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동문들과 합창으로 하나 되는 시간이 한 주의 피로를 싹~~ 풀어주니 치료제를 마시는 기분이 따로 없다.
그날도 목청껏 소리를 내며 다음 달 정기공연에 나도 한몫을 하리라 열심을 다하는 중이었다.
'번쩍!' 빛이 나는 가 싶더니 꺼지고 다시 켜지는 핸드폰 화면이 심상치 않았다. 부르던 노래를 멈추고 얼른 화면을 두드리며 확인을 했지만 감감무소식, 느닷없이 먹통이 돼 버렸다.
다들 각자의 파트음정에 집중하며 화음을 모으는 시간에 나 혼자만 미동도 않는 핸드폰과 신경전을 벌이고 있자니 미안하고 무안했다. 눈치 빠른 옆자리의 후배는 속삭이듯 말한다.
"선배님, 얼른 AS센터로 가보세요, 더 늦기 전에 "
망설이던 나는 악보도 안 챙긴 채 뒤도 보지 않고 일어서나와 센터로 달려갔다. 하지만 이미 업무가 끝난 뒤였고 근처의 핸드폰 가게로 들어가 사정얘기를 했지만 수리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갑자기 먹통이 된 핸드폰을 손에 든 나는 길 잃은 고양이가 된 듯 합창연습도, 집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헤매고 있었다. 어두워진 거리에서 핸드폰 관련상점들을 뒤지듯 찾았지만 모두 불 꺼진 상점들뿐이었다. 문을 열었다 한들 핸드폰 수리는 불가능한 걸 알면서도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핸드폰 수리가 가능한 가게를 찾아봐야겠다!ㅡ핸드폰이 안되잖아!"
" 내일 AS센터 문 여는 시간이 언제인지 확인해야지 ㅡ핸드폰이 안되잖아"
"근데 센터가 이전한 것 같은데 위치 좀 알아놔야잖아ㅡ핸드폰 안된다니까!!!"
나는 마치 1인극을 하는 연극배우처럼 혼자서 묻고 답하며 합창 연습실 앞 차 안에서 정신 나간 듯 중얼거리고 있었다. 한참을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만 보내는 나 자신이 그렇게 우습고 한심 할 수가 없었다.
핸드폰 고장이 주는 무력감에 힘이 빠진 채 연습실로 들어선 내 표정을 본 후배는 아무 말없이 악보를 펴주며 노래에 집중했다. 잠깐의 휴식시간에 나는 후배에게 해결 안 된 상황을 설명하고 그녀의 핸드폰으로 AS센터 정보를 확인했다.
다음 날 아침, 센터 운영시간 한참 전에 도착한 나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줄을 서서 순서가 되길 기다렸다.
내 차례가 되어 도움을 줄 기사님에게 핸드폰을 맡기며 전후 상황을 설명하고 나니 전날 저녁부터 좀 전까지의 답답했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무슨 못난 마음인가!!
한참만에 호출된 내 이름에 후다닥 달려가니 멋쩍어하는 기사님의 목소리가 아득했다.
"고객님, 아무래도 수리가 안될 것 같습니다.그리고 ᆢ 핸드폰 안의 데이터 복구가 불가능하겠습니다"
" 네? 그게 무슨 뜻인가요!"
핸드폰 안의 메인보드가 고장의 원인이어서 아무것도 손볼 수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평소 핸드폰의 고유기능인 전화기와 카메라, 메모장과 음악파일에 인터넷까지 다양하게 사용하면서도 자료나 데이터의 백업에 대해서는 무심하게 남의 일처럼 생각했던 나였다. 이런 부주의가 오늘의 비극을 만들었지 싶으니 누구를 탓하랴 싶었다. 더구나 이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이것저것 확인하는 기사님의 질문에 아는 게 거의 없는 내가 좀 창피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뭐 어떡하랴. 심혈을 기울여 찍은 그 멋진 사진들, 생각날 때마다 끄적거린 짧은 글들과 제삿날이나 가족들 주민번호 같은 정보들을 모두 날려버린 내가 그 주범인 것을 ᆢ
새 핸드폰을 구입해 돌아 나오는 나에게 친절한 기사님은 또다시 한마디 하신다.
" 혹시 더 예전에 사용하시던 폰이 있으면 가지고 오세요. 그 안에 남은 데이터라도 확인해서 다시 저장해 드릴게요"
"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집에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기사님 너무 감사해요"
다행이었다. 이게 바로 기사회생의 심정이지 싶었다. 무거운 짐덩어리를 안은 듯 불편했던마음이 손에 든 새 핸드폰과 함께 사라지며쏜살 같이 집으로 달려가는 내 가벼운 기분을 누가 상상 할 수 있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