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아홉 칸 대문을 지나는 부잣집은 이야기 속 고래등같이 큰 집을 표현하는 말이다.
엄마는 어릴 적 자신의 엄마 손을 잡고 아흔아홉 칸의 셀 수 없이 많은 문을 지나 외가친척들을 만났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하셨다.
지금은 갈 수 없는 북한의 개성이 고향이었던 외할머니는 개성에서 수천리가 되는 전라도로 시집와 딸 셋 아들 셋을 낳으셨다.
개성 처자인 외할머니가 그 머나먼 전라도로 시집온 연유는 첫눈에 반한 전라도 총각 때문이었다. 개성에 공연 온 남사당패 외할아버지가 구경 나온 외할머니의 눈을 멀게 한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처음 본 처녀총각이 단박에 눈이 맞아 야반도주하듯 총각의 고향으로 내려오셨다 하니 남남북녀가 만나 이룬 역대급 연애사다.
그림 같은 백마를 탄 기골이 장대하고 외모가 수려한 청년 외할아버지가 기억에 생생하다. 흑백사진 속 젊은 외할아버지는 영화배우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기에 실재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개성처자에서 군산댁이 된 외할머니는 고향 부모님을 그리다 큰 아들은 등에 업고 첫 딸은 손을 잡은 채 머나먼 개성 친정집에 도착했다. 손잡은 첫 딸이 바로 엄마였다.
그곳은 고래등 같은 부잣집이었고 자신의 엄마가 그 큰 부잣집 외동딸이었음을 그때 아셨단다.
개성 외가식구들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던 그 시간을 떠올리듯 엄마는 먼 허공을 바라보셨다.
어쩌면 어릴 적 자신의 외할머니보다 더 늙으셨을 엄마의 기억이 내겐 한 편의 소설 같았다.
그 후 전쟁이 일어났고 생이별한 친정 식구들을 그리워하던 외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다.
치료도 변변치 않았던 그 시절, 당뇨병이 있었던 깡마른 외할머니를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한다. 갸름한 얼굴에 고운 인상을 가진 웃음이 많던 분이었다. 하얀 설탕에 토마토를 찍어 맛있게 먹던 할머니가 내 기억 속 슬픔으로 남아있다.
그때의 외할머니가 엄마에게서 보였다. 토마토를 좋아하셨던 식성까지도. 하얀 얼굴에 앞뒤로 긴 눈매는 사진 속 외할아버지를 닮은 듯 나의 엄마는 그렇게 부모의 모습으로 늙어갔다. 그리고 거울 속 내 모습에서 불현듯 엄마가 보인다.
어느 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늙어가는 나를 보게 될 아들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나이 들어감을 실감하며 문득 세월을 뒤돌아보던 날. 부모님의 뒷모습이 떠오르며, 그 부모님의 부모님들 모습이 아련히 그리워진다.
흐르는 세월에도 여전히 딸바라기인 내 부모님을 후회라는 단어로 기억되지 않을 자식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