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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주민 Aug 01. 2020

로댕 '생각하는 사람' 앞에 멈춰서다

[파리 여행] 우울한 여행자의 눈에 비친 명작... 로댕 미술관에서

여기는 서울일까 파리일까.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졌다. 이 꿈결 같은 곳에서, 그토록 다시 오길 고대했던 낭만의 도시에서, 나는 권태를 느끼고 있었다. 외로움에 허우적대고 있었다. 꼭 1년 전이었던 첫 여정 때는 모든 게 경이롭고 신기했고 일상마저도 특별해 보이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표정하게, 건조한 일상을 걷고 있을 뿐이다.


사치의 거리에서 표류하다


여행 안내서에는 지금 걷는 이곳을 ‘화려함과 사치의 거리’로 표현해놨다. 콩코르드 광장에서 마들렌 성당, 이어 북서쪽으로 뻗은 말르셰르브 대로(Boulevard Malesherbes), 다시 오른쪽으로 에둘러 방돔 광장까지. 옅은 황톳빛의 웅장한 건물이 빼곡한 거리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서울을 떠나 런던을 거쳐 파리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 위안을 얻기 위해 찾아온 여행지에서 나는 엄습해오는 시린 고독감에 빠져들었다. '파리의 우울'을 쓴 보들레르는 이토록 배회하며 “혼자 있을 줄 모르는 이 큰 불행…”을 절규하듯 적어 내려갔을까.


이 순간, 내게 파리는 더 이상 작년 이후 품어왔던 꿈속의 공간이 아니었다. 이 사치의 거리. 화려한 쇼윈도와 격식을 갖추고 선 말끔한 종업원들, 감히 들어가기 부담스러운 번쩍대는 명품 샾들과 준엄한 경비원이 지키고 있는 호화 호텔을 보며, 자유와 낭만만이 가득할 것 같은 파리도 별다르지 않은 계급사회인 것처럼 느껴졌다.


저택으로 둘러싸인 시내 사이를 바삐 오가는 시민들, 샐러리맨들, 레스토랑에 앉아 느긋하게 점심을 즐기는 사람들 너머로 보이는 홀로 외로이 패스트푸드를 먹거나 바게트 샌드위치를 서서 씹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현실로 가슴에 박혔다. 여기는 현실이었다. 한없는 외로움이 엄습했다. 좌표를 잃고 혼돈을 걸었다. 차라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정처 없는 방황을 끝내야겠다. 숨을 골라야겠다. 쳐진 몸을 애써 이끌어 센 강을 건너 로댕 미술관으로 향했다. 생제르맹데프레역에서 내려걸었는데, 파리 좌안으로 펼쳐진 골목은 사치의 거리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어떻게 보면 밋밋한, 그 수수함에 더 정겨운 약한 베이지 빛깔의 오랜 주택 사이로 뻗은 소박한 골목길, 나는 화려한 문양의 저택과 번쩍이는 상가보다, 평범하지만 그윽한 정취를 뿜는 곳이 더 마음에 들었다. 한결 편안했다.


얼은 듯 멈춰 서다


그러는 사이, 로댕 미술관까지 흘러들어와 있다. 남쪽 안뜰에 들어서자, 푸른 풀밭과 나무들 사이로 솟은 묵직한 동상이 눈에 들어온다. 그 유명한 ‘생각하는 사람’이다.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이 청동 동상 앞에 선다. 구부러진 몸을, 오른손을 턱에 괸 일그러진 얼굴을, 이마를, 시커먼 볼을, 눈을 샅샅이 바라본다.


근심이 깊다. 파리를 걷던 아까 전까지의 내 표정이 저렇게 근심 어렸을까. 아니, 파리에 오기 전, 서울에서, 일상에서 나의 평소 얼굴이 저렇게 어두웠을까. 나는 얼은 듯 멈춰 선다. 고뇌 중인 이 걸작 동상이 순식간에 가슴으로 완연히 들어온다.


