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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히 Jul 05. 2023

선물이 기가막혀

부부는 웬수

부부는 전생에 원수가 만난다고도 하고 부부는 오래 살면 닮는 다고도 하니 남편과 나는 이제 서로 닮은 원수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남편은 모처럼의 연휴를 자신의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나 또한 아무렇지 않은 태연함으로 ‘ 그래라고 대답했다. 내 일에 열중하는 나! 역시 우리는 닮은 부부 맞는 듯하다.


대부분의 여자라면 

이 연휴에 가족여행을 해도 모자랄 판에 무슨 남자들끼리의 여행이냐

남자들끼리의 여행 맞냐?”

 남편 속을 뒤집어 놓는 말로 분위기 험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나는 쿨 한적 잘 다녀오라는 말로 상황을 종료했다.     


하지만 속으론 오만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었


남자들끼리 무슨 해외여행?  진짜 자기들끼리만 가는 거 맞아?’에서부터

하긴 남편들도 나름 수다 떨며 스트레스 풀고 싶겠지, 그렇다 해도 좀 웃기네 혼자 자문자답하며 불편한 마음을 다독였다.          


드디어 여행을 위해 문을 나서는 남편에게 다시 쿨하게 한 마디 전했다.

"즐겁게 지내다 와! 돈도 아끼지 말고 좀 쓰면서 여유 있게 ~~"     


평소 무척 알뜰한 남편의 소비성향을 알기에 선심 쓰듯 당부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사실 집에 혼자 남은 아내를 위해 괜찮은 선물도 잊지 말라는 나름의 당부가 곁들여진 인사였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이런 상황에 특별한 당부가 없다 해도 아내를 위해 선물하나 정도는 준비하는 것이 예사겠지만 이런 당연한 순리를 알 리 없는 남편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집을 나섰다.

 

사실 여행은 내가 더 자주 다니며 원하는 것들을 쇼핑하는 성향이다. 남편이 사 오는 무언가에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사람 마음이 꼭 그렇게 논리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사실 여행에 함께한 지인들은 남편과는 다른 소비성향의 사람들이었기선물에 거는 내 나름의 기대가 있었다.    

'그래 저 원장님들이 와이프들 선물을 쇼핑할 테니 세상 눈치 없는 내 남편도 뭔가 괜찮은 선물을 준비하겠지 ~~!!'     

       

드디어 여행을 마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을 보며 여행 가방 속이 너무나 궁금 했지만 나는 예의상 의미 없는 질문을 던지며 눈치를 살폈다.          


"잘 다녀왔어? "여행은 어땠어?" "어디가 가장 좋았어?"

"응 그냥 그렇지 아휴 피곤하다.  쉬어야겠어"     


'아니 며칠간 여행하며 쉬고 왔으면서 오자마자 쉬고 싶다고!!'          


어이없는 마음을 뒤로하고 저녁준비를 위해 부엌에서 한참을 보내다 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발견한 화장대 위. 작은 선물상자!

상자의 크기가 애매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선물과도 매치가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잔뜩 기대하며 열어본 상자 안엔 뜨악!

그건 바로 손     "푸하하하!!!"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큰소리를 내버렸다.    


'아니 뭐야 이별하자고? 아님 다음 생에 다시 만나자는 정표?'ㅋㅋㅋ          


이런저런 상상으로 혼자서 피식대고 깔깔대다 저녁 밥상 앞에 남편과 마주 앉았다.


"자기, 왜 손수건에 이별편지는 없어? 손수건은 편지랑 세트로 주는 거야"


살짝 옆구리 찔러본 내 한마디에 뒷목잡고 넘어가게  대답.


"으응, 그 손수건은 김 원장 쇼핑하고 받은 사은품이.

 당신은 선물 안 좋아하잖아!!"

      

세상에, 결혼 35년 차 남편의 해외여행 선물이 손수건, 그것도 사은품이라는 웃픈 시추에이션을 어찌할까!


소비가 불편할 뿐만 아니라 돈의 가치를 쓰지 않고 모으는데 의미를 두는 남편. 소비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아내인 나. 이렇게 서로 다른 우리가 부부가 된 사실이 더 기막힌 운명 시작일지도 모른다. 35년을 살았는데도 여전히 남편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못하는 나의 어리석음에 스스로 헛웃음만 났다.     

            

늘 어이없는 실망과 허무로 끝나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이건 너무 허망한 리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이 접어 넣어둔 손수건은 남편의 심오한 마음, 우리의 정표라고 마음먹었다.

내 남편과 나는 진짜 ‘닮은꼴 원수 부부 맞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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