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이 법의 심판 앞에 섰을 때 피해자의 마음을 위로하는 변호사들 이야기가 드라마로 인기몰이 중이다.
결혼한 남녀가 마주하는 극단의 결론이 이혼이라면 그 마지막을 향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불륜이다. 좋았던 부부가 헤어지는 이유도 불꽃 튀는 남녀 간의 만남 또한 불륜일 수 도 있을 것이다.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에서 벗어남'이란 뜻이 불륜이란다.
40년도 넘은 기억이니 내가 아직 10대의 고등학생쯤이었다.
친정아빠의 지인이었던 멋진 부부가 있었다. 아빠는 그들을 미스터 최와 미세스 유로 불렀다. 지금 들어도 일상적이지 않은 호칭의 두 사람은 전문직의 잘 나가는 워킹부부였다. 아내인 미세스 유 아줌마는 도시적인 미모를 가진 여자로 늘 자신 있고 당당해 보였다. 그런 여성을 아내로 둔 미스터 최 아저씨는 서글서글한 훈남 형의 능력 있는 남자였다. 더구나 미스터 최 아저씨보다 연상이었던 아줌마는 인정받는 커리어 우먼으로 언제나 쿨한 모습이 멋져 보였다. 내 기억에 두 사람에게 아이는 없었다. 지금의 딩크족(맞벌이 무자녀 가정)의 모습을 40여 년 앞서 확인했다고나 할까. 두 사람은 직장 상사 격인 아빠와 막역한 사이였고 우리 집에 가끔씩 들러 엄마와도 인사를 나누곤 했다.
다섯 딸을 키우며 집안일에서 벗어날 새 없이 종종 대던 엄마는 가끔 아줌마 얘기를 하며 이해 안 되는 부부라고 했지만 마음 한편 부러움이 있어 보였다. "자식 없이 사는 거 빼면 세상 팔자 편한 여자"라고 하셨으니 말이다.
연하인 아저씨는 연상의 아내를 진심으로 존중했고 두 사람이 서로를 동등하게 대하는 모습은 어렸던 내가 보기에도 인상적인 부부의 모습이었다.
어느 날 부모님의 대화 중에 두 사람의 이혼 얘기를 듣게 되었다. 예민했던 사춘기시절 이어서였을까. 그 소식은 너무나 놀라웠고 이유가 궁금해 귀를 쫑긋하며 알게 된 이혼 사유는 최 씨 아저씨의 외도였다. 두 사람 사이가 그저 남들처럼 아들 딸 낳고 사는 부부였다면 이혼까지는 아니었을 거란 엄마의 혼잣말에 그럴 수도 있나 보다 했다.
중간 역할 할 자식이 없어 이혼까지 간다는 쑥덕거림에 주변 모두가 맞장구를 쳤고 그저 지나가는 바람일 수 있는 한 번의 외도를 이해 못 해 이혼으로 치달은 미세스 유 아줌마의 결정이 지나치다고도 했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을 향한 엄마와 지인들의 뒷담화가 한참이나 이어졌다.
그 시절 남편의 외도는 조강지처가 감수해야 할 단순한 바람으로 여기며 용인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평생 엄마의 애간장을 끓였던 아빠의 외도는 참 오랫동안 엄마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감수하고 이해하며 평생 해로 한 엄마와 단 한 번의 외도를 용서 못하고 이혼한 미세스 유 아줌마는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엄마 말대로 부부사이 자식이란 인연의 끈이 해로라는 결혼의 지속을 가능하게 했던 것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들린 최 씨 아저씨의 재혼소식은 또 한 번 놀라움이었다. 고등학교 내 친구인 금실이 언니와 맺어진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내가 알던 금실이 언니는 미세스 유 아줌마와 극단의 비교가 될 만큼 다른 캐릭터의 여자였기 때문이다.
엄마가 평생 혼잣말처럼 하셨던 말이 그때부터 가슴에 새겨져 편견 아닌 고정관념이 되어 버렸다.
"조강지처보다 더 나은 재취(재혼) 상대를 만나는 놈(남자)을 평생 본 적이 없다"
나는 이 말이 잘난 조강지처인 엄마가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인 줄 알았건만 아니었다. 그런데 사실이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내 기준에 금실이 언니는 미세스 유 아줌마와는 비교가 안 되는 상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외모도 학벌도 능력도 한참 못 미치는 그저 평범하고 촌스럽기까지 한 모습의 여자로 기억되던 금실이 언니. 무엇이 최 씨 아저씨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 아니 두 사람은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을까.
울 엄마의 뼈 때리는 한마디가 기억에 생생하다.
"처녀장가가는 최ㅇㅇ씨 얼굴이 좋아 죽더라"
믿거나 말거나!
은실이 언니는 시집간 적 없던 노처녀였다.
그 시절 미혼 처녀와 재혼남의 결혼은 세간을 떠돌 만큼 특별했다.
설마 두 사람의 결혼이 엄마의 추측인 그 이유로 성사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일상이 된 연상연하 커플에 이혼과 외도 돌싱과 미혼의 만남을 시리즈로 보여주었던 40년 전 두 사람.
잘들 살고 있으려나!
많이 늙으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