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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주민 Aug 19. 2020

"베르갈랑, 메마른 영혼을 적셔가는 곳"

[파리 여행] 시테섬 모서리에 걸쳐있는 비밀스러운 정원에서의 낮과 밤

그곳은 베르갈랑, 어디에서 흘러왔든 그곳에선 아픈 다리를 쉬고, 목마른 목을 축이며, 메마른 영혼에 사랑을 적셔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함정임 ‘인생의 사용


#1 버드나무 아래에서

'파리의 중심' 시테섬 왼쪽 끝자락에 걸쳐 있는 푸르고 아담한 정원, 숲으로 뒤덮인 채 놓여있는 비밀스러운 공원, 베르갈랑(square du vert-galant)으로 가는 길. 퐁뇌프(pont neuf) 다리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앙리 4세 기마상을 바라보며 강변 아래로 내려간다. 파리에 살았던 헤밍웨이는 햇살 좋은 날이면 이 도심 속 쉼터를 찾았다. 독서와 사색과 와인 한잔을 위해. 파리에서 인생의 한때를 '사용'한 여행자 함정임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곳에선 어디에서 왔는지, 시간은 얼마나 되었는지 알려고 들 필요가 없다. 출신을, 고향을 잊고 잠시라도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 있으면 된다. 그러면 마음의 눈이 열리고 영원의 시간이 펼쳐진다.”


베르갈랑은 차분하게 시간을 잃어버린 듯 거닐고 머물며 존재해야 하는 곳. 바로 펜스 안 정원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쪽 난간을 따라, 강둑을 걸어 시테섬의 가장 끝 모서리까지 걷는다. 앞에서 센 강이 느리게 흐른다. 좁디좁은 끝자락 육지에 버드나무 한 그루가 덩그러니 서 있다. 나무 아래로 들어간다. 맨 끝 자리, 한 발짝만 더 가면 강에 빠지는 아슬아슬한 공간에 걸터앉는다. 순간, 피로감이 강물처럼 밀려온다. 아예 누워버린다.

고요하다. 수북한 나뭇가지들이 너풀거리면서 시원하게 가림막을 해준다. 센 강이 코앞에서 여유로이 흐른다. 고개를 들자 강 건너편으로 파리의 황톳빛 건축물들이 장엄하게 보인다. 서울을 벗어나 파리로, 다시 파리에서 슬쩍 나와 외딴섬에 들어와 있는 듯한 묘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시끌벅적 8월의 파리에서 한참을 벗어 나온 듯 한적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안락한 나무 아래 나 홀로 있는 건 아니다. 여기는 딱 봐도 친구, 연인과 수다를 떨거나, 강둑에 걸쳐 앉아 맥주 한잔 하기 좋은 명당이다. 누운 자리 뒤쪽으로 젊은이들 서넛이 보인다. 돗자리 펴고 대낮부터 술 한잔씩 걸치며 수다 떠는 중이지만, 이상하게도 전혀 거슬리지 않는다. 평온하다.


오전 산책은 건조했다. 가라앉는 기분이 몰려와 발걸음이 무거웠다. 흐릿한 날씨 탓인지, 홀로 다니는 고독감인지, 여전히 떨치지 못한 일터 복귀에 대한 불안(애써 읍소하며 휴가까지 내고 온 여행인데, 치유와 재충전을 제대로 하지 못한 느낌이랄까, 돌아갈 날이 두려웠다) 때문인지, 파리와 1년 만에 재회하는 순간들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당도한 이곳. 온몸에 힘을 빼고 배낭을 베개 삼아 누우니, 다시 평화로움이 들어오는 기분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버드나무 잎사귀가 바람에 휘날리는 소리를 듣고 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고개를 오른편으로 돌리자, 한걸음 옆에 한 백인 여성이 강둑에 앉아 있다. 사연 모를, 그러나 짙은 우수가 느껴지는 눈빛으로 앞으로 펼쳐진 센 강을 바라보고 있다. 그 눈빛, 전혀 사연도 까닭도 짐작도, 그녀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가슴속으론 공감의 울림이 일렁이고 있다. 우리는 한마디 말도, 눈 마주침 조차도 없었지만, 어딘가 닮아 있는 처연한 눈동자로 센 강을, 파리를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함께 있었다.


#2 홀로 앉아, 그러나 말없이 함께

강바람을 맞으며 버드나무 아래에서 일어나 베르갈랑 공원으로 들어간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한적하고 여유로운 정원 분위기가 직감적으로 전해진다. 이 물 위의 고요한 작은 땅이 중세에는 유혈이 낭자하는 사형터였단다. 마녀사냥의 희생양들이나 반역자(혹은 그렇게 내몰린)들이 최후의 숨을 내쉬고 끊었던 곳. 지금은 정반대다. 복잡한 도시에서 빠져나와 상쾌하고 푸른 공기를 들이쉬고 내시며 일상의 정화를 만끽하는 곳이다.


