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안 굶었다. 비교는 짙었다

상대적인 박탈감, 이제 그만

by 이웃주민

연재 2


KBS 음악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줄임 ‘유스케’)을 보았다. 500회 특집을 맞이해 ‘유스케’의 전신 격인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이소라, 이문세 가수가 출연진으로 나왔다. 과거 1990년대 ‘이문세 쇼’ 당시의 영상도 중간중간 삽입되어 나왔다. 그 시절 앳된 그의 모습이 새삼스러웠다. 찾아보니 59년생 이문세는 당시 30대 후반이었다. 연예계에서 맹활약하며 갖은 인맥으로 여러 슈퍼스타들을 출연시키고 했다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즐겁게 웃으며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갑자기 불현듯 열등감 비슷한 감정이 올라왔다. 내가 지금 저 나이인데. 90년대 저 때면(이문세 쇼는 95~96년경 방영됐다) 막 중학교 진학하던 시절이었을 텐데, 그때 본 이문세, 30대 후반 아저씨는 그야말로 중후하고 무게감 있는 사회의 중추였다. 화면 속으로 풋풋한 20대 신예였던 유희열을 소개하며 한껏 선배 티를 내고 있는 그의 모습이 흘러나왔다.


96년이면 이문세가 우리 나이로 딱 내 나이 정도구나. 지금 나는 뭘까? 이문세와 동갑인데, 사회에서 어떤 역할과 자리를 차지하며 일하고 있는가. 꼭 그렇지 않아도 나 스스로 행복하고 일과 일상에서 알차며 보람된 삶을 살고 있는가. 무엇 하나 손에 잡히거나 만족스러운 게 없다고 느껴졌다. 그러다가 드는 한심스러운 생각. 참 할 일도 없다. 연예인 보면서 자신과 비교? 대상 설정도 경우에 맞지 않고 비현실적인 것이다.




상대적인 박탈감

사실 남들과의 비교, 우열, 상대적인 열등의식은 나에게도, 그리고 주변 친구들에게도 줄곧 익숙한 감정들이었다. 새천년을 넘어서 성년을 맞이한 우리는, 이런저런 경제적 파고에 노출되긴 했지만, 밥을 굶는 세대는 아니었다. (정치적)민주주의가 틀을 잡고 자본주의 시스템이 커다란 의문 없이 대세로 정착한 사회를 살았다.


중고등 교육은 물론 대다수의 친구들이 다들 가는 건 줄 알고 대학에 진학했다(진학률이 80%를 오르내렸다). 문제는 ‘얼마짜리’ 밥(편의점 흙밥이냐 값비싼 레스토랑이냐)을 먹느냐, 그리고 '어디' 대학을 다니느냐, 좋은 대기업이냐 불안한 벤처나 소기업이냐 등으로 ‘엄친아’들과 계속 비교당하고 재단당했다. 학력은 인플레였고 경제는 저성장(항상 경제가 안 좋다는 말만 듣고 살았던 기억이다)이라 양질의 취업문은 좁았다.


수능 배치표를 따라 대학에 들어가니 ‘훌리건 천국’이라는 인터넷 카페가 대유행이었다. 1점 차이로 갈리는 전혀 의미 없는 미미한 수준의 커트라인 조차 그들에게는 우열을 가르는 서열 놀이로 인식되었다. 상위 대학에 다니는 녀석들은 끊임없이 점수가 조금이라도 낮은 대학생들을 하대하는 언사들을 내뿜었고, 수능점수 상 밑으로 갈수록 열등감과 박탈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지잡대’ 등의 천박하고 모멸적인 표현도 이 당시에 생겨났다.


이후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없는 직장에서 내내 사회생활을 한 나로서는 가슴 한 구석으로 결핍과 열등감이 들어차 있었음은 분명하다. 스스로는 내가 선택한, 그리고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마음을 다지고 동기부여를 하곤 했지만, 어른들을 만나거나 할 때면 한마디로 표현되지 않는 나의 사회적 자아가 애처롭고 씁쓸했다. 이러저러한 일을 한다고 의미를 길게 설명하는 것도 구차했다.


