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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주민 Aug 13. 2020

고독과 자유... 오로지 혼자였던 파리

[파리 여행] 보부아르 다리, 베르시 공원, 바스티유 광장서 만난 예술가

[전편에 이어 계속] https://brunch.co.kr/@jmseria/30


(미테랑 도서관에서)가슴으로 읽던 책이 머리로만 들어오는 순간, 밖으로 나선다. 천천히 흐르는 센 강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건너편 베르시 공원을 향해 시몬 드 보부아르 다리가 놓여 있다. 


최초로 여성 이름을 붙인 채 세워진 파리의 37번째 다리. 비교적 최근인 2006년 개통되었다. 멋스럽고 걷기 좋은 인도 다리다. 조금 전까지 책을 읽고 있었던 미테랑 도서관과 건너편의 베르시 공원을 잇는다. 서울은 한강을 기준으로 강남북으로 나눈다. 파리는 센 강 왼쪽(좌안)과 오른쪽(우안) 지역으로 나눈다. 지금 여기 파리 동남쪽 지역에서는 좌안(13구)이 미테랑 도서관, 우안(12구)이 베르시 공원이 있는 곳이다.

단절되어 있던 센 강 양쪽 동네의 주민들이 자유로이 이동하며 일상은 물론 문화(시설, 행사)를 공유하게끔 기능하는 인도교. 우아하게 휘어진 304미터의 곡선길을 걸어가면 좌우 사람들이 서로의 동네를 오갈 수 있다. 유연한 리듬을 지닌 완만한 물결을 타고 나아가듯 다리를 걸어간다. 설계자인 디트마르(오스트리아 출신 건축가)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매우 여성적이다. 현대적이었고 시대를 앞서 갔던 보부아르의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그러고 보니 나는 지금 보부아르와 파격적인 ‘계약 결혼’ 관계를 유지한 사르트르의 책을 읽고 있다. 사르트르만의 그녀가 아니었던 그녀 다리를 걷는다. 중심지의 빼곡함과는 달리 확 트인 주변 전경이 여유롭다. 현대식 건물도 여럿 눈에 띈다. 파리의 흐릿한 구름은 울적하다기보다는 감상적이다. 느릿한 시선으로 사방에 머무는 순간, 서늘한 강바람이 온몸을 감싼다. 감촉이 신선하다.


나는 왜 많은 여행객들이 그리는 '파리'와 다른 현대식 외곽 풍경에서 감흥을 느끼고 있을까. 머무는 날들이 길어지자 간혹 갑갑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서울의 들쑥날쑥 난개발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고풍스러운 도시 자태에 심취해 있을 땐 보이지 않던 것들, 파리는 엄청난 획일성이 지배하는 계획도시임이 보였을 때.


즉, 개선문에 올라 시내를 내려다봤을 때. 열두 갈래 방사형으로 쭉쭉 뻗은 반듯한 대로, 깔끔한 구획, 엇비슷한 높이의 건축물, 흰색에 약간의 누런빛이 섞인 아이보리색 주택만의 완전한 운집, 심지어 몽마르트르 쪽을 제외하고는 언덕이나 굴곡 하나 없는 평평한 땅까지. 여기저기 언덕과 산이 푸르게 혹은 달동네 풍경을 자아내며 솟아 있는 서울과 정반대다. 가로수는 말끔히 이발되어 일렬로 쭉 배열돼 있고, 도처에 깔린 벤치마저도 짙은 녹색으로 맞췄다. 사실 그런 정갈한 도시계획이 지금의 파리를 낳았을 것이다.


파리7대학 주변부터 미테랑 도서관, 보부아르 다리까지. 오늘 아침부터 이어온 여정은 오래된 파리에서 현대적 도시로 훌쩍 건너온 몽환감과의 동행이었다. 실제 다리 건너편 베르시는 파리 동남부의 신시가지로 불리는 곳, 와인 무역으로 번성하던 곳이 쇠퇴하자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한 구역. 9할의 역사와 1할의 아방가르드가 상존하는 도시 파리. 나 역시 90%는 오래된 파리를 사랑하지만 오늘은 10%의 신식 감각에 마음이 끌린 그런 날.


