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이별하던 날 남편의 진심이 다가왔다
진심이란 무엇일까
가을 하늘이 높았던 그날은 엄마의 삼우제날이었다. 슬픔과 아픔이 번갈아 가슴 한쪽을 쪼갤 듯 고통으로 가득한 날이었다.
한적한 공원묘역의 엄마이름 앞에 줄지어선 우리들은 떠난 엄마의 빈자리가 믿을 수 없었다.
엄마 이름이 새겨진 묘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그저 울기만 했다.
남편이 겉옷 안쪽에서 쭈뼛쭈뼛 종이 한 장을 꺼내며 말했다.
"오늘 장모님 삼우제 예배순서지를 준비했으니 제가 진행하겠습니다"
생각도 못했던 그의 행동에 울고 있던 나는 순간 멈칫하며 남편의 얼굴을 올려보았다. 긴장한 듯 어정쩡한 표정으로 예배를 시작한 남편은 성경구절낭독과 기도로 이어갔다. 묵묵히 듣고 있던 순간 그의 기도 속 한마디가 가슴을 울렸다.
".., 평소에 운동을 안 하셔서 아픈 거라며 늘 운동만 하시라고 했던 제 무심함을 용서해 주시고 남은 저희들은,.,, 천국에서 아픈 곳 없이 평안히 건강하게 지내시길 간절히 기도드리며.... 아멘"
나도 별반 다를 것 없이 엄마를 다그쳤던 행동이 비수처럼 꽂혔다.
나와 맞선을 보던 날부터 엄마마음에 들었던 사위였다. 사위에게서 받은 것 하나 없이 수십 년을 예뻐했던 장모 마음을 이제야 알았나.... 엄마를 향한 진심의 애도와 회한이 느껴졌다.
엄마는 평소 샌님 같았던 사위가 술에 취하면 말 많은 수다쟁이가 되는 그의 주사까지도 좋아했다. 평생 술과는 거리가 멀어 꼬장꼬장의 대명사였던 아빠와 너무 다른 큰사위를 참 많이도 좋아하셨다. 장모와 사위의 진심이 이제야 통했나 싶었다. 예배를 마치자 남편은 말했다.
"장모님, 마지막으로 큰 사위가 큰 절 한번 올리겠습니다. 부디 평안히 가십시오"
평소 같았다면 무척이나 좋아하셨을 엄마 생각에 가슴이 미어지며 끝도 없이 눈물만 흘렸다. 삼우제를 마치고 돌아온 내게 작은 아들이 조용히 말했다.
"엄마, 오늘 아빠한테 감동받았지? 나는 생각도 못했는데 예배준비를 혼자서 다 했대. 2시간이나 인터넷 찾아서 완성했다고 하네"
아들도 제 아빠가 신통한 일을 했다 싶은지 내게 감사를 종용했다.
"엄마, 반드시 고맙다고 표현해. 알았지!"
'그랬구나. 나름 애를 썼구나' 싶어 고마움이 밀려왔다. 내 아들은 언제 자라서 이런 의젓한 어른이 되었을까. 그 긴 세월 속 어디에 내가 모르는 남편의 이런 모습이 있었던 걸까.
울 엄마 가시는 길에 좋아했던 큰 사위와 작은 손자의 사랑이 붉은 꽃처럼 피어났다. 그 모습에 감사와 더불어 슬픈 고통이 가슴 깊은 곳에서 짓누르듯 올라왔다.
'무수히 잘못한 딸의 뒤늦은 마음도 알아주실까.'
떠나가신 엄마 마음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채 제 마음만 알아주기 바라는 나는 여전히 모자란 딸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