"공동묘지보다도 많은 주검을 간직한, 나의 머리는 피라미드, 엄청난 납골당..." -보들레르 <우울> 중-


지옥은 인간 정신 속에 있는 것일까. 나의 현재가 웃음 보단 저런 표정일 때가 많았기에, 아팠기에, 그가 나인 듯하다. 나는 급속도로 빠져들고 있다. 그는 생산적인 번뜩이는 사색에 골몰히 빠져 있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서글픈 고독과 우수가 범람하는 걱정에 휩싸여있는 인간으로만 보일 뿐이다. "지옥에 스스로의 몸을 내던지기 전에 자신의 삶과 운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팽팽한 긴장감과 사실성으로 표현”했다는 소개 글도 내겐 부차적이다.


당초 로댕은 '지옥의 문' 작품 속에 있는 조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었다. '지옥의 문'에는 말 그대로 지옥으로 향하는 입구에 선 인물 조각상들이 어우러져 있다. 인생 최후의 순간이 자아내는 고통과 번뇌, 죽음의 형상을 새겨 넣었다. 단테의 '신곡'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생각하는 사람'은 1888년 '지옥의 문'에서 탈출해 독립적인 조각상이 되었다. 이로서 '생각하는 사람'은 지옥 혹은 심판으로 상징되는 종교성을 상당 부분 벗어던졌다. 관람자로 하여금 다양한 관점과 맥락의 '생각'에 대해 물음을 던져볼 수 있게 하는 보편성을 획득했다. 지금 내게 생각은 고독, 우울, 불안, 걱정의 제스처만으로 강하게 다가온다.


그를 등지고 해는 떴다. 햇살에 비친 몸통과 매끈하게 번쩍이기까지 하는 두터운 팔과는 달리, 숙여진 얼굴에는 그림자가 지고 그늘이 드리워 컴컴하다. 그 한낮 속 어둠은 그의 고뇌를 더 증폭시킨다. 그의 육체는 건장했고 근육은 튼실했지만 그 기운마저도 위로 쏠리는, 오로지 머리만 육중하다. 점점 더 빠져든다.

벤치에 앉아서 바라본다. 오른쪽, 왼쪽, 뒤쪽, 사방에 놓인 벤치를 돌아다니며, 다른 각도에서 그만을 바라본다. 다시 앞으로 온다. 뚫어져라 보고 있자, 어두운 표정 안으로 내가 보이고 내 안으로 그의 얼굴이 들어온다. 그와 나는 아무 말 없이, 걱정과 불안의 바닷속을 함께 허우적대고 있다. 그에게서 친근함을 느낀다. 이제 덜 외롭다.


병원은 나를 치유하지 못했다. 오늘 처음 마주한 그, 로댕, 그의 손길이 낳은 조각은 나에게 어떤 처치도 조언도 없고, 웃음과 평안을 주려고 애쓰지도 않는다. 오히려 깊은 처절한 고뇌만을 묵직하게 표출하고 있다. 그는 어둡게 내게 다가왔지만, 나는 그를 뜨겁게 받았다. 그것은 위로였다.


그렇게 예술은 영혼을 적신다.



동상 하나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30분을 넘게 보냈다. 그와의 교감을 뒤로하고 일어나, 정원을 거닌다.


고요하다. 은은한 오후의 햇살과 초록빛 풀들이 좋아, 유명 조각과 그림이 전시된 저택을 지나치고 정원을 계속 거닌다. 로댕 미술관은 18세기에 지은 로코코 양식의 비롱 저택(현재는 박물관)과 이 사랑스러운 정원을 합쳐놓은 곳이다. 로댕은 여기서 1908년부터 생을 마감한 1917년까지 살았고, 직접 빚은 작품들을 곳곳에 남겼다.


정원에는 '생각하는 사람’ 말고도 ‘칼레의 시민’, ‘지옥의 문’ 등의 걸작과 로댕의 손길이 숨 쉬는 습작들이 즐비하다. 정갈히 수 놓인 자연과 로댕의 작품을 조화로이 버무려 향유할 수 있는 곳. 주머니 사정이 가볍다면 정원만 입장하는 것(1유로)도 괜찮다. 물론 여기까지 왔으면 실내의 ‘키스’나 ‘영원한 우상’, 그리고 로댕의 연인이었으나 그로 인해 인생이 산산조각 난 비극의 여인 카미유 클로델의 애잔한 작품도 충분히 둘러보는 게 더 좋겠지만.


['로댕 정원'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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