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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노 Aug 16. 2019

20화_혁신이란 무엇인가 part.4

#콘텐츠 분석: 핸드폰 디자인 변천사

영국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적 다양성을 주장하며, 언어표현이 언어게임을 통해 의미를 갖는다고 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언어게임이란 일종의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 가령 가령 어떤 외국인이 다가와 우리에게 길을 묻는다고 가정해보자. 아마 우리는 그에게 서툰 영어와 제스처를 사용하여 길과 건물들을 묘사하며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이 때 사용하는 우리의 짧은 영어(Go straight, Here, Left side 등)와 길을 가리키는 제스처들은 오로지 행인에게 길을 안내하는 상황에서만 특정 의미를 갖는다. 만약 다른 상황이라면 그것들은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못하거나, 혹은 의도한 바와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비트겐슈타인이 언어 표현이 언어게임의 무대 위에서만 의미를 가진다고 주장한 이유이다. 



그럼 이번엔 앞서 든 예시에서 우리의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있다는 설정을 하나 추가해보자.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굳이 힘들여 짧은 영어와 제스처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그저 핸드폰을 꺼내 목적지를 검색하고 그에게 지도를 보여주면 된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음성기호와 행동기호에서 문자기호와 이미지로 그 중심이 넘어가버린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언어표현은 우리에게 주어진, 혹은 설정된 맥락(언어게임) 속에서 삶의 형식의 요소로써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언어기호로 소통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과 이미지와 문자기호로 소통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 서로 길을 가르쳐주는 방식이 서로 극명하게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레마스의 제자 자크 퐁타닐 교수는 이러한 비트겐슈타인의 개념을 차용하여 삶의 형식을 중심으로 감각과 몸, 인지의 기호학적 의미작용을 설명하였다. 그러니까 인간은 기호학적 대상인 텍스트, 이미지, 오브제, 문자 등의 경험을 통해 각자의 삶의 형식을 완성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삶의 형식이란 곧 개인의 기호학적 경험이다. 기호학적 경험이라고 해서 대단한 건 없다. 어차피 우린 기호의 세상 속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가령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것조차도 기호학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철을 기다리는 것도 기호학적 경험이 된다. 길을 건너는 것도, 여행을 가는 것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일상생활 속에서 이러한 기호학적 경험을 통해 나름의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간다. 



이를 핸드폰에 적용하면 역시 동일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1세대 브릭폰에서 4세대 스마트폰으로 넘어오는 동안 핸드폰은 갈수록 작아지고, 디스플레이의 크기를 키우는 등 기술적 성과와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변화해왔다.


예를 들어 1세대 핸드폰은 오로지 통화만 가능했다. 하지만 2세대 핸드폰부터는 문자가 가능해졌다. 인터넷 통신에서나 활용되던 이모티콘이 널리 퍼졌고, 통화의 일부를 문자가 대신하게 되었다. 특히 문자를 자주 이용하는 학생들에게는 알을 교환하고 확인하는 것이 일종의 친목 문화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3세대 핸드폰부터는 사진촬영, DMB, 게임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서비스가 가능했다. 소위 말하는 셀카문화가 확산되었다. 컴투스처럼 모바일 전문 게임을 제작하는 회사도 등장했다.


4세대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이러한 변화는 극에 달했다. 이제 더 이상 학생들은 알을 교환하지 않는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폰에서는 카카오톡을 활용하면 무료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셀카 문화는 더욱 발전하여 아예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사람들은 이렇게 기록한 자신의 일상을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업로드하며 타인과 소통한다. 영상의 규격도 바뀌었다. 4:3, 16:9 비율을 고수하던 영상의 화면비율이 스마트폰을 통한 동영상 소비가 늘어나면서 세로라이브 같은 가로보다 세로가 더 긴 영상, 혹은 인스타그램의 환경에 맞춰  정사각형 비율을 가진 영상 콘텐츠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렇듯 변화한 핸드폰 디자인은 소비자에게 특정한 기호학적 경험을 제공한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각각의 핸드폰 사용 세대들은 자기들만의 핸드폰 사용 양식을 만들어냈다. 이것이 바로 퐁타닐이 주장하는 삶의 형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형식은 곧 삶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말하자면 핸드폰(기계)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바꾼 것이다. 이제 핸드폰은 일상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도구를 넘어 필수 요소로, 필수 요소에서 삶의 동반자에까지 등극했다. 10년 전만 해도 우리는 핸드폰 때문에 맨홀에 빠지고, 교통사고를 당한다는 걸 상상도 하지 못했다. 만약 10년 전의 누군가가 오늘날의 지하철 풍경을 본다면 기가 찰 것이다. 핸드폰과 대화를 한다니(시리야~). 그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그런데 그런 비현실적인 일들이 지금은 당연한 일상의 풍경이다.



아이폰이 처음 출시되었을 당시, 애플이 내세운 광고의 주요 키워드는 바로 감성이었다. 쟁쟁한 경쟁사들이 앞다투어 신제품의 기능을 자랑할 때, 애플은 고객의 내면을 건드렸다. 세계 최초로 상용화된 스마트폰을 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애플은 자기들이 내놓은 혁신적인 예술작품이 타사의 핸드폰에 비해 기능적으로 떨어진다고 생각했을까. 글쎄, 그건 아닐 것이다. 그건 아마도 그들이 단순히 기술적 성과를 자랑하기에 머무르기보다 패러다임을 바꾸었기를 택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인간의 삶은 완전히 변화했고, 핸드폰은 더 이상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마치 의식주처럼 21세기의 인류에겐 스마트폰도 생필품이다. 애플과 스티브 잡스는 그 변화를 읽어냈을 뿐이다. 이제 기술은 단지 구경거리가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뿐이다. 이제 기술은 이제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애플은 보다 감성적이기를 택했다. 어쩌면 이는 새롭게 부는 新 르네상스이자 新 인본주의의 바람일지도 모른다. 또한 스티브 잡스를 세기의 혁신가라고 부르는 이유고, 우리가 배워야할 점인지도 모른다. 혁신이란 무엇인가. 이젠 여러분이 그 답을 보여줄 차례다.




※본 글은 '로라 오즈월드'의 <마케팅 기호학>을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백교수님의 가르침,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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