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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노 Jul 19. 2018

2화_기호학이란 무엇인가 part.2

#프롤로그: 기호학 입문하기

이렇게 끝날 줄 알았지? 미안하지만 아직 좀 더 남아 있다. 아무리 아마추어라도 그렇지 막가파식으로 글을 진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앞으로의 과정을 위해 여러분께 기호학에 대해 아주 조금만, 지극히 상식적인 부분에 한해서 설명을 해보고자 한다. 어쩌면 다소 어려울 수도 있지만 자주 등장하고, 써먹을 개념들이니 알아두면 분명 무용하진 않을 것이다. 그럼 변명은 이만 각설하기로 하고, 프롤로그의 Part.2로 들어가 보도록 하겠다.


기호학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따라붙는 것이 바로 ‘구조주의’다. 구조주의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중 하나로써, 세상을 이루는 현상과 요소 사이에는 그 관계들을 지배하는 일종의 규칙, 즉 ‘구조’가 존재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구조주의자들은 구조라는 개념 속에서 사회 문화의 현상을 분석하고 비평하며, 그들의 메인 과제는 바로 구조를 밝혀내는 것이다. 소쉬르, 레비스트로스, 롤랑 바르트, 미셀 푸코, 자크 라캉 등이 대표적인 구조주의 학자들이며, 수많은 학자들만큼이나 철학, 인류학, 언어학, 정신분석학, 문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구조주의는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구조주의 학자들의 연구는 광범위한 그들의 분야만큼이나 서로 다르고 어렵지만 공통적으로 소쉬르의 영향을 받아 공통적으로 그의 용어를 차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사람이 바로 ‘소쉬르’다. 페르낭 드 소쉬르. 스위스 태생의 언어학자로 비교언어학 분야에 있어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사후 그의 강의를 참고해 편집한 <일반언어학 강의>란 저서가 있다. 그는 언어의 과학을 확립하려면, 당시 학계의 풍조였던 통시적 접근(언어의 역사적 발전을 연구) 대신 역사상 한 시점에서 언어를 연구하는 공시적 접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텍스트/실천 행위의 진정한 이해를 위해서는 언어의 구조적 특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소쉬르의 언어학을 ‘구조언어학’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바로 그의 이러한 공시적 관점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이 때 소쉬르가 말하는 언어의 구조적 특성이란 무엇일까. 그는 우선 언어를 일종의 기호로 보았다(여기서 그는 기호학의 개념을 최초로 제안한다). 그에 따르면 기호란 기표(청각영상)와 기의(개념)가 결합한 일종의 이항구조이다. 예를 들어 ‘나무’라는 단어에는 ‘나무’라는 글자와 나무의 이미지가 결합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는 ‘나무’라는 글자를 듣고(혹은 보고) 특정 사물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이 때 우리가 유념해야할 사실은 기표와 기의의 결합은 완전히 인위적이며 자의적인 관계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나무가 ‘나무’라는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 데에는 특별한 필연적인 이유가 없다. 다만 그렇게 부르기로 사회구성원 간에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를 뿐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사회구성원 간의 약속이 바로 구조주의자들이 그렇게 부르짖던 체계, 혹은 구조다.


한편 기호의 의미는 기표와 1대1로 대응하지 않는다. 가령 ‘개’라는 단어를 떠올려 보자. 이 단어에는 수많은 뜻이 있다. 따라서 어떤 문장에서는 동물 종(種)의 하나를 뜻할 수 있지만, 다른 문장에서는 누군가를 얕잡아 이르는 비속어의 일종으로도 기능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소쉬르는 의미를 선택과 조합이라는 일련의 과정의 결과물로 보았다. 쉽게 말해 한 문장 안에서 어떤 단어들을 선택하고 배치하느냐, 혹은 한 단락 안에서 어떤 문장들을 선택하고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의미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그는 ‘통합체’와 ‘계열체’라는 두 가지 개념을 제시했다. 통합체는 언어의 횡적 통합의 축을 의미한다. 계열체는 언어의 종적 계열의 축을 의미한다. 보다 쉬운 이해를 위해 아래의 그림을 살펴보자.


