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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히 Mar 24. 2024

술 취해 죽을 수도 있었다

주사와 고백

세상 태어나 처음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던 날이었다.  그것도 40도를 웃도는 버번위스키를 겁도 없이 병나발 불었던 그때 나는 신혼이었다.

결혼의 환상과 현실의 괴리를, 이기지 못할 술로 피해보려다 취중고백  되었던 그날.


밤늦게 들어온 남편은 큰 대자로 뻗어있던 내가 극단적 선택을 한 줄 알았단다. 술 마시고 죽는 여자가 어디 있냐며 남편에게 무지하다고 했던 내가 진짜 무식했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대학 새내기들이 선배들의 강압에 마신 술로 목숨을 잃었다는 믿지 못할 뉴스에 눈이 번쩍 뜨이며 말문이 막혔다. 


'진짜 죽을 했구나.'


첫 선에서 만난 남자가 남편이 되었고 감당 안되던 하루하루가 피할 수 없는 불행 같았다. 입에도 못 술이 그날 내 온몸과 정신을 지배하며 정신을 잃게 했다. 


술주정에 울고 불며 헛소리하는 나를 의식한 것은 아침이 밝아 올 때쯤이었다. 옆의 남편은 주사로 밤새 떠드는 내게 "그래 그래, 알겠어"라는 영혼 없는 대답을 하고 있었다. 정신이 확 들며 확인한 주정의 주제는 나를 좋아했다는 대학시절 선배얘기였다. 이렇게 잘 나갔던 내가 당신을 만나 찬밥신세가 된 사실을 알기나 하냐는 넋두리였던 것이다.  난데없고 황당한 상황에 밤새  얘기 또 하고 또 하내가 감당이 안되었을 남편이었다. 사태파악 후 계속 취한 척 떠들자니 할 말이 없었조용히 입을 닫자니 남편 눈치가 보여 쥐구멍이라도 찾고 다. 할 수 없이 조용히 훌쩍거리는 내게 남편의 한마디.


"당신 마음 알았으니 그만 울고 잠 좀 자자."


30여 년 전 내가 마신 버번위스키의 이름은 고백주가 되었. 독한 술로 필름이 끊긴 채 뜬금없는 고백의 밤을 보냈던 나는 그  술과의 인연은 영영 끝이 났다. 가끔 가슴 울리는 드라마 한 편으로 안과 행복이 필요할  맥주 한잔이 딱이다.


은유작가는 말했다.

'은 존재의 해방구다.'


내겐 술이 바로 고백의 해방구였을까.

지금도 술 한잔에 세상이 빙빙 돌며 나를 해방시키는 묘약이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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