곧바로 공원 벤치에 누워 곤히 잠든 백인 남성이 눈에 들어온다.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빈손으로, 맨발로, 손을 베개 삼아 누워 있다. 저렇게도 편안한 자세라니. 방금까지 나무 아래에 누워 있던 나는, 평온했지만 어딘가 불안했다. 가방을 두 개나 짊어지고 카메라에 아이폰, 거금은 아니지만 환전해온 유로화 등을 주렁주렁 가지고 다니다 보니, 혹시 눈을 붙이거나 방심하면 소매치기라도 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 파리에서 소매치기 당해 다 털렸다는 크고 작은 소문들도 걱정을 증폭시켰다.


그는 가진 게 없으니 완전한 홀가분으로 정원 한복판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 편히 누운 모습, 무거운 짐을 싹 처분한 듯 가벼워 보이는 그가 부럽게 까지 느껴진다. 불현듯 이번 휴직기간 앞부분에 치유를 위해 고요히 머물렀던 귀정사, 공양간 책꽂이에서 꺼내 본 법정스님의 ‘무소유’에 적혀 있던 구절이 떠오른다. 소유는 곧 집착을 낳는다. 많이 가졌다는 건 그만큼 신경 쓸 것이, 얽매임이, 자유를 저해하는 집착이 많아진다는 뜻. 그래. 가방을 가벼이 하고 얽매임을 덜어내고 지금 여기에 제대로 존재하는 여행을 하자. 인생의 나그넷길에서도. 쓸데없이 잡음만 채우는 불필요한 소유는 식별해서 버리자. “적게 소유하고, 많이 존재하는” 그런 방향으로.

센 강에 둘러싸인 작고 사랑스러운 공원에는 모여 있는 가족, 친구, 연인들, 그리고 나처럼 홀로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람까지. 혼자여도, 누군가와 함께여도 그저 평화로운 곳. 지금 나는 혼자이기에, 홀로 있는 사람들이 눈에 더 명징하게 포착된다. 왠지 모를 동질감에, 그들의 표정을 찬찬히 하나둘 바라본다. 나만 혼자가 아니라는 소소한 위로일까. 혼자여도 평온하고 여유로운 그들 표정이 이 초록빛 안식처 베르갈랑과 함께 내게도 닿는다. 쓸쓸함이 멀어진다. '홀로 더불어' 낯익은 타자들과 존재하고 있는 안온함이 다가온다.


#3 밤의 축제

어스름이 깔릴 무렵 다시 베르갈랑으로 돌아왔다. 종일 파리를 걷다 보니 나무 아래 바람이 부는 시원한 자리가 자연스럽게 생각났다. 도심 한가운데에 있으니 오기도 편하다. 숲 속으로 들어가서 빈 의자를 잡아 앉는다. 쓸쓸하지 않게 '혼밥'을 할 적당한 장소를 원했던 것도 주요한 이유. 아침에 먹다 남은 바게트와 마트에서 산 샐러드를 싸들고 왔다. 그렇게 홀로 단출한 저녁을 차분하게 때운다. 그리고 다시 야간 유람과 산책에 나선다.


어느새 지금 여기에서도, 갖은 얼굴을 지닌 사람들이 옹기종기, 삼삼오오, 따로 또 같이 파리의 밤을 즐기고 있다. 베르갈랑 한복판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남녀노소 짝지어 즐겁게 춤추고 있는 무리들, 세대와 성별이 마구 뒤섞여 흥을 내고 있다. 과자에 맥주를 잔뜩 사들고 와서 강둑 분위기를 즐기는 젊은이들, 카드 게임 중인 무리, 사회문제 토론하듯 심각한 논의 중인 것으로 보이는 진지한 무리, 역시 빠지지 않는 진한 애정행각 중인 연인들.


친구와 단둘이 차분히 두런두런 대화 나누는 무리, 홀로 앉아 와인병을 들고 '병나발'을 불며 처연하게 강변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 사람들을 꽉 채우고 시간대별로 센 강을 오락가락하는 유람선들, 거기에 올라탄 관광객들이 지르는 함성과 그에 화답하는 강가 사람들의 외침이 뒤섞이고 메아리치며 시끌벅적한 소리…… 파리의 여름밤은 매 순간들이 신나는 축제로 펼쳐지고 있다.


무질서하게 엉켜 있는 낭만적인 축제의 밤거리를 홀로 느리게 걷고 있다. 이어폰을 꼽고 샹송 가수 ‘Awa’의 비음 짙은 불어 음성을 듣는다. (베르갈랑을 둘러싼) 시테섬 강변을 걸어가면서 스쳐 지나가는 축제의 밤 풍경과, 파리를 닮은 선율이 어우러져 생생한 뮤직비디오를 보고 듣고 있는 기분에 휩싸인다. 난 아무 말도 없었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웅성거림들 사이를 거닐고 있었지만,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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