간단히 말해서 통합체는 일종의 스토리라인이다. 계열체는 스토리라인에 들어갈 수 있는 다양한 경우의 수다. ‘개는 참 예쁘다’라는 문장을 떠올려 보자. 이 문장은 '개'라는 주어와 ‘참’이라는 부사, ‘예쁘다’라는 형용사가 결합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개’는 동물의 한 종류를 의미한다. 이 때 이 문장을 ‘너는 개 같은 놈이다’로 바꿨다고 가정해보자. 일단 이 문장은 ‘너’라는 주어와 '개 같은 놈'이라는 수식어로 결합되어 있다. 이전에는 '개'라는 단어가 주어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수식어 자리에 와 있다. 대신 본래 문장의 주어는 '너'라는 또다른 경우의 수로 바뀌었다. '이쁘다'라는 형용사/수식어 역시 '개 같은 놈'이라는 단어로 바뀌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각 단어/문장을 어떻게 조합하고, 선택하냐에 따라 해당 문장이나 단락의 의미가 크게 바뀐다는 걸 알 수 잇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소쉬르가 언어의 의미는 선택과 조합의 과정을 통해 생산된다고 주장한 이유다.


그러니까 모든 의미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허나 그 의미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기호는 유연하며 순간적인 요인(선택과 조합의 결과)에 따라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밝다’와 ‘어둡다’라는 개념을 떠올렸을 때 흰색과 회색 중 더 어두운 색은 바로 회색이다. 하지만 회색과 검은색 중에서는 회색은 밝은 색이 된다. 이렇듯 언어/기호는 다른 언어/기호와의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언어/기호에는 오로지 차이만이 존재한다.


이러한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소쉬르의 개념이 바로 ‘랑그’와 ‘파롤’이다. 랑그(langue)란 말 그대로 언어(language)의 체계로서, 언어를 조직하는 법칙과 관습을 의미한다. 파롤은 그러한 랑그로부터 비롯된 개별적인 발화, 혹은 언어의 개별적인 사용을 뜻한다.  간단하게 말해 랑그는 사회적 제도로서의 언어로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집단 계약이자 규칙이다. 한편 파롤은 랑그가 개인에 따라 자유롭게 실현되는 현상이다(한국어와 사투리의 관계로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당연하겠지만 소쉬르는 랑그를 더 중요시 했다. 소위르는 말하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이 속한 사회 구성원간의 랑그를 배워 자신의 개별적인 상황 속에서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뿐이라고 생각했다. 말하는 사람은 그 체계에 어떠한 영향도 줄 수 없으며, 다만 자신이 속한 체계를 반복하며 재생산 시킬 뿐이다. 따라서 언어/기호 활동의 본질은 사용자의 구체적인 발화에 있지 않다. 구성요소들 사이에 차이를 만들어내는, 그 구조가 더 중요하다.

<라라랜드> '세바스찬'에 따르면 재즈란 '하나의 악보를 바탕으로 각 연주자들에 따라서 수없이 재창조 되는 장르'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구조주의와 기호학의 아버지인 소쉬르의 이론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앞서 말햇듯 많은 구조주의 학자들은 소위르의 이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그들이 소쉬르에게서 차용한 생각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이 된다. 첫째, 구조주의자들은 문학 텍스트나 실천 행위의 내재적인 관계들, 그러니까 의미를 만들어내는 문법에 관심을 가진다. 둘째, 그들에 따르면 의미란 항상 내재적 구조가 만들어낸 선택과 조합의 결과들이 상호 교류한 결과이다. 그러니까 의미를 존재 가능하게 만드는 건 바로 ‘구조’다. 따라서 구조주의의 핵심 과제는 의미의 생산을 지배하는 규칙과 관습(구조)을 밝히는 것이다.


