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 양가감정

뒤로 흘러가는, 앞으로 나아가는

by 이웃주민

연재 5

[대문사진: 월간 참여사회 웹사이트]


나는 그를 흠모했다. 그 선배를 존경하고 따랐다. 그런데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


무엇보다 일을 참 잘했다. 똑 부러졌고 논리 정연하며 (조직을 좌우했던)'갑'을 향해 언성을 높일 땐 높이는 결기도 여전한 모습이었다. 가끔은 안쓰러울 때도 있었다. 좋든 싫든 민주화가 훈장처럼 붙어 다니는 세대, 그들보다 윗세대처럼 권위나 위계를 부리는 걸 자제하는 행동도 보였다. 수평적으로 일을 시키거나 운영을 하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톡톡 튀고 자유스러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을 ‘요즘 것’들을 보면서 명령과 지시로 끌고 가고 싶은 내면의 외침들도 있었겠지만, 억누르려고 속앓이를 하는듯한 모습도 엿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투쟁했던)“파시즘이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떠난다는 것”(베르톨트 브레히트), 그래서 "아주 일상적인 파시즘이 내면에 형성되어버린"(김누리 교수) 역설적인 모습을 경계해야 한다는 표현처럼, 소소해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일터 문화와 생활 속 민주주의를 행함에 있어서는 투박해 보였다. 목적 달성에 열을 올리고 수단과 과정에 대해서는 눈 한번 정도 깜빡하고 밀치고 가버리는 성향도 보였다. 별다른 의도는 없이 습관처럼 던지는 말이었겠지만, ‘안사람’, ‘집사람’(여성의 역할을 그저 ‘집에 있는 사람’이라고 칭하는 것에 대해) 등의 표현은 성평등을 중시하는 몇몇 여성 후배들에겐 거북하게 들릴 때가 있었는지 간혹 술자리에서 언쟁을 벌이곤 했다.


확실히 일 중심적이었고 조직에 헌신적이었으며 건강을 버릴지언정 과업에 우선 충실했다. 주야간, 휴일과 평일이 잘 구분이 가지 않는 모습도 많았다. 나는 그를 좋아했지만, 그만큼 일을 할 자신은 없었다. 그렇게 조직에서, 사회에서 성장해가는 나의 모습은 더욱 잘 그려지지 않았다. 사실 숨이 막혔다.


- 사회복지, NGO, 도시재생 등 공공적인 미션을 띤 기관/일터에서 일했던 개인적인 배경 참고
- 위 인물 묘사는 특정 개인이라기보다 겪어왔던 ‘대표’, ‘장’님들 모습에 비춰 ‘전형’을 표현함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386(이제는 586)이라 불리는 세대들은 일터와 사회생활에서 밀접하게 관여되었다. 대학시절에도 상당수 교수님들은 그 세대였다. 나는 20대 후반이던 2010년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시작했다. 그분들은 대략 40~50세 나이대로 한창 정열적으로 사회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을 때였다. 선배라고 하기에는 어른들이었다. 많게는 스물서너 살, 적게도 14살 정도(내가 83년생이니 69년생과 비교하면) 차이가 났으니 말이다. 그분들은 사회초년생 때부터 지금까지 쭉 관리자 혹은 대표급으로 자리하고 있다.


“386세대라는 '시민 군대의 장교들'에 대한 지지 기반은 바로 아래의 1970년대 및 80년대 출생 세대들에게서 발견된다. 1970년대생들은 마치 1940년대생들이 (1930년대생들에게)그러했듯이 386세대의 지도를 충실히 따랐다. 1980년대생들에게까지도 이들의 지도력은 상당히 견고하게 유지되었다” - 이철승, <불평등의 세대>


동경하던 때도 있었다


“요즘은 얘네들이 관심이 없고 관점도 없고 무식해!” 실제로 무식해서 문제라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 꼭 유명인사나 비평가들(당시 김용민 평론가의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는 포기 선언과 같은)에게서만 나오는 말은 아니었다. 아직 대학생이던 2000년대 중후반, 졸업한 OB 선배들과의 모임을 가면, 한 번씩은 저런 말을 듣곤 했다. 당신들 때는 무슨 거창한 학생운동 참여가 아니더라도, 수배당하고 전경한테 끌려가 보지 않았더라도, 기본적인 사회에 대한 공부와 참여의식은 있었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요즘은 어떻게 교수들이 더 개혁적이야, 학생들이 보수적이고. ㅉㅉ” 한 교수는 수업 후 탄식하듯 말했다. 용산참사와 같은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부조리한 사건이 몇 차례 있었는데 교수들만 목청 높여 성명을 낼 뿐, 학생사회는 아무런 미동 조차 없음을 개탄하며 말했다. 학내 문제는 물론 사회를 향해서도 핏대 세우며 패기 넘치게 적어 내려가던 대자보 문화는 그렇게 하나둘 사라지고 있었다.


