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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노 Aug 08. 2018

번외_'그레마스'는 누구인가

부제: 의미생성모델

생각보다 번외가 빨리 찾아왔다. 사실 이번 번외도 본편을 진행한 이후에 들고 오려했다. 하지만 다음 시간에 우리가 집중적으로 다루게 될 개념에 대해 아무래도 사전설명이 조금 진행 되어야 할 것 같아서 일정을 조정하게 되었다. 오늘 우리가 알아볼 사람은 바로 'A. J. 그레마스'이다. 파리기호학파의 창시자이자 현대기호학의 아버지. 서사기호학과 정념기호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유능한 학자. 우린 그의 다양한 이론 중에서도 ‘의미생성모델’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려 한다.


의미생성모델이란 말 그대로 의미가 어떻게 생성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도식이다. 이 모델은 콘텐츠의 메시지가 비주얼 이미지와 서사구조를 통해 전달되고 있음을 논리적으로 보여준다. 의미생성모델은 크게 표층구조, 서사구조, 심층구조의 세 단계로 나뉘는데, 이를 분석함으로써 콘텐츠의 기획자와 소비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구조와 의미를 수월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럼 각각의 단계는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표층구조에서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전달하고자하는 브랜드 가치가 구체적인 비주얼 이미지로 형상화 된다. 바꿔 말해 소비자가 광고 속의 비주얼 이미지들을 인식하는 단계다. 그렇다면 소비자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이미지들을 인식할까. 이는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 우린 각각을 도상적 추론, 조형적 추론, 상징적 추론이라고 부른다. 


우선 대부분의 비주얼 기호들은 실제의 오브제와 닮음의 관계(도상성)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기호들로 넘쳐나는 광고 속에서 특정 기호를 추려낼 수 있다. 숨은 그림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바로 이것을 우리는 '도상적 추론'이라고 부른다.


한편 이렇게 탐색된 기호들의 도상성은 기호의 색상이나 형태, 그리고 질감과 같은 조형적 요소를 통해 강화된다. 이러한 도상성과 조형성의 상호작용을 '조형적 추론'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소비자의 내면에 공감을 유도하여 지각구조를 형성한다. 이를 통해 기호는 상징화를 추구할 수 있게 되고, 소비자의 내면에서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다.


한편 '상징적 추론'에서는 소비자의 기호 경험이 반복되고 누적됨에 따라 상징화 작업이 가속된다. 이는 기호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과 감성을 생성한다. 다시 말해, 기호가 소비자에 의해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획득한 의미를 통해 우리는 소비자의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모티브를 탐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피카소의 <게르니카>라는 작품을 떠올려보자. 복잡하고 어지럽기 짝이 없는 이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림 속에 숨어있는 각각의 피사체, 일명 비주얼 기호들을 인식해야 한다. 보아하니 그림 속에는 고통스러운 얼굴의 사람들과 그들의 절단된 신체, 아이를 안고 우는 여성, 소와 말, 새, 꽃, 램프 등의 오브제들이 그려져 있다.


한편 이 그림의 색채는 흑백으로만 이루어져 있다. 주변 배경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오브제들은 검은색, 혹은 회색에 가까운 어두운 계열로 채색되어 있다. 반면에 꽃이나 램프 같은 몇몇 오브제들은 아주 밝은 흰색으로 칠해져 있다.


이러한 색상의 논리에 따라 그림을 이분법적으로 이해한다면 어두운 배경과 절단된 신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에 반해 밝은 색을 띠고 있는 꽃, 램프 등은 긍정적인 의미일 것이다. 


한편 표층구조의 비주얼 기호들만으론 우리의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가치를 어필하기란 어렵다. 우리의 뇌는 스스로 관심 있거나 혹은 유익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대부분의 정보들을 잊어버린다. 다시 말해 비주얼 기호가 소비자에게 포착된다고 해도 이것들을 기억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그것들은 소비자의 뇌리에 남지 않는다. 바로 이 특별한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이 서사구조의 역할이다.


표층구조와 심층구조를 매개해주는 서사구조는 심층구조에서 설정된 기업의 가치들이 서사성의 형태로 구성다. 쉽게 말해 '스토리텔링'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문화콘텐츠학의 범주에서 스토리텔링은 유저를 콘텐츠에 몰입시키는 일종의 몰입장치이다. 그러니까 소비자는 광고의 기호에 매료되는 것이 아니라 광고 속 스토리에 몰입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기호들을 인지하고 그 의미들을 내면화 하는것이다.


