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는 게 두려워졌다. '보수 교육'이 필요한 시간
연재 3
오랜만에 장례식장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스무 살 무렵에 만나 만날 술잔을 기울이며 평생 우정을 되뇌던 사이였다. 그러나 사회생활 영역이 달라지고 관심사도 나눠지고 결혼하여 가정이 생긴 경우들이 많다 보니, 해가 갈수록 드문드문 만나게 된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친구 A의 얼굴이 많이 낯설다. 꽤 ‘귀염상’이던 놈인데, 아이고 정말 아저씨 다 됐구나. 배는 또 왜 이리 나왔냐. B도 만만치 않다. 애당초 노안이긴 했지만, 이젠 영락없이 아재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요 몇 년 사이 이 친구들의 현저히 변한 외모에서 나는 성큼 가버린 세월을 직감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상대적으로 동안이구만.
어렸을 적 삼국지 게임을 좋아했다. 장수들의 얼굴과 나이, 그리고 무력, 통솔력 등 능력치들이 화면에 떠있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외모가 ‘특정 시점’에서 변했다. 예컨대 28살에서 34살의 유비는 변함없다가, 35살이 되는 해에 수염이 길고 주름이 살짝 덧붙여지면서 변하는 식이었다. 사람 외모도 그렇게 보일 때가 있다. 엇비슷하다가 어느 순간 눈에 띄게 변하는 ‘터닝 포인트’가 있는 듯하다. 물론 사람마다 다른 것 같긴 한데, 예를 들어 서른에서 서른대여섯 정도까지는 변화가 미미하다가, 서른일곱이 되는 해에 나이가 확 묻어나게 바뀐다든지 하는 식 말이다.
그날 본 친구들의 모습은 갑자기 청년에서 중년으로 넘어가버린, 세월의 더깨가 한꺼번에 눌러앉은 이질감으로 다가왔다. 30대 후반이니. 청년의 끝을 부여잡고 싶겠지만 현실은 중년에 가까운 것도 무리는 아니지. B의 아버지 장례식장이었다. 아직 60대 어른인데 안타깝다. 요즘 평균 나이로 보았을 땐 많이 일찍 돌아가신 편이긴 했지만, 이제 우리도 상주로서 부모님을 보내드릴 나이가 되어가는 것이다.
외모뿐만은 아니다.
기억력도 서서히 예전 같지 않음이 느껴진다. 스펀지처럼 바로바로 트렌드나 정보를 업데이트하고 흡수하던 나이를 지나, 이제는 두세 번 반복해서 봐야 하고 조금씩 버벅거리는 딜레이 현상이 나타남이 감지된다. 처음엔 “이제 꺾인 건가…ㅠㅠ”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점점 낯설지 않아지고 있다. 우리보다 더 나이 많은 어른들은 “너희 때 정도는 아직 한창 때고 괜찮아!”라며 버럭 하시겠지만, 20대나 서른 무렵의 팔팔했던 시절과 비교해 한풀 꺾임이 느껴지고 점차 그렇게 되어감이 체감된다는 말이다.
“아빠의 복고는 ‘쎄시봉’이다. 나의 복고는 H.O.T ‘캔디’ 되시겠다” -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시원의 독백 중
새로운 걸 집어넣기를 힘들어하거나 익숙함에 매몰되는 경향도 엿보인다. 동갑내기 친구와 근교 강화도로 캠핑을 간 적이 있다. 야외에서 분위기를 낸다며 블루투스 스피커를 챙겨 왔는데, 여전한 노래들, HOT, 터보, GOD, 성시경, 이소라, 자우림 등등 90~2000년대 가요만 잔뜩 흘러나왔다.
그야말로 응답하라 시리즈가 OST로 이어졌다. 업데이트되지 않는 옛 노래에 익숙해하며 즐기는 우리를 보며, 만날 엇비슷한 레퍼토리만 주야장천 틀고 부른다며 속으로 투덜거리곤 했던, 즉 '아파트'와 '남행열차', 아니면 신해철의 ‘그대에게’ 혹은 소방차 노래를 반복해서 틀어놓고 놀았던 윗세대들 모습이 복사본처럼 오버랩되었다. 우리의 복고는 나팔바지가 아니라 힙합 바지다. 이제 주책없이 '통큰 바지'를 질질 끌고 다니진 않지만 그 시절 각인된 유행가는 불멸의 추억으로 반복된다.
