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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히 Jul 09. 2023

나는 시장에서 노는 여자

비 올 땐 역쉬 부치개죠~


"슬플 땐 화장을 해요"

좋아하는 노래 제목이다.


'나는 슬플 땐 뭘 하지?'


나는 기분이 우울할 땐 재래시장에 간다.

생각해 보니 마음이 꿀꿀하거나 심심해도 시장에 갔던 것 같다.


늘 그 자리에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맞는 상인들의 정이 느껴지고 북적이는 발길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니 특별한 이유 없이도 가게 된다. 오랜 동안 다니던 가게주인들과 노점상 할머니의 툭 던지는 한 마디도 마음을 열게 한다.


"왜 이렇게 오랜만이랴"

"오메, 이번에도 깎을라고? 그럼 못써~"


"좀 바빴어요^^"

"알았어 할머니. 안깍을께 그냥 다 주세요"


사는 게 별거 아님을 시장에서 느끼고 사람이 행복임을 그곳에서 실감한다.


곧 장마가 시작된다더니 지뿌둥한 하늘이 금방 비가 쏟아질 듯 우거지상이다. 심심하던 차에 시장나들이에 나섰다.


시장 입구의 수십 년째 다니는 단골 가게에 오늘도 신선한 생선들이 가득하다. 제철을 맞은 서대가 찌게거리로 안성맞춤이고 큼지막히 퉁퉁한 생갈치가 실하니 탐난다.

싱싱한 오징어가 눈에 띄게 반들거리고 방금 들어왔다는 생합이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이것저것 골라 계산을 마치고 시장 안쪽 채소 노점할머니를 보니 고구마순을 다듬는 손끝이 새까맣다.


"할머니, 고구마순 맛있겠다"

"겁나 맛나지, 다듬기 힘들어서 그러지. 얼마 값 주까"


정겨운 흥정에 잔뜩 산 삶은 고구마순 무게가 묵직하다.

바로 옆집 생새우 까는 친구할머니가 나를 불러 세운다.


"오늘은 새우 안살텨? 물이 겁나 좋은디"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큰 그릇으로 사고 덤까지 받고 나니 임무완성인 듯하다.


맡겼던 생선을 찾아 나오면서 참새 방앗간에들러 붕어빵 한 봉지까지 안으니 세상 행복이 따로 없다. 이것저것 산 물건들을 차에 싣고 앉아 한입 베어 문 붕어빵 단팥맛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오메 꿀 맛이네, 맛있어라"


차창밖의 장대비는 사정없이 쏟아지지만 집으로 오는 길이 이유 없이 룰루랄라 즐겁다.

낑낑대며 집까지 옮긴, 겁 없이 많이 산 음식 재료들을 씻고 정리하자 냉장고가 다시 포화상태다.

잠깐 갈등 속에 결론을 내린다.


'아냐, 이 실한 애들을 냉동의 상태로 보낼 순 없지'


마음을 다잡고 바로 지금, 요리모드로 돌입한다. 풋고추와 양파, 대파로 갖은양념과 함께 제철생선인 서대에 큼지막한 생합을 넣어 서대찌개를 준비한다. 퉁퉁한 갈치에 고구마순을 깔고 끓인 갈치찜에 벌써 침이 넘어간다. 마지막으로, 장마로 이어지는 비 오는 날에 부침개가 빠지면 섭하다. 냉장고 속 부추와 남은 야채들에 탱글탱글 깐 새우를 넣어 만든 부침개 반죽까지, 완벽한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머릿속으로 벌써 진수성찬이 그려지며 필요한 재료들을 손 빠르게 준비하고 요리할 냄비들에 불을 붙이는 나는 시장쇼핑을 즐기는 주부 9단 아줌마? 아~니, 장마를 즐기며 시장에서 노는 여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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