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웃주민 Aug 09. 2020

무작정 트램 타고 파리 동쪽으로

[파리 여행]색다른 모던 느낌 도시공간... 파리7대학, 미테랑 도서관

낯선 땅으로 날아온지 며칠 지나가고, 매일 아침 똑같이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나가는 여정이 지루했다. 오늘은 북라헨(Bourg la rein, 파리 남쪽) 민박집 앞에서 버스를 탔다. 종점까지(Porte d’Orlean역) 갔다. 내리자마자 눈에 확 들어온, 땅 위로 다니는 트램. 시내에서는 본 적 없는 느긋한 열차에 확 끌렸다. 


무작정 올라탔다. “느긋한 트램을 타고서 달리면 옆 자리의 꼬마 아이도, 좁은 골목길의 모습도 꼭 그림 같아…”(‘시차’, 에피톤 프로젝트),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차창 밖 낯선 도시의 아침 풍경을 바라보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몸을 맡겼다.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노선도를 보니, 파리 동쪽 녹지대인 뱅센느 숲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어딘들 어떠하랴. 마음 가는 데 까지 몸을 맡겨보자. 


센 강을 건너기 전 역(Avenue de France)에서 내렸다. 멀지 않은 곳에 파리7대학(Paris Diderot)이 있었다. 여기는 수수한 황토빛깔의 도시 파리와는 다른 분위기. 컬러풀한 세련된 디자인의 건축물로 둘러싸인 도회적인 공간. 토요일 오전, 상점은 모두 닫았다. 학생들도 없다. 적막하리만치 조용한 분위기, 관광지도 아니고 관광객도 보이지 않는 곳. 색다른 파리의 정취, 고요한 아침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모든 게 닫혔고, 휴가철 파리의 떠들썩함은 온데간데없고, 홀로 차분한 아침에 놓여 있다. 혼자 오롯이 서있다. 잡음을 털어내고 온전히 존재하는 기분, 슬쩍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왠지 모를 해방감. 대학 건물에 내걸린 이름표가 보인다. ’PARIS DIDEROT’, 평온이 범람하는 마음에 그 간판마저도, 이름마저도 정겹다.


인기척이 없다. 관광객이 우글대는 여름날 파리에 이렇게 잔잔한 곳도 있구나. 여행안내책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는 곳, 아침부터 예정에 없이 발바닥의 '감'만 가지고 이동해 도착해있는 예상과 동떨어진 곳을, 나만의 명소를 우연히 맞닥뜨리고 거니는 느낌이 괜히 좋다. 치장이 없는 일상의 공간에 홀연히 들어와 존재하고 있는 기분이랄까.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 다 가는 곳 말고’, ‘나만의 특별한 명소?’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일종의 ‘노예’가 된 것도 같은 생각에 웃음이 나기도 한다. 나는 밀레니얼이다!

파리7대학이 바라보이는 공원 벤치에 앉아, 바게트를 천천히 음미하며 먹고 있다. 서서히 해가 흐릿한 구름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여정과 동행 중인 책을 펴 든다.

인류의 필요며 희망이며 그런 종류의 기쁨과는 무관하게 나는  인류를 유혹하기 위해서 자신을 혹사하곤 했다. 인류는 나의 관중이었으며, 눈부신 각광 하나가 나를 그것과 갈라놓았고, 이내 불안으로 변하는 거만한 유배의  속에 나를 다시 던져 넣는 것이었다.” 사르트르 <>


지금 앉아 있는 이 정원(Jardins Grands Moulins Abbé Pierre), 웅장하다거나 특별한 건 없지만 마음에 든다. 잔디와 나무를 바리깡으로 이발하듯 잔뜩 깎고 다듬어놓은 프랑스식 정원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고 아늑하다. 주변으로 들어선 모던한 건축물들, 통일성이 짙은 파리 시내보다 색채와 양식이 제각각인 건물 모습들, 공원 곳곳에 수 놓인 디자인 소품들이 정겨우면서도 현대적인 오묘한 느낌을 더한다.


규칙적이지 않고 약간의 사선을 이루면서도 조화로이 배치된 소탈한 나무 벤치들, 자연과도 잘 어우러져있다. 앙증맞게 중간중간 놓인 아담한 철제 계단들, 계단이기도 했지만 공원과 조화를 이룬 디자인 작품 같아 보이기도 했다. 과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녹아든 소품들이 공원을 더 빛낸다. 자연과 현대식 디자인의 조화, 소박하고 세련되면서도 몽환적인 느낌의 작은 공원. 일정에 없이 우연히 발견한 곳인데, 꽤 오랫동안 머무르고 있다.