이러한 소쉬르의 이론을 차용한 학자 중 한 명이 바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이다. 프랑스의 인류학자인 그는 소쉬르의 구조언어학을 문화 현상/신화의 분석 모델로 활용함으로써 언어와 문화/신화가 비슷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다시 말해, 랑그로부터 파롤이 비롯되듯이 모든 문화 현상/신화들은 문화코드를 바탕으로 조금씩 변형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때문에 모든 신화들은 비슷한 구조를 가지며 유사한 사회적/문화적 기능을 수행한다. 이 때 말하는 사회적/문화적 기능이란 ‘신화가 우리 자신과 우리 존재 사이에 갈등(모순)을 제거하고, 세계를 이해하도록 돕는 이야기’를 말한다.


그러니까 신화도 문법을 가진다. 신화의 문법은 크게 체계와 메시지로 구성된다. 체계는 최초 서사 상황과 최종 서사 상황, 캐릭터들 간의 관계성립과정을 의미한다. 한편 메시지는 개별 신화의 내용이다. 이는 레비스트로스가 제시한 ‘신화소(mythemes)'의 개념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신화소란 신화텍스트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로서, 언어의 기본 요소인 형태소/음소와 비슷한 개념이다.


예를 들어 오이디푸스 신화의 핵심 줄거리(신화소) 중 하나는 살부(殺父)다. 이 살부라는 신화소는 오이디푸스 신화 속의 다른 신화소들과 관계를 맺으며 특정 의미를 드러내는데 이것이 바로 메시지다. 비슷한 살부의 신화소를 가진 이야기 중에서는 제우스의 탄생 신화가 있는데 이 경우엔 살부와 함께 역모라는 신화소가 결합한다.


신화란 결국 하나의 이야기다. 때문에 기승전결과 같은 일련의 스토리적 흐름을 가진다. 우리는 이를 체계라고 부른다. 한편 각각의 스토리 단계에는 다양한 모티브, 혹은 신화소들이 들어갈 수 있는데 이것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과정 속에서 의미가 도출된다. 이때 도출된 의미를 우린 메시지라고 부른다. 이러한 이유로 체계는 불변하지만 메시지는 변화한다. 소쉬르식으로 말하자면 체계는 곧 랑그이고, 메시지는 곧 파롤이다.



이러한 일련의 분석 과정을 통해 소쉬르가 언어 구조가 가진 자의적 성격을 밝혀냈듯이 레비스트로스는 신화의 구조, 이른 바 문화코드 속에는 이항대립적 성격이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달았다. 레비스트로스에 따르면 이항대립은 세계를 해석하는 기본 틀이며, 인류사가 발전하도록 만든 원동력이다. 


가령 원주민들의 요리 습관은 ‘날 것’과 ‘익힌 것’의 대립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때 날 것은 자연의 영역이고, 익힌 것은 문화의 영역에 속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사람을 ‘나’와 ‘너’로 구분된다. 나아가 ‘나’는 가족, 같은 마을, 같은 민족, 같은 이념공동체로 확장될 수 있으며, 그 외의 모든 것들은 ‘너’로 규정되며, 이 배타적인 분위기 속에서 전쟁, 분쟁, 대립 등이 태어난다. 이렇듯 이항 대립은 '날 것과 익힌 것', 혹은 '나와 너' 같은 구체적인 것에서부티 신분이나 계급, 지식 생산, 종교, 이념 등 추상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대립을 만들어 낸다. 


한편 레비스트로스는 두 개념 사이에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중간영역’을 제시함으로써 변칙적인 신화 요소를 발견했다. 이 중간영역은 이항적 체계가 확립한 안정성을 전복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인류사의 거대한 혁명, 혹은 비약적인 발전이 발생한다고 그는 보았다(이러한 레비스트로스의 이항대립 논리는 다음 시간에 더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지금까지 우리는 구조주의, 소쉬르의 구조언어학,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인류학에 대해 알아보았다. 나름 쉽게 설명한다고 애쓰긴 했지만, 여전히 그 개념들이 오리무중인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 모자란 부분들은 다음 시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콘텐츠 분석의 과정에서 차차 이해가 되어 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다면 본론보다 더 길고 복잡한 번외편을 읽느라 수고 많으셨다. 이젠 진짜 안녕이다. 다음 시간에 만나기를 기원하며, 여러분 모두 안녕히.



※본 글은 '로라 오즈월드'의 <마케팅 기호학>을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백교수님의 가르침,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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