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키즈... 저성장으로 꺾인 세상이 남긴 흔적
연재 6
[대문사진: 영화 <국가부도의 날> 스틸컷]
나는 우리 세대에 보편적으로 물들어 있는 정서는 불안이라고 생각한다.
살아오는 과정과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나타난 사회문화적 층위가 있었을 것이다. 단연 첫출발은 사회 전체를 뒤흔든 경제적인 사건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강렬하게 심연 깊숙이 자리를 꿰찬 불안의 서곡.
중학교 2학년 시절의 교실 풍경은 아직도 생생하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충격파로 세상이 추락해버릴 듯이 뒤숭숭했다. 사춘기의 나와 또래들 역시 지대한 영향을 받았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친구들끼리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경제도 어려운데 뭘 그런 걸 하려 그래”, “경제도 어려운데 쟤는 OO를 샀네”, “경제도 어려운데…”라는 표현, 아마도 어른들로부터 전승되었을 말이 유행어처럼 앞에 붙은 채 이야기가 펼쳐지곤 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부모, 친지 중에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에 다니다가 돌연 실직을 한 경우가 꼭 있었다. 실업자 신세를 숨기고 아침에 산으로 출근하는 가장의 쳐진 뒷모습이 사회를 상징하는 풍경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인가, 한 친척 분이 나에게 “넌 뭐하고 살 거냐” 묻길래 별생각 없이 은연중에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요”라고 답했다가 “평범하게 사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니야”라는 말을 딱 잘라 들었다.
나는 왜 ‘평범’을 말했을까. 그리고 친척 분은 평범 이상의 무엇을 권하지 않았다. 적당히 취업해서 제때 월급 받고 때 되면 결혼하고 제 살집 마련하는, 당시만 해도 지극히 평범한 인생 루트를 언급하며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했다. 마지막에 한마디 덧붙였다. “사회가 만만하지 않아” 그러니까 버텨야 한다. 까딱하면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떨어진다, 가라앉는다. 백수가 된 어른들은 산 위로 성큼성큼 올라가며 하루를 시작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밑바닥으로의 추락에 대한 상들이 사회 전반은 물론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도 깊이 각인되었다.
무엇이 우리를 ‘안정’케 할 것인가
돌이켜보면 공무원이나 교사 등의 직업은 이전까지만 해도, 내가 초등학교 시절만 하더라도 인기 직종이 아니었다. 거대하고 멀쩡하던 유명 기업의 인재들이 속절없이 일터를 잃고 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어버렸다는 뉴스들이 끊이질 않았다. 장래의 불확실성을 잠재우고 안정적으로 삶의 울타리를 지킬 수 있는 최적의 직업군은 무엇인가. 교사, 공무원, 공기업은 직업적인 관심이나 매력과 무관하게 너나 할 거 없이 선망의 자리로 빠르게 물밀듯이 대두되었다. 그 후의 대인기, 무자비한 경쟁률을 거쳐 어느 순간부터는 중고생은 물론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1위가 공무원이라는 조사들이 여기저기서 발표되었다. 추세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경제적 안정성에 대한 집착에 가까울 정도의 갈망은 그렇게 IMF를 기점으로 잉태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전에 이미 사업을 하나 실패하고 친구가 하던 작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다행히 실업자 신세는 면했다. 그것만으로도 주위에서 "다행이오, 복인 줄 아시오"라는 말을 듣고는 했다. 여하튼 어디라도 붙어 있으면 복이다. 기세등등하던 '한강의 기적'은 꺾이고, 침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방어모드의 사회로 돌입했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어갔고, 불안이 공기 중으로 하늘에 둥둥 떠다녔다.
예민한 청소년기에 꽂힌 강렬한 경험은 이후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건 자명하다. 어릴 적 길들여진 입맛이 커서도 잘 바뀌지 않듯이, 우리는 “뭐해 먹고살건대?”, “그거 밥벌이는 되나?”라는 질문을 어른들로부터 뿐만 아니라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도 습관처럼 주고받았다. 대학 졸업할 무렵인 2000년대 후반이 되자, 이번에는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상징되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파고가 한번 더 불어 닥쳤다. 사회로 나가는 길은 좁아졌고 선택지는 줄어들었으며 우리의 젊은 날은 그렇게 또 움츠러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전공이었던 사회복지 영역 중에서도 남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고 월급이 적은 비영리 기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취업을 위한 준비기간이 그리 길진 않았다. 그러나 수(십)차례 반복적으로 취업도전 낙방을 겪고, 아무런 소속 없이 근처 도서관을 전전하는 ‘취준’ 생활에 지쳐버린 친한 친구가 “말로만 듣던 구직 포기자가 될 거 같다”며 울먹이던 표정은 나의 뇌리에 꽤 오랫동안 강하게 박혀 있었다.
글을 쓰길 좋아했던 나는 몇몇 친구들의 자기소개서 첨삭을 시작했다. 아직 오래 살지도 않은 인생 대하소설 쓰듯 대소사를 구구절절 쓰지 말자. 핵심 몇 개만 키워드로 추려서 정리해보자. 과장된 수사와 군더더기를 빼고 표현을 구체적으로 적어보자. 만나서는 빨간펜을 그었고, 서류제출 이전까지 메일로 주고받으며 성의껏 살폈다. 그 덕을 조금 봤는지, 결국 꽤 괜찮고 안정적인 회사에 친구가 들어가게 되었을 땐, 나 역시 매우 기쁘기도 했다. 그런데 녀석은 얼마 안 있어 착취 수준으로 일을 시키는 회사에 질려 이직을 준비했다.
