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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히 Aug 05. 2023

세상 속 도파민을 위하여

지난해부터 시작한 독서토론 모임은 정해진 책을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다.

이번 주는 중독에 관한 책을 읽은 후 서로의 의견을 나누었다.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대상을 강박적으로 소비하는 행위' 중독의 사전적 의미.

스스로 멈출 수 없는 행위가 일상을 지배할 정도가 된다면 중독이라 할 수 다.


"예전엔 게임에 빠져 하루종일도 한 적이 있어요"

"저는 1박 2일 동안 한 적이 있는데.."

"우리 애가 지금 그 정도인 것 같아 걱정입니다"

"일단 끝까지 간 후에 스스로 깨달아야 멈출 수 있어요"

"긴 인생의 시간에서 보면 몇 년의 기간은, 극복하기 위해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죠"

"부모의 기다림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자신의 경험담부터 자녀의 상황에 대한 각자의 해결책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의견들이 다양하고 진지했다.


세상에 너무 많은 편리하고 즐거운 도구들을 그저 시작하며 생긴 습관이 중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게임기와 컴퓨터가 그랬고 이 모든 것을 합한 스마트폰이 단연코 우세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의 위력은 중독이상이다. 현대인들에겐 생활 자체가 돼버렸으니 말이다.


중독이 위험한 이유가 해를 끼친다는 기준 때문이다. 핸드폰의 사용이 해가 된다는 생각보다는 유용함이 가장 먼저라고 믿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독이라고 단정하지 않는다.


두 아들을 키울 때 핸드폰 사용시기를 고3부터로 정했던 우리 가족의 결정을 되돌아본다. 그 당시에도 핸드폰은 대부분의 초등고학년들이 사용하기 시작했다. 고3이 될 때까지 사용을 유보하자는 내 의견에 두 아들이 잘 따라주었다. 그래서인지 지금껏 컴퓨터게임이나 핸드폰과다사용으로 신경 쓸 일 없었으니 엄마로서 감사할 일이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시기에 핸드폰의 사용을 시작한 것이 의미 있는 기준이었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의 기능이 다양해지면서 나도 일상생활의 많은 것들을 핸드폰에 담아 사용하는 핸드폰 마니아가 되었다.

얼마 전 핸드폰 고장으로 수년동안의 기록과 사진이 사라져 버렸다. 이 경험으로 수첩 메모라는 아날로그 습관이 등장한 것은 나만의 궁여지책 아닌 비법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과거로의 회귀로 안심이지만 불편함도 느낀다.

글쓰기를 시작 한 후로는 일하는 시간을 제외한 많은 시간에 핸드폰은 글쓰기 노트가 되어 손 안에서 떠나지 않으니 이 정도면 중독에 가까운 의존아닐까 싶다. 


어쨌든 핸드폰은 중독이 아닌 활용과 사용이란 이름으로 우리에게 없어선 안될 존재로 굳건하다. 적당히, 필요한 만큼이란 나름의 기준이 핸드폰의 남용을 기정사실화하기도 하다.


유아용 의자에 앉은 어린아이가 핸드폰을 능숙하게 잡고 터치하며 화면에 빠져있는 모습을 본다. 가슴이 철렁하며 할머니의 마음이 되는 것을 젊은 부모들은 이해할 수나 있을까.


세상의 편리한 물건들이 인간의 뇌와 신체의 각 기관들에 긍정적인 영향만 준다면 그것이 바로 과학의 이기이며 인간의 위대한 발명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끊임없는 활용과 응용덕에 그 이기의 산물들을 꾸준히 업그레이드시켰고 드디어 인간의 뇌를 모방한 AI가 탄생되기에 이르렀다.


쳇 지피티란 이름의 인공지능은 첫 생성형 AI란 이름으로 인간처럼 말하며 원하는 정보뿐 아니라 감정까지 전달할 수 있는 지능까지 가졌단다. 머지않아 인간을 지배할 거란 뉴스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상상 이상의 빠른 발달 도로 전 세계의 AI 전문가들 조차 개발 속도를 멈추자는 합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용자들의 기하급수적 증가는 경제적 논리와 함께 합의가 지 않아 보인다. 지금도 우리들의 생활 깊숙이 뗄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핸드폰에 AI의 첨단 기술이 합해지는 기술이 나올 거라고 한다. 가까이는 내년이면 외국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동시통역이 가능한 AI기술이 핸드폰에 실려 출시될 거라는 뉴스에 반가움보다 놀라움이 먼저인 마음이다.


편리함이 생각하지 않는 생활을 만드는 단계에서 인간의 사고를 단순화시키며 어려움의 극복을 거부하는 인간을 만들고 있다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스스로 지배할 수 있는 사고 기능인 뇌를 가진 인간은 고등동물이며 만물의 영장임에 자신을 조절할 수 없는 때가 왜 없겠는가. 그럴 때마다 즐거운 도피처로 의지하는 것이 중독이 되지 않으려면 동기유발 호르몬인 도파민의 조절이 필요하다. 행복 호르몬의 생성에는 과정과 어려움이 함께할 때 진정한 행복이 다. 과정의 어려움과 즐거움이 함께하는 나만의 행복 도피처. 그 과정을 경험하며 지나온 시간을 누군가와 나누고 전달하고 공감될 때의 감동이 바로 행복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듯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우리의 일상 이야기들이 과정의 어려움 속에서 나만의 글로 완성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긍정과 웃음의 에너지가 될 때 나의 행복호르몬은 최고의  도파민이 될 거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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