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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주민 Sep 08. 2020

코로나 검사 후기, 확진보다 더 걱정되는 건

하루 자가격리 단상, 나의 몸뚱이가 거쳐간 시공간을 떠올리며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왔다.


강북지역에서 들른 한 카페에서 확진자가 있었나 보다. 구청으로부터 검사 공지가 나온 걸 봤고, 곧바로 보건소로 향했다. 태풍이 올라오는 날이었다. 비바람이 몰려오는 스산한 날씨에 흔들리는 우산을 쓰고 보건소 앞 공터에서 대기줄을 섰다. 검사를 마치고 집에 들어앉아 자가격리를 하며,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어떤 가치판단보다는 현상을 잘 적어놓고 싶은 마음에 쓴다.

(글을 쓴 다음날 아침(오늘), 다행히 음성 문자가 와서 ‘자가격리’는 하루 만에 해제)


# 검사 풍경

비 오는 보건소 앞에 서서, 느리게 움직이는 대기줄을 지났다. ‘역학조사’(사는 곳, 하는 일, 확진자가 머문 장소에 간 시간대 등)라는 걸 하고, 또 줄을 서서 내 이름이 호명되길 기다렸다. 방호복을 입은 공무원들이 몇몇 확인을 거치더니, 곧바로 코와 입에 면봉을 깊숙이 박아 넣은 후 빼내었다. 단 몇 초 만에 검사는 종료되었다.


비용은 없었다. 확성기와 사이렌 소리가 간혹 들렸다. “열 맞춰 서주세요” 예비군 훈련지에 동원되어 서있는 풍경이 뇌리를 스쳤다. 공무원들은 분주했고 “사랑합니다 고객님” 같은 식의 과한 서비스는 없었다. 사람이 많아지자 빗속에서도 작전 수행하듯 천막과 파라솔이 올라갔다. 온몸을 칭칭 감은 방호복을 입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공공의 ‘용사’들은 시대의 위급함을 묘사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행히 인간사회를 멈춰 세워 버린 정체불명의 병원체를, 불나면 소방서에 전화하고 도둑 들면 경찰을 부르듯이, 여기 보건소와 같은 공공서비스의 태두리에서 관리하고 있다. 검진 자체는 그냥 해주는 나라들이 꽤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진단 문턱이 낮고 복잡하게 따지지 않는 건 매우 잘 되어있는 편이라고. 이 판국에 뭐 하나 할 때마다 증명해야 하고 안 맞으면 돌려보내고 혹은 비용 청구서를 내밀거나 보험 가입/보장 여부부터 따져야 하는 등의 '계산대' 마저 있으면 얼마나 더 아수라장일까.


여기는 정부, 퍼블릭의 영역이고 국가의 영토 안에 들어와 있다. 지금은 ‘국가의 시간’인 것이다.


# 국가

전반적으로 국가가 작아지는(혹은 작아져야 한다는 주장이 통용되던) 시대에 살았다. 축소되고 간소화하며 뒤로 빠지는 게 옳다고 여겨왔던 시기.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 개입은 줄이고 어정쩡한 정책 쓰지 말고 시장에 맡겨라, 국가는 비효율적이다. 관료는 딱딱하고 무능하다. 불필요한 부분은 국가에서 떼어내어 민영화해야 한다. 복지도 국가가 하면 낭비를 초래하니 시장으로 던져서 경쟁을 통해 효율화시키자. 그러다가 대략 2008년 금융위기부터 이러한 흐름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는 시장이 알아서 ‘자율조정’ 한다고 여겨온 표면적인 인식은, 시장원리로 사회 전반을 구성해야 한다는 교리는 깨진 게 분명하다.