오로지 혼자였던 시간

보부아르를 건넌 후, 베르시 공원을 가로질러 쇼핑가인 베르시 빌라주 부근까지 걸었다. 예고 없이 발길 닿는 대로 따라온 곳이라 표지판에 보이는 지명만 알았을 뿐 여기가 어디인지, 어떤 발자취로 형성된 동네인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다만 상쾌하고 여유로웠다. 신식 쾌적함이 있으면서도 곳곳에 빈티지한 창고 건물들과 지금은 다니지 않는 옛 철로가 발길 위로 놓여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과거에 수준급 와인을 생산하는 포도원들이 운집했던 지역이었다. 20세기 초반까지 대규모의 와인 창고들이 옹기종기 자리하던 와인 거래의 중심지였다. 이후 많은 도시가 그러하듯 기존 기능을 상실하면서 쇠퇴하여 갔다. 지금처럼 주거와 쇼핑, 관광, 문화, 쉼 공간이 어우러진 신시가지 형태로 재생, 개발이 이루어진 건 20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였다. 미테랑 도서관과 보부아르 다리를 통해 연결된 베르시 공원은 수려한 자연에 더해 텃밭, 놀이터, 모던한 조각/설치물 등이 개성 있게 어우러진, 1997년에 문을 연 현대식 공원이다.


지금은 카페에 앉아 있다. 베르시 공원의 푸르른 숲이 보이는 상쾌한 자리에서. 배도 고팠지만, 한적한 분위기에 끌렸다. 점원에게 요깃거리와 약한 와인 한잔을 청한다. 나는 숲 풍경이 좋아서, 햇살과 함께 점심을 들고 싶어서 바깥쪽 야외에 놓인 테이블로 옮긴다. 주로 가림막 아래에 앉은 다른 손님들과는 동떨어진 자리에 홀로 있다.


바로 옆에는 지척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서울 같았으면, '혼밥'을 할 때 움츠리며 구석진 자리를 잡곤 하거늘. 여기는 아는 이도 눈치 볼 것도 없다. 환한 제일 앞자리에 몸을 풀어놓는다.


“카페란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러기 위해 옆자리의 벗들이 있어야 하는 곳” -알프레드 폴가


파리에서, 지금처럼 나는 내내 혼자였다. 하루, 이틀…, 열흘이 되도록 혼자였다. 불어는 몰랐고 영어도 아주 유창하진 않았고 민박집에서도 과묵했다. 나는 타인을 잊었다. 그것은 얽매임을 벗은 해방감이기도 했지만, 홀로 낯선 곳을 배회하는 한없는 외로움으로 엄습해오기도 했다. 


후자였던 어젯밤이 떠오른다. 하루를 마치기 허전해서 센 강변을 걷다가 에펠탑 앞에서 즉흥적으로 탄 바토버스(유람선 보다 작은 수상버스). 영화 <비포선셋>의 줄리 델피와 에단 호크도 여기에 올랐지. 매혹적인 해질녘 파리의 풍경과 함께 서른 즈음의 사랑 이야기를 나눴지. 그러나 내가 맞이한 순간은, 해는 완전히 지나가고 어둠이 내린 시간. 혼자 배의 난간에 걸터앉아 센 강을 처연히 바라보고 있을 뿐.


연인들은 진하게 끌어안은 채 낭만을 속삭이고, 강변에 삼삼오오 몰려 앉은 무리들은 여름밤 그들만의 축제 중.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오로지 혼자였다. 나를 휘어잡던 낯선 낭만은 완전히 사라지고, 처절한 고독이 스산한 강바람을 타고 밀려 들어왔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센 강 야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홀로 먼 나라 땅을 부유한 여행. 생소한 곳에 놓여 낯선 향기를 음미하기, 사색의 바다에 빠져듦, 그러면서도 한없는 적막함에 휩싸이기도 하는 것, 홀로 여행은 고독과 자유를 넘나드는 시소 타기였다. 혼자라서 낭만이 흐르는 잔잔한 고독이 있는가 하면, 처절한 암흑 속으로 돌진하는 시린 고독도 있었다. 그것조차도 새로웠고, 일상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강렬한 자극이었다. 사실 그게 혼자 여행하는 맛이다. 외로움도, 좌표 잃은 이정표도, 혼돈마저도. 멀리 떠나와서야, 내 식으로 보고, 나의 속도로 걷고, 나를 살고 있다.


