몇 시간 공들여 만든 머리를 왜  맘대로 엉망을 만들어서 이 사달을 일으켜!

내가 진짜 남부끄러워서 그 원장님 얼굴을 어떻게 다시 볼까나!!..,  아오 진짜  불같은 성질머리를 누가 감당할 거냐고!"


대꾸도 않고 식식거리며 맞선 시간만 확인하던 딸의 생각은 오직 하나였다.


'참자 참자, 오늘 맞선으로 결혼얘기는 끝이니까'


하지만 아침부터 시작된 엄마의 성화는 미용실이 끝이 아니었다. 딸의 인내심을 건드리며 그날 입고 나갈 옷에서 결국 정점찍었다.


맞선을 보던 날은 7월  여름 장마가 오려는 듯 후텁지근 날이었. 그런데 엄마가 선택한 딸의 의상은 난데없는 긴소매의 와인색 원피스였다.  

가을 분위기가 가득한 옷은 누가 봐도 한참 더워 보이는 차림이었다.

 

미용실 소동으로 심정이 상한 딸은 절대 안 입겠다고 울며 불며 소리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원피스가 백설공주의 드레스이자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인엄마는 요지부동이었다. 자신의 선택이 딸을 위한 사랑이자 의무라고 믿는 엄마 불타는 의지 가족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등에 나는 땀을 삐질대며 나간 맞선 자리에 당연히 먼저 와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 조건 빵빵 총각은 안보였다. 불같이 성깔을 부리며 집에 가겠다는 딸을 엄마가 말리던 그때 주인공 총각이 급하게 들어왔다.


그 시절 선의 경험은 수많은 얘기들로 추억이 되며 또 다른 사연을 만들기도 한다. 말 많고 탈 많았던 딸의 처음이자 마지막 맞 스토리는 그렇게 이어진다.


세월이 한참 흐른 어느 날 맞선 총각이 말했다.


"당신 그날 입고 나온 원피스와 헤어스타일이 너무 잘 어울렸어. 지금도 그때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온갖 성화를 대며 내 화를 돋우던 그 엄마의 선택이 남편에겐 최고의 콩깍지가 되었다. 우연인지 인연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  이 운명을 엄마는 알고 있었까.





매거진의 이전글 쉼이 성장이라는 아들을 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