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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히 Jul 05. 2023

세상에 꽃이 필 때

내가 받은 감사


알록달록 꽃무늬 장화와 핫핑크 도우미 작업복 앞치마의 매치가 패셔너블하기까지 하다.

그 위에 흰색 위생모자를 착용하자 화룡점정 우리는 영락없는 주방 도우미 아줌마들이었다.


한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는 나와 5명의 회원은 급식봉사를 위해 복장을 갈아입은 후 종합 복지회관의 조리실로 안내되었다.


그곳은 이미 여러 명의 조리담당 직원들과 봉사자들이 점심식사를 위한 재료 준비로 분주했다. 우리는 담당 조리사의 설명을 듣고 채소 다듬고 씻기, 반찬 정리와 김치 썰기를 마쳤다. 배식전 잠깐의 휴식시간에 직원 중 한 분과 얘기하게 되었다.


"예전에 내가 교사로 재직할 때 아이들이 많이 활동했던 단체인데 봉사 오셨네요"


"교사셨어요? 퇴직하시고 좋은 일 하시네요"

"건강하면 어떤 일도 즐겁죠. 이곳 봉사 끝나면 오후엔 발달장애학교 봉사가 또 있어요"


70이 넘었다는 그분은 처음 보는 내게 자신의 하루 일과를 담담하게 말하고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 자신의 일을 했다.


배식이 시작되고 우리는 각자 맡은 음식 앞으로 밀려드는 사람들을 위해 적당한 양의 음식을 담으며 바쁜 손길을 움직였다.


"밥은 조금만 주세요"

"생선은 많이 주고 김치는 주지 말아요"

"국은 안 먹으니 채소를 더 주고 밥도 더 줘"


다양한 요구에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며 식사하러 온 복지관 사람들에게 집중했다.

그때였다.


"더 주라고! 왜케 반찬을 쪼금씩 주냐고! 그걸로 어떻게 밥을 먹겠어!!"


고함을 치는 한 남자의 호통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배식하던 우리는 놀라 움직이던 손을 멈춘 채 그대로 서있었다.

그 순간 주방장으로 보이던 나이 지긋해 보이는 한 분이 조용히 그러나 친절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아 예~~ 많이 드려야죠! 걱정 마세요. 원하시는 만큼 드릴 테니 식사하시고 계세요!"


희번덕 거리며 화를 내던 그 남자는 아무 일 없었던 듯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다시 배식을 시작한 우리는 서로에게 속삭이듯 주방장 아저씨의 행동에 놀라면서

'와 대박 멋지다'를 반복했다.


무료급식을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사를 표하지만 가끔은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정도 이상의 화를 내는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그래서 직원들은 최대한 친절과 예의를 보이며 수혜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한다고 했다.

직원들의 설명에 우리 모두는 봉사가 아닌 참 교육을 받은 하루가 되었다.


배식 준비 전 식당 테이블과 의자들을 정리하며 닦고 있는 앳된 모습의 학생은 자신을 고등학교 봉사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밝은 미소로 맡은 일을 열심히 한 후 조용히 복지관을 나갔다.


서로를 작업복의 여신들이라 자칭하며 가볍게 봉사활동을 시작했던 우리는 모든 일을 마치고 무거운 울림의 여운을 안고 돌아왔다.


세상은 드러나지 않는 소수의 사람들이 나누는 실천이 다수의 많은 이들을 살게 한다. 그 다수 속에 나도 있었음을 새삼 알게 된 고되지만 아름다운 하루였다.


글쓰기를 배우며 시를 감상하는 시간이 많아서인지 최두석 시인의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가 떠올랐다. 급식에 함께한 분들과 나누고 싶다.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최두석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무슨 꽃인들 어떠리

그 꽃이 뿜어내는 빛깔과 향내에 취해

절로 웃음 짓거나

저절로 노래하게 된다면

사람들 사이에 나비가 날 때

무슨 나비인들 어떠리

그 나비 춤추며 넘놀며 꿀을 빨 때

가슴에 맺힌 응어리

저절로 풀리게 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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