환한 앞자리에 몸을 늘어뜨린 지금 베르시 공원 앞 카페에서도. "침묵을, 홀로 있음을, 고독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자유도 사랑할 수 없다”(이태근)고 외쳤던 산속에 홀로 사는 자연인의 문장을 생각하며.


바스티유에서 만난 예술... 홀연히 걸어가기


다시 오래된 파리 속으로.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자 향한 곳, 바스티유 광장. 그 유명한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시대를 뒤흔든 많은 피가 흘렀던 장소인데, 지금은 높다란 기둥이 세워져 그 시절을 기념하고 있을 뿐이다. 이곳이 바로 악명이 자자했던 바스티유 감옥(1370년부터 1789년 습격사건 때까지)이 자리했던 곳. 죄와 형벌과 억울한 눈물이 자아내는 음침함과 혁명적 항거의 불타오름이 동시에 상존했던 곳.


지금은 쉴 새 없이 오가는 자동차들로 부산할 뿐이다. 광장 주위로 들어선 햇살 가득 품은 카페에서 환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는 파리지엔들과 여행자들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그 격변의 시기를 무색하게 한다. 물론 그들의 밝은 미소와 대화 속에 여유와 자유가 깃들어있다면, 많은 부분 그 시절의 무자비했던 피로부터 잉태되었을 테지만.


천천히 근처를 돌다가 프리마켓 발견. 지난번에 왔을 땐 식료품과 생활품이 잔뜩 있던 노천시장이었는데, 오늘은 예술 장터로 채워진 모습이다. 천천히 둘러보다 멈춘다. 마음을 붙잡은 한 작품 앞에 선다. 그림인 듯 사진인 듯 신비로운 작품. 홀로 홀연히 길을 가는 사람. 지금 나의 상태, 나의 마음을 증폭시키는 작품 앞에서.


골몰히 응시하고 있자, 예술가가 다가온다. 짧은 머리를 한 샤프한 중년의 여인이다. 깡마른 몸매, 깊으면서도 어딘가 슬픈 눈빛, 왠지 모를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눈가의 주름… 그녀에게서는 영혼이 명하는 삶을 향해 갈팡질팡 비틀대며 걷고 있는, 그럼에도 살아내고 있는 애잔한 예술가의 풍모가 느껴진다. 그는 내가 가진 카메라보다도 훨씬 성능이 초라한 일명 ‘똑딱이’(디지털카메라)를 내민다. 이것으로 찍은 사진에, 그 위로는 붓으로 덧칠하는 작품을 만들고 있단다. 작품 속 주인공은 자신이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어로 “혼자 여행하고 있는 내 발걸음을 표현하는 것 같다”고 어수룩하게 말한다. 그녀는 미소를 짓는다.


넉넉지 않은 사정으로 떠나온 여정, 최대한 아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지나치기 아쉽다. 가격을 묻자, 그녀는 “50유로”라고 답한다. 잠시 망설이다가, “주머니 가벼운 청년이니, 40유로에 해달라”. 그녀는 또 씩 웃더니 “알았다”. 혼이 담겼을 작품, 더 깎고 싶진 않다. 그림을 내게 전해주고는, 똑딱이를 꺼내 들고 내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단다. 나는 바스티유 광장의 혁명 기념비를 뒤로하고 오랜만에 활짝 웃으며 포즈를 잡는다. 어느덧 그녀 주위의 예술가들도 우리에게 몰려든다. 그들과도 사진을 찍으며 깔깔대며 논다.


떠나려는 순간, 그녀는 “주말에 몽파르나스에서 예술가 프리마켓을 여니 구경 오면 좋겠다”. 나는 파리를 떠나고 없는 날. 아쉬움을 표한다. 그녀도 특유의 촉촉한 눈빛을 뿜으며 아쉽다고 전한다. 페이스북 주소를 적어서 내게 건넨다. 나는 받아 들고 크게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한다. 광장을 나오며, 그녀 작품을 다시 바라본다. 그런 삶을 살리라. 홀연히 걸어갈 수 있는. 잡음과 시선에 휘둘리지 말고 지금처럼, 나의 존재를 인지하며, 살아내는 게 아닌 살아가는 삶을 향하여. 집에 가면 벽에 고이 걸어두고 이 순간을 무한히 간직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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