앞서 든 <게르니카>의 예시로 다시 돌아가 보도록 하자. <게르니카>는 피카소가 스페인 내전 당시 나치가 ‘게르니카’라는 지역을 폭격한 사건을 알게 된 직후 스케치하여 완성한 작품이다. 때문에 우리는 그림 속의 암울한 상황들은 곧 당시 스페인 내전의 상황에 대한 은유이며, 그 속에서 괴로워하는 사람들과 동물들의 표정을 통해 당시 피해자들이 겪은 고통들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그런 와중에도 빛을 내는 램프나 아름다운 꽃 등은 여전히 희망이 남아있음을 말해준다. 다시 말해 피카소는 이 그림을 통해 반전에 대한 염원과 스페인 내전에 대한 비판 의식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편 그레마스는 이러한 서사구조를 분석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호학적 툴 두 가지를 소개하였다. 하나는 행위자모델이고 다른 하나는 서사도식이다. 우선 '행위자 모델'은 캐릭터들 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서사구조를 설명해주는 기호학적 툴이다. 이 모델에는 6개의 항이 있다. 우선 이야기의 주인공이자 행위를 이끌어나가는 주체와 그런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대상이 있다. 한편 주체가 대상을 획득하도록 돕는 조력자가 있는가 하면, 그런 그를 방해하는 적대자 캐릭터가 있다. 마지막으로는 주체가 대상을 추구하도록 추동하는 발신자와 추구의 결과를 보여주는 수신자가 있다.


보다 쉬운 설명을 위해 영화 <트와일라잇>을 예시로 들겠다. 인간과 뱀파이어의 사랑을 주제로 다룬 이 영화의 주인공은 벨라와 에드워드 커플이다. 그런 그들의 사랑을 돕는 조력자에는 늑대인간 제이콥과 그의 부족, 에드워드의 가족들이 위치한다. 한편 그들의 사랑을 반대하는 적대자에는 빅토리아와 볼투리 가문 뱀파이어들이 있다. 한편 이 두 주인공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대상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인간과 뱀파이어 사이를 뛰어넘는 진정한 사랑일 것이다. 그리고 두 주인공이 대상을 추구하도록 추동하게 만드는 발신자에는 에드워드와 벨라가 가진 서로에 대한 갈망이 위치한다. 그리고 그 사랑의 결과(수신자)로 그들은 르네즈미라는 딸을 얻게 된다.



한편 '서사도식'은 주체의 행로를 중심으로 이야기의 구조를 나타낸다. 서사 도식은 크게 계약 및 조종, 능력, 실행, 평가의 4단계로 구성된다. 우선 계약 및 조종 단계에서 주체는 발신자로부터 과제를 부여받고 행동에 나선다. 능력 단계에서 주체는 가치 획득을 위해 필요한 능력을 수양 한다. 실행 단계에서 마침내 주체는 추구한 가치를 얻는데 성공하게 되는데, 이러한 주체의 행로는 평가 단계에서 평가를 받는다.


다시 <트와일라잇>을 예시로 설명해보겠다. 편의를 위해 벨라를 중심으로 두도록 하자. 평범한 고등학생인 벨라는 뱀파이어인 에드워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다른 종족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사랑은 위험에 빠지고, 벨라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행동에 나선다. 여기까지가 바로 계약 및 조종 단계다. 능력 단계에서 벨라는 에드워드를 자신의 부모님께 소개하거나, 에드워드의 가족을 만남으로써 자신들의 사랑을 응원해주는 조력자들을 만든다. 이어진 실행의 단계에서 벨라는 자신의 조력자들과 함께 자신들의 사랑을 반대하는 라이벌 뱀파이어 일족과 맞서 싸우고 결국 승리한다. 마지막 평가 단계에서 벨라는 싸움에서 승리한 대가로 자신이 원하던 대로 에드워드와의 사랑을 이어갈 자격을 얻는다.




마지막으로 설명할 부분은 바로 심층구조다. 이 단계에서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한 브랜드 가치/문화코드가 드러난다. 가령 앞서 언급한 피카소의 <게르니카>에는 반전, 혹은 스페인 내전에 관한 비판의식이라는 코드가 숨어 있다. <트와일라잇>의 문화코드는 진정한 사랑이다. 