공공기관, 대기업, 전문직 등으로 명확하게 선호 직장들이 나뉘던 시절도, 그것이 곧 ‘결혼시장’ 등지에서의 등급이 되는 것도 우리 때부터는 평범한 일이 되어버렸다. 서울의 한 대학 교정에 무명으로 붙어 있던 대자보에는, 잘 '세일즈'되거나 '쓸모' 있는 사람이 아니면 존재 자체가 아닌 시대의 풍경을 나타내고 있었다. "잘 팔리지 않는 책을 읽고, 잘 팔리지 않는 영화를 보고, 잘 팔리지 않는 음악을 들으며, 성과 없는 하루를 보내고, 전략 없는 사랑을 하며 웃음다운 웃음을 웃고 싶다. 세상이 버린 것들을 사랑하면, 너인 너를 볼 수 있을까? 쓸모 있는 너나, 쓸모없는 너가 아닌 잘 팔리는 너나, 잘 팔리지 않는 너가 아닌, 그냥 너인 너를 볼 수 있을까." - 2010년 성균관대 캠퍼스에 붙은 글


그냥 너는 없었다. 명절에 웃으며 집에 가는 친구들과 달리, 고향에 가지 않고 학원으로 숨어 들어가는 사회의 유령들인 ‘취준생’의 존재가 널리 일상화된 것도 그때부터다. 언제부턴가 그냥 ‘사람’이라든지 누구의 딸, 아들, 오빠, 친구가 아니라, 이러한 우열성이 내재되어 있는 사회적 잣대들로 비교당했다. 뒤쳐지거나 기준에 맞지 않으면 사람 존재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래서 집단에서 피해 고립되는 사례들이 많아졌다. 이는 당장 밥을 굶는 절대적인 빈곤의 형태와 다르다. 타인과의 비교에서 잉태되는 ‘상대적인 박탈감’이다. 그 결과는 스스로 섬이 되어버리거나 어떠한 집단이나 영역에 속하지 못하는 ‘사회적 문화적 배제’로 이어졌다.


비교는 이제 그만

분명 마흔 살은 사회의 중추다. 요즘처럼 사회진출이 늦어지고 고령화가 되어가는 사회에서도 약간 젊은 신진 중추는 될 것이다. 30대 후반도 많은 것을 이룩할 수 있거나 이미 이뤄놓았을 수 있는 나이다. 박정희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킨 김종필이 초대 중앙정보부장으로 발탁된 때가 서른다섯이다. 시대를 같이 살아가고 있는 386 세대만 하더라도 이 시기 요직에 집단적으로 진출하거나 사회의 방향을 좌우했던 세력이었다. 그런 거에 비하면 우리 세대는 전반적으로 지체되어 있는 건 맞다손 치더라도, 거기에 비교하면서 박탈감이나 열등감에 빠져 인생을 허비할 필요는 사실 없다. 불합리한 점이 있다면 차라리 소리 지르고 항의하는 게 훨씬 건강할 것이다.


그리고 각자의 영역과 생활의 터전에서 의미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한 가치관을 지니고 실천하려 하고 있지만, 꽤 깊게 내재화된 비교와 우등 열등을 따지는 통념은 종종, 아니 자주 나의 심리를 괴롭힌다. 아예 어떻게 해서든지 주류적인 삶의 트랙으로 편입을 했더라면 마음은 편했을까.


그랬을 거 같지도 않다. 나는 겉보기와 달리 삐딱한 기질이 있다. 누가 떠밀어서가 아니라 결국 스스로 지금과 같이 살아가는 선택을 했다. 책임을 져야 한다. 어떤 영역, 좋아하는 분야에서 지금 빛날 수도 나중에 빛날 수도 혹은 중간에 빛날 수도 아니면 영영 빛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사실 ‘빛’이 항상 좋은 것도 아니다. 한껏 주목을 받았다가 얼마 못 가고 파리하게 추락해버린 내 또래 스타도 여럿 있다. 남들 눈에 자주 띄는 인생은 또 얼마나 피로한가. 그것보다 눈에 안 띄는 고유한 무언가를 할 수도 있다. 만인에게 빛나는 것뿐 아니라 주위에서, 동네에서, 아니 단 한 사람에게 소중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축하해주고, 단절되고 배제되어 버린 친구가 있으면 곁에 있어주며, 그러면서 나의 개성과 역할을 잘 쌓아가고 발휘하면 되는 것이다. 비교는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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