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미러
나는 무서웠다. 그 상황이 그냥 너무나 무섭고 창피했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서울대 학생을 사칭하는 파렴치한 인간이라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열매는 길게 침을 쭈욱 늘어뜨려 뱉더니 이내 연초를 꺼내 또 입에 물었다. 나는 그녀가 고개를 숙이고 내뿜는 연무량에 완전히 압도되었다. 그 모습은 굉장히 자연스러웠고 조금도 이질적이지 않았다. 가로등 바로아래 떨어지는 빛 때문에 열매의 얼굴에 깊은 명암이 들어 섰다. 나는 더욱이 그녀의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내 심장은 불안감에 요동쳤다. 등줄기와 겨드랑이에는 땀이 식어 축축해지고 있었다. 열매가 긴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솔직해지자”
“뭐가...?”
“너 서울대 아닌 거 다 알아.”
"......."
"말좀해보자."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뒤를 돌아 도망쳤다. 그리고는 내달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이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한 멍청한 줄행랑뿐이었다. 이 굴욕감을 차마 견디기 힘들었다. 인생에서 열매의 존재를 지우고 싶었다. 아니 서로 존재 자체에 대해 모르고라도 싶었다. 나는 무작정 스쿠터에 올라타 키를 꼽아 시동을 걸고 속도를 올렸다.
그렇게 수백 미터쯤 지났을까,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나를 태우고 정신없이 내달린 스쿠터가 골목길의 전봇대와 크게 부닥쳤다. 사고 직후 난 다행히 정신은 있었지만 몸이 쉽게 움직여지지 않았다. 넘어지면서 충격으로 핸들에 명치를 찧었고 그 순간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숨을 쉬기 위해 필사적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지옥같이 숨막히는 정적이 수초 간 흘렀고 난 간신히 숨을 내뱉었다.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봤지만 다행히 열매는 없었다. 주위에는 스쿠터의 펜더를 비롯한 부품들이 깨져 콘크리트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내 파란 트레이닝 바지는 콘크리트 바닥에 쓸려 구멍이 나 있었고, 그 사이로 살깣이 다쓸려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대충 상황 파악이 끝난 내 몸이 신호를 보내왔다. 두 다리가 욱신거리고 저려왔다. 턱과 가슴팍 등 온몸통이 욱신거렸다. 특히 왼쪽 귀가 심하게 아팠다. 그때 지나가던 행인이 나를 보고 괜찮냐며 물었고 부축을 해주려 했다. 나는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고 남자의 부축을 거절하고 일어났다. 병원에 가보라는 남자의 말을 뒤로한 채 집으로 향했다. 혹시라도 열매를 마주칠 것 같아서 그랬던 것 같다. 사실 응급실에 가더라도 치료할 돈이 없었다. 스쿠터는 과감하게 그 자리에 두고 왔다. 어차피 작동도 안 했을 것이 분명했다. 뒷 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집에 도착해 거울을 보니 왼쪽 귀가 심하게 찢어져 있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갔는지 피딱지가 굳어 있었다. 교양시간에 본 고흐였다. 자화상의 고흐, 딱 그 꼴이었다. 먼저 물로 상처들을 대충 씻어냈다. 물이 닿을 때마다 살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이어서 왼쪽 귀와 다리의 상처를 소독했다. 나는 그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흐는 자기 귀를 자르고 얼마나 아팠을까? 소독은 했을까? 후회했을까? 왜 잘랐을까? 그리고 문득 교양 시간에 교수님이 내준 과제 생각이 났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과제를 시작했다. 어느새 내가 써 내려가는 글자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재미있었다. 내가 만들어내는 문장 하나하나에 심취했고 그 글안에 녹아들었다. 정말이지 술술 써졌다.
"서울대에 들어가야 했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학교 학생으로 사칭하고 당신의 수업을 듣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과제도 합니다. 같은 수업을 듣는 여학생을 좋아하는데 그 학생도 속였습니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남들이 저를 우러러보는 시선이 좋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거짓말이 전부 들통난 것 같습니다. 저는 어쩌면 좋을까요. 앞으로 교수님의 수업을 들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여학생으로부터 도망치다가 큰 전봇대를 박았습니다. 저는 피를 흘렸고 타고 있던 오토바이도 버렸습니다. 그리고 왼쪽 귀를 다쳤습니다. 그리고 거울을 보니 공교롭게도 오늘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자화상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과제를 하고 있습니다. 다소 당황스러우실 수 있겠지만 이것은 진심입니다. 그리고 저는 제 이름을 밝히기 않을 예정입니다. 이유는 너무 간단합니다.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제 이름을 밝힌다면 교수님께서는 조치를 취하시고 저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단순히 이 상황과 제 이름만을 갖고는 저를 설명하기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그것들은 단지 껍데기일 뿐이죠. 저희 집은 시골에서 고추농사를 합니다. 저는 서울에서 홀로 음식 배달부 일을 합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오토바이 사고를 냈습니다. 제가 서울대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여학생의 말을 듣고서 도망치다가 벌어진 일입니다. 죄 없는 오토바이는 산산조각 났고 고장 났습니다. 제 몸에는 피가 났습니다. 그리고 귀도 찢어져 있더군요. 그때 제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더 비참했던 건 그 순간마저도 집으로 도망갔다는 것입니다. 너무 아프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었거 숨고 싶었습니다. 제가 피칠갑이 되었다는건 아무도 몰랐고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진짜 제 모습이니까요. 이건 다행인 걸까요? 내 안에 어느 한 곳에서 다양한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이 분노들은 저를 더 추하고 볼품없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대충 이런 사람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사랑이나 인정 따위를 받는다는 것은 참 어렵죠. 하지만 그것들을 바라는건 참 쉽습니다. 걷는 것도 힘들 만큼 온몸이 아프고 쓰리지만 지금 이순간 이 글을 쓰면서 이상하게 후련합니다."
