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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노 Apr 29. 2021

[칼럼] 아우라AURA의 부활

NFT와 메타버스

(1) 벤야민의 아우라AURA 


‘아우라’라는 말이 있다. 보통 매력적인 사람이나 혹은 예술 작품 등에 주로 사용하는 이 말은 대상에 어린 독특한 분위기를 뜻한다. 한편 이러한 아우라를 단순한 수사가 아닌 학문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한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발터 벤야민’이다.


독일의 철학자인 발터 벤야민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화학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특히 그가 활동했던 20세기 초는 기술의 발전으로 사진과 영화 같은 새로운 예술 장르가 등장하던 때였는데 벤야민은 새롭게 등장한 예술들을 서구 지성사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벤야민은 마르크스 이론을 바탕으로 서구 사회와 문화를 연구하는 '프랑크푸르트학파'에 속해 있었다. 문화산업 연구의 시초자로도 여겨지는 이들은 사진과 영화 같은 새로운 예술(대중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이들은 대중문화가 자본에 종속되어 있으며, 각자의 취향이나 개성을 획일화한다고 보았다. 또한 교묘한 방법으로 대중의 무비판적인 수용을 조장하여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확산하는데 일조한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벤야민은 생각이 달랐다. 그는 다른 프랑크푸르트학파 학자들과 달리 대중문화의 순기능에 주목했다. 우선 그는 대중문화가 그동안 서구 역사에서 소외되어왔던 대중과 예술의 수용자들을 예술의 중심에 데려다 놓는다고 보았다. 예술을 감상하는 관점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작가의 의도에 맞춰 예술을 감상하고 해석하는 게 주류였다면 대중문화는 수용자가 예술작품을 보고 느끼는 바에 초점을 맞춘다. 또한 대중문화는 기술의 발달로 인해 자기복제가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었는데 덕분에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을 보급할 수 있었고, 이는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의식적 성장을 유도했다.


여하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벤야민은 '아우라'를 예술 작품에 어린 기묘한 분위기, 경외심, 권위 등으로 정의했다. 그렇다면 아우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벤야민에 따르면 그 답은 예술의 희소성과 고유성에 있다.


회화나 조각 같은 기존의 예술작품들은 일일이 사람의 손을 거쳐야 했기에 완성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복제품을 만드는 일도 쉽지 않았다. 설령 어떻게 복제품을 만든다고 해도 원본과 미세하게나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만약 원본이 망가져 버린다면 그 작품은 영원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예술의 원본이 지닌 가치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이렇게 높아진 가치는 예술을 일부 엘리트 계급만 소비할 수 있게 만들었고, 낮은 신분의 사람들에겐 그저 먼 동경의 대상이 되도록 방치했다.


(두 사진 중 무엇이 원본이고, 무엇이 복제본일까?)


하지만 사진과 영화 같은 대중문화는 다르다. 앞서 말했듯 대중문화는 자기 자신을 복제하여 대량으로 생산을 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만약 당신이 오늘 찍은 사진을 친구에게 나눠주고 싶다면 똑같은 사진을 한 장 더 인화해서 건네주면 된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라면 복사-붙여넣기 기능으로 파일을 하나 더 만들어 친구에게 보내주면 된다. 또한 이렇게 만들어진 복제품은 원본을 완벽하게 모사해서 구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러한 대중문화의 특징은 곧 아우라의 소멸을 가져왔다. 예술작품의 아우라는 작품의 원본이 지닌 고유성, 희소성, 일회성 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한한 복제가 가능한 새로운 예술(대중문화)에겐 원본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또한 무한한 복제는 예술을 보다 싼값에,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는 사람들이 가진 예술에 대한 동경을 잠재우는 결과를 불러왔다. 


이렇듯 벤야민은 아우라를 바탕으로 기존의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이해하고 그 차이를 구분했다. 그리고 이러한 벤야민의 이론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를 넘어 아날로그와 디지털, 오프라인과 온라인, 실제 현실과 가상 현실을 구분하고 설명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를테면 전자에는 아우라가 존재하고, 후자에는 아우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말이다. 




(2) NFT: 대체불가능한 코인


NFT는 'Non-Fungible Token'의 약자로, 우리말로는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는 뜻을 가졌다. NFT의 가장 큰 특징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여 디지털 자산의 원본, 혹은 소유주를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디지털 시대의 예술과 콘텐츠는 무한한 복제가 가능하다. 또한 이렇게 파생된 복제품들은 원본과의 구별도 불가능흐다. 덕분에 예술의 원본이라는 개념이 희미해졌고,  이는 벤야민이 말한 '아우라의 소멸'로 이어졌다.