'그대 이름은 무식한 대학생’이라며 “인간과 사회에 대한 학습 부족과 성찰의 부박함을 질타”하는 홍세화 선생의 지적에 반감이 들기보다는 오히려 동의가 되었다. 그는 이렇게 일갈했다. “우리 젊은이들은 사회에 대해서는 비판적 안목을 갖고 있지 못한데 사적 관계에서는 영리하다 못해 영악하기까지 하다”


맞는 말이었다. 나 역시 대학생활이 갑갑하고 숨이 막혔다. 왜 우리 청년들은 이렇게 무기력한가. 사회에 관심이 없고 개별화되었으며 어느새 일상까지 파고든 ‘스펙’ 쌓기에만 매몰되는 지경에까지 우리 젊음이 세속화되고 타락되었나. 낭만과 반항의 젊은 시절을 동경했다.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 저) 책이 나왔을 때, “20대여, 토플책을 덮고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는 책 표지 문구에 가슴이 뛰었다. 거리를 점령했던 86세대의 20대가 부럽기까지 했다. 행동은 얌전한 소시민이었을 뿐이지만.


“나 때는 말이야…” 사실 내게는 흥미로운 사연의 이야기도 많았다. 수배를 피해 가명 쓰는 ‘도발이’ 신세가 어떻고, 어디 구치소가 어떻고, 사회구성체 논쟁과 노선투쟁(NL, PD, CA 등)이 어떻고 ‘토투’(토론투쟁, 강의실에서 교수를 상대로 학생들이 벌였다고 한다)가 어쩌고 하는 말들은, 토익책을 들고 기업맞춤형 상품이 되기 위해 자발적인 복종에 휩싸여있던 대학생활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물론 나 같은 사람은 소수였을 것이다.


모순, 그리고 양가감정


그러나 사회에 나와서 본 그 어른들 중에는 모순적인 분들도 많았다.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표현하는 게 적당할까. 아직도 청년 시절 습관에 젖어있는 듯 거칠고 투쟁적인 ‘말’은 앞세우는데 행동과 삶은 달랐다. 안락함에 젖은 그의 삶을 볼 때, 말 이상의 새로운 대안이 나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자신의 자녀는 살뜰하게 여러 사교육을 시키거나 고액 유학(고액이라고 표현한 건 글로벌 세상이 평범화되면서 일반적으로 유학을 가는 경우들이 늘었기 때문)을 보내기까지 하면서 열성을 다하는데, 동시에 교육 불평등 해결을 부르짖었다.


"진정성, 진실, 민주적, 이런 말들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집안에서는 이런 말들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 아버지들에게 일찌감치 신물이 났기 때문에..." - 임솔아 작가, '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다른 집 청년들에게는 대학 같은 거 안 가도 괜찮다, 하고 싶은 대로 발가고 마음 가는 대로 살아라, 나 때는 ‘물 찬 제비 학점’(1.0을 간신이 넘은 낙제 수준 점수)을 받았어도 가정 꾸리고 할 거 다 하고 살았다, 고생 좀 해도 안 굶는다, 젊은 게 힘이다…. 자신의 자녀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말로 보이는 저 ‘훈화’에는 감동도 가르침도 없었다. 부동산, 교육 대물림 등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개혁은 커녕 말만 앞서며 오히려 퇴행적인 기성세대들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물론 싸잡아서 일반화할 수는 없다. 여전히 말과 행동의 일치를 애쓰고 불일치에 부끄러워하며 소탈하게 또 개성 있게 사는 분들도 없진 않을 것이다.


분명한 건 이제 그들도 세월을 거스르지 못하고 뒤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 중 여전히 좋아하는 분은 더러 있을지언정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느 순간 마주한 그들의 표정은 내가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본 그 빡빡할 정도로 열정적이던 모습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뒤로 흘러가는 앞으로 나아가는


흘러갈 건 흘려보내야 한다. 그리고 이제 견인할 건 견인해내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놓쳐버린 ‘일상의 재구성'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강준만 교수는 <한겨레> 칼럼에서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르브의 “일상이야말로 그 모든 혁명이 실패하는 원인”이란 말을 상기시키며, 86세대들의 “선과 정의에 대한 과장된 수사법”과 괴리되는 “비루한 일상”을 맹렬히 꼬집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언제고 깃들 수 있는 오만이나 나약함, 오류를 인지할 줄 아는 ‘겸손’을 지니고 탄탄한 일상을 꾸릴 줄 알아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의라는 미명으로 어느 하나가 희생되거나 ‘딜’ 당하거나 생략되는 전략 사회는 흘러가야 한다. 다양성과 개성에 기반한 새로운 연대, 이제는 동네에서 나무 한그루를 가꿀 줄 아는 ‘소규모 인생계획’들이 만발하길 바란다. 투쟁과 쟁취, 영웅적 서사나 성공신화에 매몰되기보다는 자기 관심과 취향에 따라 터를 일궈가는 ‘소박한 자유인’들이 많아지길 바란다. 공직에 들어가 대의에 복무한다는 미명 하에 밤낮없이 일하며 머리털 치아 다 빠지는 걸 훈장처럼 내세우기보다는, 공직에 들어가더라도 자전거로 출퇴근하거나 퇴근 후 자기 텃밭을 일구고 이웃과 인사 나누며 일상을 소중히 가꿀 줄 알기를 바란다.


한 작고한 정치인의 말처럼 모두가 악기 하나씩은 다룰 줄 알았으면 좋겠다. 구호로 그치지 않는 저녁이 있는 삶이기를, 퇴근 후 시간을 통해 가족이나 커뮤니티에서의 삶이 풍성해지기를 바란다. 말뿐이 아닌 ‘워라밸’, 성평등, 사회문화적 다양성, 일이 아니라 삶이 중심인, 의무·책임과 자아실현이 조화롭게 형성되는 일터와 사회, 그들은 실현하지 못했으며 실현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밀레니얼들이 뚫고 나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