“사람들이 어린 시절에 깊은 향수를 품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어린 시절 느꼈던 그 완벽한 평온과 순간적 몰입을 다시 경험하기가 점점 더 힘들다고 느낀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내 인생 구하기> 저자 개리 비숍은 ‘몰입’(flow)을 쓴 심리학자를 인용하며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삶이 한층 복잡해질수록 우리는 더욱 비참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나이 들면 혼돈에 파묻힌 공허에 질식할 수 있다는 거다. 세월이 지나고 나이 듦에 따라 갖은 자극과 경험이 쌓이고, 그렇게 복잡해질수록 심리적 엔트로피, 즉 의식의 무질서 상태를 겪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몰입을 방해하며 집중도와 목표 수행력을 떨어뜨린다. 마음먹고 뜻한 바에 대한 추진력을 지체시키고, 심리적 에너지를 비효율적으로 소진시킨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건, 성숙되는 면도 있겠지만 먼지와 때가 조금씩 낀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인생의 정리되지 않은 잡동사니와 잡음들이 쌓이고 제때 치우지 않으면 심신의 명료함을 유지하기 힘들어지는 기분. 확실히 어릴수록 어떤 변화의 계기를 잘 받아들이며 스스로에 대한 청소도 반성도 쇄신도 빠르다. 어릴 때는 주위에서 방해와 갈굼, ‘그게 되겠니?’라는 식의 냉대가 있어도 무시하거나 ‘받아치고 나간다!’는 식의 오기가 발동하여 긍정적인 추동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어설프게' 세상 겪고 나이 든 지금은 오히려 퇴행이다. 사소한 말 한마디와 자극에 그간 쌓인 편견과도 같은 경험들이 버무려져 지나치게 반응하고 소모적으로 흔들린다.
지금 이때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자칫 무언가에 대한 중독으로 가거나 심신의 안 좋은 습관이 쌓여 건강을 망치는 길로 가지 않나 싶다. 이런 거 보면 인생은 무섭고 냉정하다. 당장은 티 안나는 그러나 지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매일의 사소한 행위들이 차곡차곡 누적되고 습관화되며, 결국 이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한다.
겁도 많아지고 이것저것 잰다. 무언가 도전할 때 아예 포기해버리는 건 아직은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듯 아쉽다. 그렇다고 확 뛰어들기도 머뭇거려진다. 살면서 몇 번의 크고 작은 실패와 좌절을 겪는 경험들이 누적되다 보니 자신을 내던지는 게 두렵고 몸을 사리게 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성공한 사람들의 낭만이다. 연이은 실패는 잘 씻기지 않는 스크래치들을 그어 놓아 쓰라린 자존감 추락으로 이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소스라친다. 좌절과 거절의 경험이 어느 정도 쌓이면, 과거 기억을 제멋대로 들춰내어 지금 순간과 매칭 시킨다. ‘이번에도 안될 거고 안되면 또 아플 거야…’라고 어지러이 속삭이며 두려움을 잉태시킨다.
그래서 이제 나이 먹는 게 두려워졌다. 세상에 물들어가며 쌓인 크고 작은 파편적인 경험들, 사실 완전하지도 않으면서 ‘어설프게’ 세상을 겪은 데서 나오는 애매한 몸 사림, 설렘보다는 냉소, 해보니 별거 없다는 체념 등등.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깊이 있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도 몰입하여 덤벼드는 순간도 점점 멀어져 간다. 아는 게 병이다. 차라리 모르면 다가간다. 사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나와주세요 '곤도 마리에'
이제 지금쯤 ‘곤도 마리에' 같은 사람이 필요한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수납/정리 정돈법으로 유명세를 얻어 독보적인 정리 컨설턴트로 불리는 사람. 유치원 다닐 적부터 ‘정리 마니아’였던 자신의 장기를 잘 살려서 책은 물론 영상 속에서도 맹활약 중인 일본인 여성. 넷플릭스에서 본 그녀는 제때 정리하지 못하고 치우지 않아 엉망으로 돌변한 집을 방문한다. 공간과 분위기는 사람들의 삶을 일상에서부터 지배한다. 도저히 손 쓸 엄두를 못 내고 쌓여버린 짐을 보며 한숨만 내쉬는 사람들을 향해 그녀는 여유 있는 웃음을 지으며 손을 건넨다.
차근차근 짐들을 꺼내고 필요 없는 것들은 싹 내다 버리며 감정이 남아 있는 물건들 위주로 재정리하게끔 코칭한다. 사람들은 땀 흘려 낑낑거리며 며칠이고 집안 정리에 나서고, 결국 전혀 새로운 공간을 맞이하며 감격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아직까진 노력하면 비워내고 터득하면 쫓아갈 수 있게 느껴진다. 저절로 알아서 자동 업데이트하던 시절은 점차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곤도 마리에와 같은 '계기'를 만나 제대로 정리하고 처분하고 보수 교육을 한다면 빠릿빠릿하던 한창때 청년시절 보다야 조금 버벅거리겠지만 궤도를 되찾고 올라탈 수는 있을 것 같다. 오히려 그동안 알게 모르게 쌓인 경험의 힘과 더불어 더 발전하고 깊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주기적으로 정돈하고 스스로를 비워내고 보수하며 다시 채워나갈 것인가, 제대로 된 자기 관리와 학습은 마흔 이후의 모습과 생활을 좌우할 것이 분명하다. 여전히 호기심 많으며 찌들지 않은 생생한 삶의 자세를 지탱시켜 나가기를. 그리고 젊음의 순발력이 담지 못하는 넓은 숲을 보는 시야와 깊이도 담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