하지만 디지털 예술작품이나 콘텐츠에 NFT를 적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NFT를 적용한 순간부터 해당 예술작품에 대한 거래 이력과 소유주에 대한 정보는 자동으로 기록되고 어느 누구도 해당 기록을 함부로 수정하거나 삭제할 수 없다. 복제된 사실도 낱낱이 기록되기 때문에 이전과 달리 디지털 콘텐츠라 하더라도 원본과 복제품의 구분이 가능하다. 이로 인해 디지털 예술작품은 과거의 회화 작품들처럼 희소성과 고유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NFT는 오늘날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창작자들은 NFT를 활용하면 자신이 만든 콘텐츠의 가치를 높이고, 이를 경매 등에 올려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원본과 복제품의 구분이 가능하기 때문에 저작권과 관련해 자신의 콘텐츠를 엄격히 관리할 수 있고, 무단 도용과 복제 등도 일정 부분 막을 수 있다.


소비자들에게도 NFT는 소비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 흥미로운 수집품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만약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자신들의 데뷔곡 데모에 NFT를 붙여 경매에 붙였다고 가정해보자. 아마도 전 세계의 수많은 ARMY들이 해당 데모를 얻기 위해 경매에 참여할 것이다. 만약 이 데모를 얻을 수만 있다면 자신의 팬심을 증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BTS 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무려 방탄소년단 데뷔곡 데모의 원본을 소유한 것이니 말이다.


실제로 NFT는 우리 주변의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NFT를 적용한 예술작품들이 각종 경매 채널에서 활발히 거래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오죽하면 ‘NFT 아트’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을 정도다. 실제로 지난 3월에는 미국의 작가 마이크 윈켈만이 만든 <매일: 첫 5000일>이라는 JPG 파일이 한화로 약 785억에 거래되는 일이 있었다. NFT 아트가 현실의 미술품 못지않은 가치와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셈이다.


마이크 윈켈만, <매일: 첫 5000일>


또 다른 사례로는 스포츠계가 있다. 미국의 NBA는 이미 작년부터 'NBA TOP SHOT'이라 불리는 공식 포토카드에 NFT를 적용해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가장 화제를 모았던 경매는 르브론 제임스의 덩크슛 장면으로, 한화 약 3000만 원에 거래되었다. 이러한 시장 가능성에 힘입어 최근엔 미국의 MLB와 우리나라의 KBO, K리그도 NFT를 활용한 포토카드를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NBA TOP SHOT


하지만 NFT의 인기가 가장 뜨거운 곳이라면 역시 게임을 빼놓을 수가 없다. 아닌 게 아니라 NFT가 최초로 사용된 곳도 바로 게임이었으니 말이다. 지난 2017년 출시한 <크립토키티>는 고양이를 입양하고 키우는 게임이다. 이때 고양이들에겐 NFT가 적용되었는데 이로 인해 각각의 고양이들에겐 고유값이 존재했고, 플레이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고양이를 키워 고양이의 가치를 높일 수 있었다. 우리 돈 1억원이 넘는 가치를 지닌 고양이가 나타기도 했다.


게임 '크립토키티'




(3) 메타버스와 NFT


최근 메타버스가 등장하면서 NFT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높아졌다. 메타버스는 '초월'을 뜻하는 Meta와 '우주'를 뜻하는 Universe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 현실을 이르는 말이다. 흥미로운 점은 메타버스가 현실의 정치, 사회, 문화적 요소들을 끌어들여 가상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실과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초윌한, 또 하나의 확장된 세계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NFT가 메타버스에서 각광을 받는 것일까. 이해를 돕기 위해 대표적인 메타버스인 로블록스를 예로 들어보겠다. 로블록스는 미국의 게임 플랫폼 중 하나다. 이용자들은 이곳에서 직접 게임을 만들거나, 다른 사람이 만든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한편 로블록스에는 ‘로벅스’라 불리는 게임 머니가 존재하는데 이용자들은 로벅스를 활용해 각종 아이템이나 이모티콘, 아바타, 게임 등을 구매할 수 있다. 이러한 로벅스를 벌기 위해서는 게임에 실제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일부 사람들은 직접 게임 등의 콘텐츠를 만들어 다른 이용자들에게 판매함으로써 로벅스를 벌기도 한다.


한편 국내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네이버에서 개발한 ‘제페토’가 바로 그것이다. 창작자들은 제페토 스튜디오를 활용해 가상 현실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꾸밀 수 있는 아이템들을 제작하여 판매할 수 있다.  


