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교사의 길을 걸었던 교단에서 내려와 새로운 배움 앞에 섰다. 다시 만난 즐거움의 이름은 ‘도슨트’. 하루를 기다리게 만드는 설렘과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몰두가 내 일상에 들어왔다.
온라인 수업을 통해 미술 이론과 도슨트 자격 과정을 접하며, 잠자던 배움 세포들이 하나둘 깨어났다. 새로운 일이 다시 시작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두근거리는 시간이었다.
이런 내게 지난해 다니던 문화센터의 미술관 개관 소식은 또 다른 경험의 문이 되었다. 갤러리 가이드 모집 공고를 접했고, 전문지식이 없어도 가능한 봉사직이라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미술관 운영 과정과 현장 경험이 도슨트 공부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에 곧바로 지원했다.
교사로 살아온 시간이 길었던 만큼, 미술관 안내라는 새로운 역할은 설렘 그 자체였다. 학생들과 찾던 박물관과 미술관을 이제는 다른 위치에서 마주한다는 생각에 기대가 더해졌다. 전시작품을 소개하는 학예사의 전문성은 어떤 깊이일지에 대한 궁금증도 커져갔다.
개관 첫날, 나는 정해진 봉사 시간보다 일찍 미술관에 도착했다. 운영을 맡은 실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학예사에게 기본 안내 사항을 전달받은 뒤 전시장에 들어섰다. 이번 개관 전은 박수근, 김환기, 장욱진 등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9인의 진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특별전이었다.
카페를 겸한 전시실과 주 전시실로 이어진 공간에는 점심시간임에도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나는 전시실 안내와 관람 시 주의사항을 설명하며 가이드로서 첫날의 긴장과 설렘을 시작했다. 시니어 모임으로 보이는 단체 관람객들부터 조용히 작품을 감상하는 개인 관람객까지, 전시장은 차분한 긴장감 속에 부드럽게 흘러갔다.
그러던 중 한 여성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으려 했다.
“이곳에서는 사진 촬영이 안 됩니다.”
조심스레 다가가 안내했지만, 그녀는 곧바로 반문했다.
“왜 안 돼요? 다른 미술관에서는 다 찍게 하던데요.”
순간 전시장의 고요가 무참히 깨졌다. 나는 숨을 고르고 저작권 문제와 작품 보존 그리고 관람 환경을 위한 규정임을 설명했다. 하지만 설득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실장님이 나서서 다시 한번 규정을 말했지만 그녀는 수긍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계속 입장하는 관람객들을 확인하는 내 뒤에 선 그녀는 한동안 전시실을 맴돌다 슬며시 휴대폰을 다시 꺼내든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다가가 차분하지만 분명하게 제지하자 그녀는 다시 말했다.
"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가 세 개나 되는데요, 이 전시회 촬영 때문에 멀리서 왔다고요. 그냥 몇 개만 찍을 테니 못 본 척해주세요"
나는 아무 말 없이 휴대폰과 그녀를 바라보며 무언의 제동을 표현했다. 그제야 그녀는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말없이 전시실을 나섰다. 공간에는 다시 고요가 돌아왔지만, 내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이 작은 해프닝은 ‘안내’라는 역할의 무게를 일깨웠다. 미술관은 단순히 보는 공간이 아니었다.
미술관은 또 소유의 공간이 아니라 경험의 공간이며, 가이드는 단순히 안내가 아니라 관람객과 전시 사이의 질서를 지키는 일이며 신뢰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맡은 역할을 위해 규정을 전하는 목소리에는 단호함과 배려가 함께 필요했고, 그 균형이 전시의 품격을 만든다는 사실을 첫날 현장에서 배운 것이다.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경험이다.” ― 칼릴 지브란
사진 한 장에 담으려는 욕심보다, 작품 앞에 머무는 시간이 더 값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개관 첫날의 작은 갈등은 또 하나의 수업이 되었다. 안내는 규칙을 전하는 일이 아니라, 예술을 마주하는 태도를 함께 나누는 일이라는 것.
나는 오늘도 전시실 한 발 뒤에서 관람객의 시간을 조용히 안내하고 있다.
언젠가 도슨트로 서게 될 날, 나는 작품을 설명하는 사람인 동시에 ‘보는 법’을 경험하도록 돕는 사람 이어야 함을 알게 된 하루였다.
박수근ㅡ소금장수. 김환기 ㅡ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