바꿔 말해 피카소는 반전, 혹은 스페인 내전에 관한 비판의식을 드러내기 위해 흑백을 사용하여 고통과 희망에 관한 오브제들을 입체적인 기법으로 그려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제작진들은 진정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이라는 서사구조와 다양한 캐릭터, 한적한 소도시 등의 비주얼 기표들을 배치하였다.


이 단계에서 우리가 주목할 그레마스의 기호학적 툴은 바로 '기호사각형'이다. 앞서 우리가 표층구조에서 활용한 이항대립에서 한 단계 나아간 모델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항대립은 대립관계의 변별적 자질을 가진 두 항만을 다루지만 기호사각형은 대립뿐만 아니라 포함과 모순의 관계까지 포괄한다. 


이때 여기서 주의할 점은 기호사각형이 기호 속에 내장된, 혹은 콘텐츠 속에 내장된 문화코드를 도출해주는 도구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컨셉을 설계하거나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는 도구다.


가령 당신이 이제 갓 데뷔한 영화감독이라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사랑 이야기를 만들려고 한다. 하지만 그 전에 관객들의 취향을 알기 위해 이제껏 만들어진 영화들을 분석하려 한다. 그랬더니 영화 속 연인들의 모습을 중심으로 영화들을 분류할 수 있었다. 우선 정통멜로(진정한 사랑)와 로맨틱 코미디(가벼운 사랑)가 있다. 여기에 더해 가볍지 않은 사랑을 다루는 영화가 있을 것이고 반대로 진정하지 않은 사랑을 다룬 영화가 있을 것이다. 굳이 장르로 표현하자면 저자는 멜로에 드라마 장르를 섞은 영화일 것이고, 후자는 멜로의 탈을 쓴 부조리극이 되지 않을까 싶다.


혹은 주인공을 중심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주인공의 성별로 따지자면 각각의 항에는 남성과 여성, 비여성과 비남성이 들어간다. 만약 남성이 주인공이라면 군대나 회사에서 일어난 일을 주제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반대로 여성이 주인공이라면 <82년생 김지영> 같은 이야기나 멜로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비남성이나 비여성, 그러니까 게이와 레즈비언이 등장하는 퀴어영화를 만들 수 있다. 만약 레즈비언이 주인공이라면 여성으로서 겪는 차별과 동성애자로서 받는 혐오에 험난한 인생을 걷는 이야기를 쓸 수 있다. 게이라면 성공을 향한 자신의 욕망과 동성애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고민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다룰 수 있다.


이렇듯 기호사각형 속에서 우리는 소비자의 기호와 시장 상황에 맞추어 당신의 상품의 컨셉을 이룰 문화코드를 선택하고 설계할 수 있다. 실제로 장 마리 플로슈라는 학자는 소비자들이 자동차 구입 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기호사각형 속에 배치하여 시트로엥사의 자동차 광고 속에 함의된 문화코드를 도출하는데 사용하였다. 실용적 가치를 내세우는 광고가 있는가 하면 유토피아적 가치를 강조하는 광고 등으로 말이다.






지금까지 그레마스의 의미생성모델에 대해 알아보았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기획자/기업들은 자신들이 전달하려는 문화코드/핵심 가치를 서사구조와 비주얼 기호의 조합을 통해 전달한다. 한편 수용자들은 콘텐츠의 비주얼 기호와 서사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콘텐츠 속에 함의 된 문화코드/핵심 가치를 도출할 수 있다. 말하자면 기획자에게 의미생성모델은 곧 Encoding의 과정이고, 수용자에겐 Decoding의 과정인 것이다.


지금 당장 좋아하는 영화를 찾아보고 어떤 캐릭터가 등장하며 그는 어떤 생김새를 하고 있는지, 어떤 시공간이 배경으로 작용하는지를 확인해보시라. 그리고 그런 시각 기호들이 서사구조 안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 지를 파악하라. 마지막으로 이 영화가 궁극적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도출하라. 이 작업이 끝나면 당신은 어느 순간 의미생성모델에 관해 마스터하게 될 것이다.



※본 글은 '로라 오즈월드'의 <마케팅 기호학>을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백교수님의 가르침,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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