로블록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메타버스 안에 일종의 경제 생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이 경제 생태계가 가상 현실 내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현실의 실질적인 경제활동과도 이어진다는 점이다. 단,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가상 세계 속의 화폐가 현실의 돈과 맞먹을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게 보증되어야만 한다. 바로 그 역할을 NFT가 해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제페토 내에서 누군가 10대 한정으로 제작한 스포츠카를 구입했다고 가정해보자. 이게 현실이라면 당신은 차량 등록증이나 자동차 제조자가 발급해 준 공식 서류 등을 통해 스포츠카를 구매한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하지만 무한한 복제가 가능한 가상 현실이라면? 누군가 해당 스포츠카의 디자인을 베껴다가 똑같은 아이템을 만들어 싼 가격에 대량으로 풀 수 있는 일이다. 만약 그렇게 되면 당신이 구매한 스포츠카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물론, 당신이 스포츠카를 구입한 사실과 당신이 소유한 스포츠카가 진품이라는 사실조차 증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NFT는 그 모든 게 가능하다. 판매자가 자신이 만든 아이템에 NFT를 부착하는 순간, 해당 작품이 언제 거래되었고 누가 그것을 구매했는지 등이 모두 블록체인에 기록된다. 당신은 그저 그 기록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하면 된다. 이를 통해 당신은 당신의 스포츠카가 지닌 원본으로서의 가치, 즉 '아우라'를 유지할 수 있다. 


제페토X구찌 콜라보


그러니까 NFT는 현실의 아우라를 가상 세계 안으로 끌어들여 콘텐츠의 가치를 설정하고 보존한다. 이를 통해 메타버스는 실제 현실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사실상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구분이 불가능해지는 시점이 도래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현재는 가상 세계 내 NFT의 적용 범위가 의상이나 이모티콘 등에 머물러 있지만 언젠가는 땅이나 건물을 거래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다. 메타버스 내에서 학교를 다니고, 회사에 출근할 수도 있다. 나이키가 사람들이 아닌 아바타를 위한 한정판 운동화를 만들어 판매할 수도 있는 일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NFT는 많은 장점과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낙관은 금물이다. NFT에도 단점은 분명히 있다.



우선 NFT는 아직 가치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다. 더구나 전 세계적인 암호 화폐 투자 바람으로 인해 거품도 좀 끼어 있는 상태다. 그래서인지 단지 NFT를 적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예술 작품의 작품성이나 완성도와 무관하게 높은 가치가 매겨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지난 3월, 일론머스크는 자신이 대충 만들어 부른 노래에 NFT를 적용해 경매에 올렸는데 이게 과열되어 경매가가 11억 원까지 오르자 결국 판매를 취소해버렸다.


또한 NFT는 어디까지나 원본과 복제품을 구분하는 용도일 뿐이지 복제나 저작권의 침해로부터 콘텐츠를 완벽하게 보호하진 못한다. 여기서 중대한 문제가 파생하는데, 바로 NFT가 원본의 증명서로써만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보통 예술작품을 구매하면 해당 작품에 대한 원본 증명서와 함께 소유권(저작권)도 넘어온다. 하지만 NFT는 이 콘텐츠가 원본이라는 사실은 증명해도 법적인 의미에서의 소유까진 증명하지 않는다.


따라서 내가 NFT를 샀다고 하더라도 해당 콘텐츠를 독점적으로 사용하는 건 불가능하다. 만약 작가가 해당 콘텐츠의 저작권, 또는 소유권을 거래한다면 해당 NFT를 소유하고 있어도 저작권법에 의해 사용권이 제약될 수 있다. 따라서 디지털 예술 작품의 거래 활성화와 애꿎은 피해자들이 발생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제도적인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외에도 잠재적인 보안의 문제, 국내외 규제들과의 충돌 문제도 있다(특히 국내에서는 NFT를 게임 장르에 적용하는데 심각한 어려움을 갖고 있다. 현행 법규들이 사행성을 우려해 게임 내 요소들이 현실에서 자산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NFT를 적용한 게임 내 아이템이 암호화폐와 연동 되어 금전적 이익을 발생시킨다면 등급 거부를 받을 수 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NFT가 가져올 미래가 기대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발터 벤야민은 대중문화가 가져오는 변화를 반기면서도, 서서히 소멸해가는 예술의 아우라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NFT의 등장으로 인해 그때 사라진 아우라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20세기 초 기술의 발달은 예술의 무한한 복제를 실현하며 원본과 복제품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예술은 아우라를 잃었고, 일부 계급이 아닌 모든 시민의 소유물이 되었다. 그리고 이때를 기점으로 세상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디지털과 아날로그 세계로 나뉘기 시작했다. 


100년이 흐른 지금, 다시 한 번 기술의 발달로 새롭게 등장한 NFT는 사라졌던 아우라를 복원하고, 나아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뒤흔들고 있다. 현실과 가상현실의 특징을 모두 갖춘, 새롭게 확장된 세계인 ‘메타버스’의 등장과 흥행을 앞당기고 있다.


그리하여 이제 예술은 또다시 기로에 서 있다. 모든 경계가 무너지고 서로의 영역이 하나로 통합되고 확장되어 가는 분위기 속에서 예술은 다시 한 번 나아갈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20세기 초 등장한 대중문화는 이제껏 소외받았던 대중들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렇다면 NFT와 메타버스로 촉발될 21세기의 예술은 어떻게 바뀌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앞으로의 미래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5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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