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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히 Aug 20. 2023

호캉스 체험기

집에 가고 싶다

" 엄마, 이번 휴가 때 뭐 할 거야?"

" 엄마 휴가는 아들들과 지내는 거지! 근데 네 동생이 서울에 없으니... 그냥 생각 중"


매년 여름휴가를  아들과 서울에서 보냈던 당연한 일정이 작은아들의 출장으로 올해엔 변수가 생긴 상황이었다. 휴가 때마다 두 아들과 지낼 기대에 방방 떠있던 내가 휴가 계획을 묻는 큰 아들에게 힘없이 말했지 사실 듣고 싶은 대답은 따로 있었다.


'동생은 없지만 내가 있으니 엄마, 서울 집에서 나랑 휴가 세요'


기대와 달리 큰 아들은 스파와 식사예약까지 포함된 남산의 호텔 숙박권을 보냈다.


서울에서 아들과 함께 가는 맛집과 쇼핑에 수다가 내겐 최고의 휴가이자 힐링이었다. 이런 아들바라기 엄마에게 큰 아들은 호캉스를 선물했다.


" 엄마또래의 아줌마들은 여름. 겨울 휴가를 호텔에서 즐기며 지내는 거 알지! 수영장에서 책도 읽고 음악도 들으며 보내세요. 라운지에서 엄마 좋아하는 글도 쓰면서~~ 이게 진짜 휴가죠!!"


, NO!! 내가 혼자서 뭔 맛으로 그런 불편을!


평소 집과 직장, 아들이 있는 서울 집으로 한정된 엄마의 생활 반경에 " 혼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라"는 격려 같은 잔소리를 하던 큰 아들이었다. 그는 영화 속 대박 멋진 중년의 주인공처럼 엄마가 호텔의 이곳저곳을 즐기기를 원했다.


누군가는 아들덕에 나이 들어 호사한다고 하겠지만 나는 쌍쌍인 남녀들과 올망졸망 토끼 같은 자식들을 거느린 젊은 가족들로 붐비는 호텔에 혼자 있고 싶지 않았다. 아들이 준 통 큰 선물은 내겐 부담이었다.


예약된  호텔로비에 생각보다 휴가 온 젊은 남녀들과 가족들이 많았다.  속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듯했다. 친절한 직원의 응대로 후다닥 체크 인을 마치고 예약된 방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프런트 직원의 설명에 잘 알겠다고 대답했건만 예약된 방의 층을 눌러도 반응 없는 상황에 등에 땀이 주룩!! 누군가 룸키를 층숫자터치하자 작동되는 엘리베이터에 얼른 따라 하고 나니 괜히 뻘쭘해졌다. 번호를 확인한 방문 앞에서 쫓기듯 여러 번 룸키를 터치한 후에야 열리는 방문이 어찌 그리 반가운지.


방에 들어와 잔뜩 긴장된 마음을 내려놓자 그제야 살 것 같았다. 넓은 통창으로 보이는 남산의 경치에 탄성이 나왔지만 마음 표현할 누구도 없는 방에서 혼자 중얼거리짐가방을 정리했다.


잘 도착했다는 문자를 아들에게 보낸 방을 둘러보고 나니 딱히 할일없이 심심해졌다. 나는 아들 당부대로 음악을 들으며 창밖 초록의 경치를 보고 앉아있자니 청승도 이런 청승이 없었다.


' 생각이 맞았지!! 호캉스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니까.... 그래도 방콕 하러 온 건 아니니 내려가서 돌아다녀볼까'


다시 내려온 로비는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멀쩡히 생긴 여자 혼자 호텔에서 얼쩡이는 나를 이상히 보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바짝 긴장하는 내가 참 모자라지 싶었다.


호텔 주변 남산이라도 걸어 볼까 생각해 무심코 호텔 밖으로 나온 순간 8월의 햇빛과 습한 공기가 후끈 달려들었다. 어서 들어가라고 등 떠미는 듯한 찌는 더위에 뒤도 안 돌아보고 얼른 호텔 안으로 들어왔다. 올여름 호캉스에 남산도 들러보았다고 자랑하려던 계획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로비를 두리번거리다 힐끗 보게 된 야외수영장은 귀를 울리는 음악과 함께 젊은 남녀들의 사교장처럼 열기와 즐거움이 가득했다.


매일 하는 샤워와는 다르게 수영장 물은 어찌 그리 무서운지 평생 수영복 입을 일없이 살아왔다. 그런 내게 수영장은 늘 그림의 떡이었고 나와는 상관없는 장소였다. 그런데 아들은 그곳 썬베드에 누워 음악 들으며 휴가를 즐기라니 엄마를 몰라도 어찌 그리 모를까 싶었다.


'남들 다 있는 딸이라면 어디 그랬겠어!'


물이 무서워 수영도 못 배운 책임을 괜히 딸 없는 처지를 들먹이며 원망하는 내가 '평생, 없는 아들타령'하는 친정엄마 영락없었다. 속상해도 '아들이 없어서' 심지어 몸이 아픈 상황에도 '아들이 없어'겪는 일로 여겼던 답답한 우리 엄마였다. 그런 엄마를  '늙어서겠지'라 생각하며 못마땅했던 . 미워하며 닮은 것일까, 늙어서 닮은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늙어가는 나도 미움받은 엄마도 챙겨주는 자식이 있어 부리는 넋두리였음을 알 것도 같았다.


아들이 선물한 호사를 우울하게 만드는 속 좁은 엄마 같아 방으로 돌아와 산을 올려보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습관처럼 한참 동안 휴대폰을 들여다보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건지란 생각에 이 친구 저 후배와 전화통화로 수다를 떨고 있었다.


' 엄마 혼자서 즐기라니까 계속 통화 중이네!! 00시까지 준비하고 여기로 오세요. 아들이랑 맛있는 저녁 먹게~~'


아들의 문자에 깜짝 반기나간 곳은  맛집으로 지정된 유명한 곳이란다. 오늘 하루 어땠는지 이것저것 묻는 아들과 함께하며 그제야 내가 진짜 휴가를 보내는 행복한 엄마가 되었다.

호텔방에 들러 여기저기 확인하고 한참을 보내다 가는 아들이 고맙고 기특했다.


" 내일 하려면 피곤하겠다 어서 가라"

" 엄마, 내일은 브런치 먹고 스파도 하면서 즐겁게 호텔 휴가 즐기세요^^"


돌아가며 당부하는 아들에게 웃으며 "알겠다"라고 대답하는 내가 또 다른 나와 갈등한다.


아들아, 내일은 그냥 엄마 집에 내려가면 안 될까!
나는 집캉스가 체질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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