나는 메일을 보내고 한참 동안 고통에 뒤척였고 겨우 잠에 들었다.
다음날이 되자 난 이것들을 해결할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칭을 하며 학교 생활을 하느라 이래저래 수중에 모든 돈을 다 써버린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한번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버지는 배달업체와 연락해 나를 대신해 사과를 전하고 오토바이 수리비를 지급했다. 내 서울 살이는 그렇게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경수 녀석은 내가 가기 서울을 뜨기전 손수 내가 사는 원룸 앞까지 찾아왔다. 그는 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업체와 배달부 사이에는 내가 서울대 학생을 사칭한 놈이라는 소문이 퍼졌다는 것을 말이다. 경수는 전보다 나를 훨씬 편하게 대했다.
“형, 괜찮아. 솔직히 나도 고백할 게 있어.”
“뭔데?”
“형 저번에 핸드폰 잃어버린 거 사실 내가 주었어.”
“뭐? 어디서?”
“아 물론 나도 형 거인지 당연히 몰랐지. 중국집 앞에 떨어져 있길래 주워서 몰래 팔고 용돈 좀 벌라고 갖고 있었어. 근데 서울대에 배달 갔다가 잃어버렸어.”
“뭐?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그러고 나서 나도 형 핸드폰인 거 알았는데, 괜히 형이 서울대 다닌다니깐 말하기 좀 싫어지더라고. 뭔가 더 잘못될 것 같기도 했고... 그런데 다시 찾았길래 조용히 있었어. 고의는 아니었단 것만 알아줘. 미안해.”
“그래..”
이상하게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어이가 없기는 했지만 너무나 당당한 경수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오히려 괜찮았다. 비록 경수 놈의 약아빠진 고백이라는 것을 뻔히 알았지만 말이다. 오히려 궁금했던 점이 해결된 것 같았다. 내 핸드폰이 그렇게 열매의 손에 들어갔던 것이었다. 열매는 당연히 나를 서울대 학생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이런 생활을 잠깐이나마 누린 것도 다 경수 녀석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있다가 경수에게 말했다.
“고마워. 잘지내. 살 좀 빼고.”
내가 이렇게 말하자 경수 녀석은 평소보다 더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 한가지 더 확신을 했는데, 그건 바로 내가 서울대생 사칭을 들키지 않았더라면 이 녀석은 끝까지 나에게 고백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것이었다.
수습을 도와준 아버지는 나에게 화를 내지 않으셨다. 아마 적절한 훈계의 말을 찾지 못하신 것 같았다. 충격을 받으신 듯 했지만 한편으로는 약간의 죄책감이나 후회와도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감정이 나에게도 전달 되었을때, 나는 비로소 최고로 내가 부끄러웠다. 아버지는 내게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나에게 무슨 의도로 함축해서 말씀하신 건지 잘 알고 있었다. 나도 더 이상 월세를 혼자 감당할 수 없었고, 언제까지 사칭이나 하며 인생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아버지께 일주일 안에 방을 빼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서울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교양 수업을 한 번만 더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과제에 대한 교수님의 평가를 받고 싶었다. 물론 아버지한테는 말하지 않았다.
마지막 교양 수업날, 나는 교수의 입에서 내 과제에 대한 칭찬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나만큼 자신에 대해서 표현할 수 있는 학생은 아마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건 학습적인 능력 외의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수업이 끝날 때쯤 교수는 마침내 내 과제에 대해 입을 열었다.
“어떤 사람이 저한테 글을 보냈어요. 자기가 서울대학교 학생을 사칭하는 사람인데, 내 수업을 듣고 있대요."
교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학생들이 교수의 당황한 얼굴을 보고 웃었다. 나도 그냥 따라 웃었다. 하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났다.
"요약을 좀 하자면, 그러다가 갑자기 서울대 사칭했던게 여자한테 들켜서 도망갔는데 교통사고가 난 거야? 다쳐서 귀가 뭐 찢어졌대요. 그리고 거기서 고흐를 떠올렸대. 음. 뭘까.”
학생들이 교수의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 또 웃었다. 교수 역시 학생들의 반응에 신이 났는지 신이 나 보였다. 그는 나를 더 강조하기 시작했다.
“아니, 학생들 진짜 거짓말이 아니에요. 진짜 이렇게 왔다니까? 심지어 제목이 뭔지알아? ‘왕자는 서울대에 가고싶다‘ 사기꾼인데, 왕자병까지 있어. 자기를 왕자라고 하는거지? 혹시 여기 있나?"