불안 x 낙오 공포 = 스펙 경쟁
낙오의 공포와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으로서 시작된 것이 맹렬한 ‘스펙 쌓기’ 경쟁이다. 불안을 개별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그러나 끝없이 반복되는 쳇바퀴 속 달리기였다. 생각해보면 내가 막 스무 살 무렵이던, 한일 월드컵의 열기로 뜨거웠던 시절만 하더라도 약간의 낭만은 있었다. 그나마 숨통이 트였던 시기였을까. 아직 ’스펙’이란 말이 통용되던 시절도 아니었다. 반드시 무언가를 ‘증명’ 하기 위해 활동을 하지도 않았다. 동아리든 학생회든 사회참여든 전혀 엉뚱한 무언가를 꾀하든 연애든 그냥 마음이 가면 했다. 그런데 군대를 제대하고 다시 학교로 간 2000년대 중후반에는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져있었다.
‘스펙’이란 말이 청년층과 대학가에 일상화되었다. 숨 막히는 입시를 마친 청년들은 숨 돌릴 틈이 없었다. 곧이어 입시보다 어쩌면 더 지독한 취업경쟁 모드로 전열을 가다듬는 태세였다. 방학이 끝나면 학기초부터 도서관, 열람실이 비타 500이나 핫식스와 같은 피로회복제를 든 젊은 인파로 북적였다. 학교 앞에서 술 먹고 객기를 부리는 모습은 젊음의 나사 풀린 추억으로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야말로 진상이 되어갔다. 인턴 준비, 창업, 외국어 등 실용적이고 스펙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모임이 아니면 멤버를 구하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학은 진리의 상아탑은커녕 거대한 취업준비기관이 되었고 계속 심화되어 갔다.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자유의 시대는 곧 자격증의 시대가 되어버렸다”고 통탄하며 트랙에서 과감히 빠져나오는 움직임도 없진 않았다. 2010년 김예슬은 서열과 경쟁 논리의 첨탑이 되어버린 대학을 자발적으로 떠났다. 고뇌에 찬 그러나 분명한 어조의 비판 정신을 담은 자퇴 선언문을 대자보에 손으로 꾹꾹 써서 내걸었다. 불발은 아니었다. ‘길 잃은 88만원 세대의 저항 선언’ 보도들이 한동안 사회를 울렸다.
“언제까지 쫓아가야 하는지 불안하기만 한 우리 젊음이 서글프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을 용서받고 경쟁에서 이기는 능력만을 키우며 나를 값비싼 상품으로 가공해온 내가 체제를 떠받치고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며 그는 용감하게 자신 몫의 돌멩이를 거대한 탑에서 빼내어버렸다. 나는 그와 같은 용기는 없었지만, 선언에 공감하여 오랫동안 감화되어 있었다. 한 번의 외침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여기저기 글을 공유했다.
이제는 내게도 까마득한 후배들이자 거의 조카뻘인 요즘 20대와 대학생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스펙은 더 전면화되었다. 이제는 자격증 혹은 증명서 발급이 없으면, 자기소개서에 한 줄 들어갈 무언가가 아니면 잘 움직이지 않는 세태들이 더 적나라하게 늘어나고 있어 보인다. 인턴, 봉사활동, 서포터즈 증명 등등. 내가 일했던 기관에서도 그랬다. 이런 발급 서류를 제시해야 청년, 대학생을 참여시킬 수 있는 최소한의 유인책이 된다고 하며 일을 기획했다.
‘특전: (자원봉사 혹은 서포터즈) 활동 증명서를 발급해드립니다’ 문구를 홍보물에 새겨 넣었다. 나중에 활동을 마치면 나름 근사하게 상장 포맷에 맞춰 기관장 직인을 찍어서 청년들에게 선사하는 전달식을 가졌고, 받아 안은 그들은 일말의 뿌듯함을 가슴에 안은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내가 일을 했던 작은 기관에서 받은 ‘증명’ 서류가 얼마나 도움이 되었겠냐만은, 있는 집 부모들은 훨씬 공신력 있는 기관을 통해 이런 것들을 품앗이하듯 서로 발급해주는 세태를 보면, 실제 입시나 취업에서 당락을 좌우하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증명과 스펙에 집착하는 청년을 그저 나무랄 수도 없다. 이건 현실이고 기성의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다.
(실제로 상황은 좋아지지 않고 있어 보인다. <세습 중산층 사회> 조귀동 저자는 지금의 30대인 80년대생에게만 해도 문이 닫히고 있긴 했지만 “가끔은 존재했던 육체 노동자나 소상인 자녀가 대기업에 취업하는 일은, 이제 20대에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는 암울한 추세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다. <불평등의 세대>를 쓴 이철승 교수도 IMF는 어쨌든 고통의 시간이 몇 년 후 지나가긴 했지만, “오늘날 청년 세대는 끝 모를 불황의 터널 입구에서 터널을 좀 더 편하게 지나갈 수 있는 열차의 자리 몇 개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