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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노 Oct 29. 2020

[Review] 어제를 잊은 그대에게 (with.커피)

도서 '시간 블렌딩'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지나간 어제를 커피 한 잔처럼 맛있게 마실 여유가 아닐까?"


나는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쓴맛이 싫다기보다는 굳이 사 먹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달까. 애초에 나 같은 막입은 커피를 즐길 줄도 모른다. 물론 어렸을 때는 제법 마셨다. 호기심에, 아니면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은 마음에 그랬나 보다. 하지만 마음대로 커피를 사 먹을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커피는 이상하게도 내게서 멀어져 갔다. 아니, 내가 멀어졌다.


그런 내가 연애를 할 때는 커피광이 되었다. 그때는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또 뭐가 그렇게 할 이야기가 많았는지 모르겠다. 하루에 많으면 카페를 세 번이나 간 적도 있었다. 물론 세 번 다 다른 카페였다. 친구들과 있을 때도 자주 카페를 간다. 술을 즐기지 못하는 우리에게 적당한 2차 장소는 카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회사 사람들과 자주 카페를 간다. 사무실 안에서는 제대로 쉴 수 없다는 우리 팀장님의 지론 아래 우리의 점심시간 도피처는 회사 밑의 작은 카페가 된다. 거기서 수다도 떨고 서로 웃는다. 그 시간들이 꽤 즐겁다.


"커피보다는 커피 마시는 그 시간이 더 좋은 거겠지."


생각해보면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카페에서의 시간을 즐길 수 있었던 데에는 주변 사람들의 덕이 컸던 것 같다. 내가 머무르는 카페에는, 내가 마시는 카페에는 사람들이 항상 함게 있었다. ‘커피보다는 커피를 마시는 그 시간이 더 좋은 거겠지.’ 그렇다면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들이 더 좋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루에 두 잔의 시간을 심어 놓은 것으로부터 행복을 느낀다면 사치일까마는 작은 행복이야 라고 말할래”


< 시간 블렌딩 >은 저자가 커피와 함께 보낸 소소한 어제를 기록한 책이다. 자몽 파인에이드와 함께한 월요일, 에스프레소와 함께한 화요일, 크루아상과 함께한 수요일 등등. 그가 마주한 숱한 어제들이 책 안에 빼곡하다. 그 어제들을 담백하면서도 친근한 문장으로 저자는 솔직하게 전달한다. 여기에 글자들과 함께 실린 각종 사진과 그림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읽는 재미를 더한다.


아마 이 책을 읽고 나면 절로 카페가 가고 싶어질 것이다. 혼자 가도 좋고 둘이 가도 좋다. 여럿이 가면 더 좋다. 책을 읽어도 좋고 글을 써도 좋다. 수다를 떨어도 좋다. 음료는 늘 먹던 걸 주문해도 좋지만 이번만큼은 왠지 새로운 걸 시켜보고 싶을 것이다. 상큼한 걸 원한다면 자몽에이드는 어떨까. 혹은 단 게 땡긴다면 티라미슈 라떼는? 뭐든 좋다. 아무거나 한 잔을 시켜놓고 여러분의 하루에 심어보기를 바란다. 아마도 그 한 잔은 아침 출근길의 전철처럼 매일 꼬박꼬박 찾아오는 작은 행복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미래가 아닌 과거야.


패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에 나오는 문장이다. 오늘날 우리는 현재에 충실한 것을,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그렇게 배워왔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패트릭 모디아노의 말처럼 결코 과거를 떼어놓고 우리 자신을 말할 수는 없다. 과거는 우리에게 이른 바, 본성이다. 사람이 가장 약해질 때 지나가버린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향수에 젖는 게 그 증거다. 하고많은 노래들이 지나간 사랑을 노래하는 이유다.


혼자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가만히 있어 보시라. 처음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러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를 지나간 것들이 채운다. 어제와 그제. 헤어진 연인, 스무 살에 만난 대학 동기들. 그 외 기타 등등.


그러니까 때로는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 지나간 하루들을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커피를 함께 곁들인다면 더욱 좋다. 블렌딩Blending. 서로 다른 커피 원두가 볶아졌을 때 더 깊은 향기와 맛이 나는 것처럼 시간에도 블렌딩이 필요하다. 현재에만 충실할게 아니라 때로는 당신과 우리의 지나간 하루들을 삶에 곁들일 때 우리의 시간은 더욱 더 풍성해지고 깊어진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후회가 아닌, 토닥이고 싶은 시간들을 만나고 싶었지."


충실한 하루를 사는 건 너무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건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우리는 ‘후회’라는 걸 한다. 후회를 하지 않는 방법은 없다. 우리에겐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은커녕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 또한 없으니까. 다만 후회를 극복하는 방법은 있다. 그건 지나간 나의 어제를 껴 안아주는 것이다. 시간들을 토닥여주는 것이다. 수고했어 오늘도. 이번 주도, 이번 달도. 그리고 올해도.

 

오늘은 목요일이다. 우리는 보통 금요일이 아닌 목요일에 한 주의 대부분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체감한다. 음.. 금요일은 다가올 주말로 인한 설렘으로 정신이 없기 때문일까. 어쨌든 오늘은 그런 목요일이다. 저자는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한 주의 반이 구수한 맛이었는지, 쓴맛이었는지. 아니면 어떤 다른 맛이었는지를 곱씹으며 남은 시간들의 맛을 기대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오늘은 카페에 들려 지난 한 주의 맛을 곱씹어 보는 건 어떨까. 나의 한 주는 에스프레소였나, 카라멜 마끼야또였나. 지나온 맛은 지나온 맛대로, 남아 있는 맛은 또 남은 맛대로. 내가 느끼는 느낌대로, 내가 생각하는 생각대로. 그래, 그렇게. 우리의 어제를 맛있게 마셔보는 거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0516 (아트인사이트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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