학생들이 소리내어 웃기 시작하자 교수놈은 반응을 더 얻어 내기위해 내 편지의 일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 그러니까 결론은 사기 치고, 사고 내고 자기 연민을 한 거야. 거기다가 심지어 고흐에 비유한 거지.”
굉장히 불편하고 괴로운 정적이 흘렀다.
“아오, 이건 다시 생각해도 좀 역겨운데.” 학생들은 또 웃어댔다. 나도 억지로, 반사적으로 따라 웃었다. 살면서 웃는게 그때만큼 힘들었던 적이 없았다.
“당신이 고흐랑 닮은 거라고는 귀 다친 거 밖에는 없어요. 이거 큰일 날 사람이네. 범죄자지 이런놈은. 신고해야 돼 얘는. 싸이코 아니야. 여기 있을거라고 봐요. 저는 이 사람. 범인은 뭐다? 사건 현장에 나타난다.”
교수는 상당히 비꼬는 어조로 강단 앞에 있는 학생들을 향해 외쳤다. 이번에는 꽤 많은 학생들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더 이상 따라 웃기 힘들었다.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교수가 서있는 강단으로 서서히 다가갔다. 나를 쳐다보는 많고 다양한 시선이 하나하나 느껴졌다. 호기심이나, 웃음기를 품은 그런 시선들이었다. 난 하나하나 그들의 눈을 다 마주쳤다. 피하지 않았다. 온 감각이 예민해지는 것 같았다. 귀가 따가웠다. 문득 귀에 아직 붕대가 덕지덕지 감겨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그들이 내가 편지의 주인공이자, 이 수업을 몰래 청강하며 서울대 학생을 사칭하는 사칭범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수도. 어쨌든, 나는 나는 그 교수 앞에 섰다.
“사기꾼 아니에요. 전왕자에요.”
"뭐라고?"
"제 이름이요. 왕자. 전왕자."
말을 하는데 나는 조금 떨고 있었다. 이건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다. 긴장, 설렘, 용기, 분노 뭐 다양했다. 그렇게 마지막 수업을 듣고 나왔다. 문을 열고 강의실을 나가기 직전, 열매와 눈이 마주쳤는데 열매는 나를 멍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정말 어떤 표정도 아니었다. 다만, 확실하게 알 수 있던 건 그 애가 나를 완전히 모른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집으로 돌아갔던 날, 터미널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부모님의 표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일부러 보지 않았거나 기억에서 삭제헸을 것다. 이후 나는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했다. 징역을 살고 출소를 한다면 대충 이런 느낌이겠구나 싶었다. 귀에 붙은 피딱지가 떨어질 때쯤 아버지는 내게 한 지방 대학의 등록금 고지서를 건네주었다. 아버지는 몰래 그 대학에 나를 등록시켜 놓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휴학처리시켜놓은 상태니, 다음 학기에 복학을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대학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전공은 무엇인지, 묻지 않았고 그냥 알겠다고 했다. 어짜피 그곳은 서울대도 아니고 서울도 아닐테니까.
그렇게 몇 달을 멍하게 보냈다. 그 시기쯤에 생각나는 건 여름 내내 바싹 말려 익힌 새빨간 고추와 된장맛이 아주 깊게 베인 고추 무침이었다. 솔직히 맛있어서 꽤 자주 먹었다. 여름이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될 때쯤 나는 아버지가 등록해 놓은 지방 대학의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기숙사에 들어가던 날, 나는 부모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통학버스를 탔다. 그곳은 정말 지독하게 먼 곳이었다.
진짜 대학생이 된 기분은 묘했다. 내 전공은 행정학이었다. 아버지의 의사가 절대적으로 반영된 전공이었지만 불만은 없었다. 어짜피 내가 공무원이 될리는 없었다. 별 생각이 없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이다. 9월 초의 날씨라 그런지 강한 햇빛이 계속해서 버스 창문을 통과해 들어왔다. 나는 커튼을 치고 눈을 감았고, 몇 시간이 지나서야 버스는 캠퍼스 안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 천천히 캠퍼스를 둘러보았다. 서울대랑 별반 다른 게 없었다. 나는 마치 전학생 같았다. 한 번도 전학을 가본 적은 없었지만 뭔가 그런 기분이었다. 캠퍼스 기숙사 중앙에는 연꽃이 둥둥 떠다니는 연못이 있었다. 정말 쓸데없이 예뻤다. 예쁜 쓰레기 같았다. 나는 다음 수업이 무엇이고 어디이고 언제인지도 모른 체 벤치에 앉아 멍하니 연못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시간을 죽이고 있는데 코에 스멀스멀 담배 냄새가 들어왔다. 고개를 돌렸는데 여학생이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익숙한 뒷모습, 열매였다. 여전히 가득찬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맛있게도 피우고 있었다. 열매는 나를 의식하지 못했다. 나는 연못쪽을 바라보며 열매가 내뱉는 담배연기를 한참 동안 마셨고 점점 몽롱해지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