무시무시한 전시 상황이나 공산주의 국가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배급(공공 마스크) 형태의 자원배분이 특단의 대책으로 시행됐다. 그래서 그나마 수급 조절이 가능했다. 시장은 소비자들의 사재기를 제어할 수 없었다. 생산자들의 얌체짓과 한탕주의를 막을 수 없었다. 차라리 정부가 지시해서 가격 정하고 명령 내려서 생산하고 분배하는 게 효율적이었다. 정부가 온 국민에게 일정액의 월급을 준다는 ‘기본소득’이란 용어와 정책이 거리낌 없이 정치권과 일반 시민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사실 일시적으로 뿌리는 재난지원금과는 본질적으론 다른 개념이다. 각 진영 간 주장하는 개념과 방식도 상이하다. 자세한 논쟁은 논외로 한다)


정부는 가만히 있거나 심판만 보라는 말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시장은 정부의 계획과 지원과 조정해주는 ‘큰 손’ 기능이 없이는 설 수 없는 판이 되어버렸다. 시장은 그 자체로 신성불가침의 작동원리를 구현한 독립체였다기보다, 사회를 구성하는 부문 혹은 도구 중 하나였으며 필요에 따라 적절히 활용, 변용되어야 할 ‘장’이었을 뿐이다. 점차 심해지는 기후위기 등 앞으로 위험사회의 특성이 강하게 나타날수록 시장만능이라고 잘못 인식해왔던 모순들은 계속 가시화될 것이다. (물론 국가도 만능은 결코 아니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특히 지금처럼 복합 위기/위험의 시대에서는)


# 자유

익숙하게 믿고 있던 ‘자유’라는 개념에도 많은 침범들이 스스럼없이 행해지고 있다. 물론 위급 상황임을 감안해야 한다. 그리고 방종과 자유는 엄연히 다르다. 다만 이 비상의 시기를 지나가며 우리가 겪고 있는 ‘현상’ 자체는 잘 기억해두어야 한다. 매일을 살기에 그저 이런 상황이니까 이렇게 흘러가는구나, 이렇게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정부의 권위주의와 통제에 맞서 시민권 혹은 시민사회 영역을 확장해가는 세상을 살아왔다. 국가단위 아래 도시, 지역자치를 탄탄히 구성하려고 애썼다(이 방향은 계속 유효하다고 본다). 시장에서 외치는 민영화와는 다른 방향에서 정부 혁신을, 시민/주민참여를, 권한 이양을 외쳤다. 촛불집회에서 많은 시민들은 경찰과 공권력을 향해 외쳤다. “시민들이 주인인 세상이다. 우리 외침을 막지 말라” 위계보다는 자율을, 하향식을 넘어 시민들에게, 로컬의 주민들에게 더 많은 결정권과 자율권이 부여되는 ‘생활 민주주의' 시대를 그렸다.


지금 우리는 정부의 권위와 지침에 협조하지 않으면 ‘밉상’이 되는 시기를 살고 있다. 순순히 개인정보를 다 까고 적고 전달해야 하고 거주이전의 동선을 일러줘야 하며, 얌전하고 일사불란하게 격리를 하지 않으면 위험은 증폭된다. 정부 말을 따르지 않으면 시민들로부터도 질타를 받는다. 웬만큼 양식 있는 시민이면 알아서 수칙들을 준수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상당한 수준의 집단주의와 배려의식을 여전히 내재하고 있는 듯하다.


검사를 받는 장소에서 몇몇 시민들의 투덜거림이 있었다. 사실 어디서나 그런 모습들은 있다. 당연한 반응들이다. 군대도 아니고 시민들이 군말 없이 조용히 각 잡고 줄 서있을 걸 기대할 수는 없다. 왜 줄을 이런 방식으로 세우느냐, 어디로 갈 줄도 모르겠고 안내가 왜 이렇게 잘 안되어 있느냐, 이러한 사소해 보이는 중얼거림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긴 시간 기다려서 역학조사를 마쳤다. 검사를 받으려고 다시 애써 길게 줄을 차례차례 섰는데, 전혀 줄 서있는 순서대로 검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검사자가 호명하는 랜덤으로 이뤄졌다. 빗속에서 꽤 오랜 시간 기다리던 시민들, 특히 앞줄에 있던 사람들은 분통이 터진 얼굴이었다. 일부 시민은 들릴 정도로 투덜대기도 했고, 줄 선 순서대로 검사하라고 마스크 속 음성이 새어나가 꽤 크게 들릴 정도로 외치기도 했다. 아마 평소 같았으면 공무원을 향해 쫓아가서 삿대질을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은 거기까지였다. 그 이상 나가면 안 되는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사실 갑자기 몰려든(그 카페에 다녀간 사람들이 꽤 많았나 보다) 시민들 상대하며 비바람 속에서 천막을 쳐가며 검사하는 공무원들을 보면, 거기다가 소리치고 삿대질하는 건 누가 봐도 진상이고 밉상으로 보일 터였다.