거대한 미테랑 도서관에서

다시 걸음을 이어, 미테랑 도서관까지 왔다. 웅장했다. 정말 웅장했다. 약 3500만 서적을 보유했다는 초대형 도서관. 파리에선 드물게 솟은 고층 빌딩. 그것도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이 아닌, 유리로 도배된 현대식 치장을 했다. 모양은 책의 형상을 본떴다. 거대한 책 4권이 지상 위에 직각으로 펼쳐진 모습. 병풍 같은 책들 가운데에 너른 광장이, 정중앙 지하에는 소나무들이 옹기종기 자란 정원이 산뜻함을 불어넣는다.


“대칭 속에서 명료하며 선들은 절제되어 있고 그 속의 공간들은 참 기능적입니다. 마치 침묵과 평화의 요구인 것처럼 이 건축은 지면 속으로 파고들었으며 4개의 타워는 이 도시의 심장부인 광장을 만들었습니다. 땅과 하늘 사이에 생겨난 이 도서관 산책길은 모두에게 열려 있으며 현대 도시의 새로운 거처인 이 넓은 공공의 공간에서 우리는 만나고 섞이게 됐습니다.” -미테랑 대통령의 준공 축사 중-



미테랑의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 ‘그랑 프로제(Grand Project)’의 일환(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등과 함께)으로 1995년 들어선 도서관. 이 거대한 구상 한복판을 거닐다가, 막 도서관 안에 들어와 있다. 지하로 나있는 입구(동문과 서문)에 들어가는 건 자유롭다. 자료 이용, 열람실 입장은 등록을 해야 했지만, 둘러보고 머무르는 것 정도면 족하다. 한 가지 더. 도서관에 왔으니 책을 읽고 싶다. 여유로이 책 볼 수 있는 곳은 없을까?


다행히 로비 곳곳에 의자가 놓여 있다. 더 들어가 보자. 입구에서 왼쪽으로 향하자, 기다란 복도가 뻗어 있다. 가운데 소나무 정원을 직사각형으로 둘러싼 복도다. 커다란 전면 유리창을 앞에 두고, 통로에는 레드 카펫이 깔렸다. 벽 쪽으로 곳곳에 의자와 책상이 놓여 있다. 창밖의 푸르른 소나무들이 솟은 풍경이 싱그럽다. 책을 보는 이, 글을 쓰는 이, 노트북을 두드리는 이, 백인, 흑인, 동양인 할 것 없이 다양한 얼굴들이 자리에 앉아 있다.

굳이 열람실에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공간. 앞쪽으로 큼지막하게 난 창을 통해 자연채광이 환하게 들어오고, 그 아래로 놓인 현대식 의자도 안락해 보인다. 나는 더 돌아다니지 않고 빈자리에 앉는다. 날은 흐렸지만, 책을 읽기에는 충분한 빛이 앉은자리로 비춰 들어온다. 나는 다시 사르트르의 <말>을 꺼낸다.

 

바로 읽진 않고,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어찌하여 도서관에까지 흘러들어 온 건가. 나는 왜 이곳에 온 건가. 나는 왜 파리에 온 것인가. 일상에서 빠져나와 멈춰 서길 바란 여행. 변화와 치유를 바란 여행. 동분서주 돌아다니기보단, 충분히 머물며 존재하고 싶었던 여행. 사색과 여유에 둘러싸이기, 속도를 늦춰 내게로 돌아오기… 그렇구나. 생각해보니, 도서관만 한 곳도 없구나.

생각을 멈추고 책을 편다. “나는 남에게 보여 지고 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다행이다. 그래도 지금만큼은, 저기 센 강 쪽에서 흐릿한 구름을 뚫고 비춰오는 햇살처럼, 껍데기를 걷어내고 온전한 나의 시선으로 글을 읽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나날들을 휘둘리며, 신경 쓰며, 이 사람 저 사람의 기준에 맞춰 혼돈을 살았던가. 나의 젊은 날은, 온갖 떠밀려오는 파고에 출렁이며 무엇 하나 제대로 존재하지 못한 불안의 나날들이었다. 파리의 실존주의자도 저런 회고를 하는구나.


프랑스가 낳은 지식인의 자전적 소설에서처럼, 나도 “비탄에 잠겨 나의 자유재량권에 대한 구역질 나는 무미건조함”에 휩싸이며 “집단적 요구의 산물”에 불과했던 삶을 자각하고 있다. 일상 밖에서. 나의 전부를 이룬 세상과 단절된 채 맞이한 여행 속에서.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고 일갈한 실존주의자의 도시에서. 이방인에게도 문턱 없이, 햇살을 품은 독서 자리를 내어준 프랑수아 미테랑 도서관에서.

[다음 편에 계속] 위 사진 속 '보부아르 다리'를 건너 베르시 공원으로 향하는 여정 이어짐

매거진의 이전글 로댕 정원에서 춤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