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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히 Nov 11. 2023

문수사의 가을을 보내며

단풍의 슬픔을 나누다


고창은 선운사의 그곳이다.

도솔산의 설화와 수많은 선운사 동백시가 우리에게 익숙해서일 것이다.


바로 이곳 고창에 저무는 가을 단풍이 절경인 곳이 있단다. 고창 문수사. 낯선 이름과는 달리 천연기념물 463호로 지정된 '문수사 단풍나무 숲'은 다녀온 사람들의 감탄으로 SNS가 가득했다.

설레는 기대로 11월의 하루를 문수사에 내어주고 그곳을 향했다.


바람 끝에서 겨울을 느끼던 귀 시리게 세찬 바람 부는 날, 문수사로 항하는 길은 추웠지만 고즈넉 산길이 주는 정감은 아늑했다.


가파른 길가의 단풍나무들과 이름 모를 나무들은 아직 가을을 맞지 않은 듯 찌뿌둥한 빛깔로 우리들을 맞이했다. 기후변화가 만든 자연의 역린 같은 모습일까. 믿기지 않았던 11월의 유채꽃과 봄꽃개화소식에도 그러려니 했지만 천연기념물인 문수사의 단풍숲은 놀라움과 속상함으로 다가왔다. 단풍 이파리들은 여름같이 높았던 11월의 이상 기온 탓이었는건조하게  메말라 있었고 나무 안쪽의 잎들은 아직도 푸릇한 녹색을 띠며 가을단풍과는 거리가 빛깔이 아픈 모습이었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 시골집 문 같은 조그마한 문수사입구를 지나 대웅전을 마주한 순간 불편했던 가슴이 맑아짐을 느꼈다.


' 아.. 대웅전의 모습이 이럴 수도 있구나'


그동안 보아왔던 많은 사찰들의 대웅전은 이름처럼 크고 웅장한 모습이었기에. 내가 마주한 문수사대웅전은 아픔과 절절한 슬픔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고색창연이란 표현이 떠올랐지만 150여 년의 기나긴 세월에 고풍스러움이 아닌 초라하고 색 바랜 단청의 모습에 문수사를 창건한 백제시대 자장스님의 손길마저 느껴졌다. 조선시대 효종과 영조를 거쳐 고종 13년(1876)에 다시 지어졌으니 내 앞의 대웅전은 백제 때 모습은 당연히 아니었다. 하지만 15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대웅전은 그 시간 동안의 격동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쓸쓸하고 초라한 모습이 감동과 슬픔으로 교차하며 내 발길을 멈추게 했다.


세월의 흔적은 훈장 같은 명예이기도, 감추고 싶은 상처일 수도 다. 두 모습의 대웅전은 저무는 가을이 내게 준 선물 같아 다시 온다는 마음의 약속을 뒤로 한채 발길을 돌렸다.


말라버린 단풍대신 깊어가는 가을의 순리를 담은 멋진 사진이 내게 왔다. 선물한 지인께 감사하며 다시 돌아올 내년의 가을을 기대해 본다.


쇠락을 넘어 허무를 느낀 하루가

현실인 오늘을 위한 영양제가 될 거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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