우리는 지금 정부의 말을 들어야 그나마도 안전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최소한의 검증이 된 보편적인 과학 지식과 그것을 집약해 전하는 정부의 ‘지침’이다. 이에 반기를 들고 본인 주장과 라이프스타일을 고수하고 싶다면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을 실천하겠다고 나섰다가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닌 타인과 공동체를 파괴하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죽음의 그림자를 향한 불확실성만큼 두렵고 불안한 게 있을까.


#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가장 두려운 건 나의 확진은 아니었다.


내가 ‘확진 장소’를 들른 후 거쳐갔던 시공간에서 만난 특정 장소와 가게, 사람, 일, 프로젝트에 피해와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민폐 의식이었다. 하나하나 그들이 떠올랐다. 평소보다 손님이 확 줄어버린 동네 식당에서 슬그머니 혼밥을 했던 시간, 어깨가 축 처져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문까지 닫고 낙인이 찍힐 수도 있는 사장님 얼굴이 떠올랐다. 마스크를 꼭꼭 쓰고는 있었지만, 아침에 커피 한잔을 테이크아웃으로 가지고 갔던 카페와 내 옆에 같이 줄 서있었던 이름 모를 사람들도 떠올랐다. 주말 간식과 여름날 즐겨 마셨던 캔맥주를 사러 종종 들렀던 동네 편의점 알바생 청년 얼굴도 뇌리를 스쳤다.


검사를 받으러 갔다고 하자, 당장 오늘 나의 몸뚱이가 거쳐 간 몇몇 곳은, 즉 나와 대화를 나누거나 밥을 먹었던 사람들은 집으로 대피를 해야 했고 그 장소 일부는 내가 음성 판정 문자를 보내주기 전까지 문을 닫는다고 했다. 같이 사는 와이프도 다급히 사회생활을 떠나 집으로 와야 했다. 그 일터도 재택으로 돌리며 나라는 사람의 검사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수행해야 할 과업은 뒤로 미뤄졌고 아무도 뭐라고 하진 않았지만, 오히려 걱정하는 메시지를 보내주었지만, 미안하고 죄인이 된 느낌이었다. 확진이 된다면, 정말 면목이 없을 거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다. 확진자 혹은 자가격리자들이 두려운 건 병 자체도 자체지만 사회적인 시선이다. 당연히 따뜻한 배려 섞인 말들이 다수겠지만, 혐오와 배제와 아무렇게나 막 싸지르는 댓글들. ‘xx 같이 뭐한다고 빨빨거리며 싸돌아 다니냐’, ‘동선과 신상은 물론 얼굴까지 다 까라’ 등등의 내지르는 말들.


전혀 먼 얘기가 아니었다. 물론 나는 아주 낮은 단계로 검사 한번 받은 정도이지만(예컨대 확진자와 밀접 접촉자는 2주 간 격리를 해야 한다), 누구라도, 전혀 인지하지도 못하고 조심한다고 조심했는데도 스쳐 지나가는 무언가에 의해 다가올 수도 있다.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마시고 닿을지 모르는 공기 같은 실체에 두려워하는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그것도 타인과 떨어지는 게 옳고, 타인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봐야 하는 불신과 거리두기의 시대를 말이다.


그러나 혐오로 단절만으로 세상을 살 수는 없다. 결국 어떻게든 어떤 형태로든 ‘만남’과 ‘연대’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계속 숙고하고 풀어야 할 화두이자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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