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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노 Aug 22. 2018

4화_'깐깐한 선택' 편 part.2

#콘텐츠 분석: 쉐보레 스파크 광고 <깐깐한 선택>편

그럼 이쯤에서 <깐깐한 선택>의 장면들을 떠올려보자. 기표를 포착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중 하나는 이항대립을 이용하는 것이다. <깐깐한 선택>에서도 역시 두 개의 기표가 대립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노인’과 ‘손녀’ 캐릭터가 그렇다. 남성과 여성, 늙음과 젊음, 기성세대와 신진세대, 무뚝뚝함과 활기참, 정장과 캐주얼 등등.


그리고 이러한 대립 관계는 ‘스파크’를 통해 연결된다. 광고 속에서 스파크자동차를 넘어, 손녀를 향한 애정과 관심의 상징이 된다. 특히 영상 속 스파크의 연두색은 시간적 배경인 봄날의 생기와 연결되어 봄볕처럼 따스한 노인의 사랑을 의미한다.


광고가 진행되면서 변화노인의 표정에도 주목해야 한다. 초반에 배우가 연기하는 노인 캐릭터는 무뚝뚝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말수 적고, 대답도 잘 하지 않다. 하지만 광고의 후반부에 차를 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는 그의 미소는 따스하고 넉넉 감정을 드러낸다. 이 미소는 궁극적으로 광고의 톤을 결정할 뿐만 아니라 무뚝뚝해 보이던 노인이 실은 따뜻한 사람임을, 손녀를 향한 애정으로 충만한 사람임을 알려준다.





서사구조의 층위에서, <깐깐한 선택>의 스토리는 ‘노인이 손녀에게 스파크를 선물 한다’로 요약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차를 구입하려는 노인의 행로가 실제 소비자의 차량 구매 행로와 닮아 있다는 것이다. 그레마스는 그것을 ‘서사도식’이라는 기호학적 툴로 설명한다. 서사 도식은 계약 및 조종, 능력, 실행, 평가의 4단계로 구성된다. 계약 및 조종 단계에서 주체는 발신자로부터 과제를 부여받고 행동에 나선다. 능력 단계에서 주체는 가치 획득을 위해 필요한 능력을 수양 한다. 실행 단계에서 마침내 주체는 추구한 가치를 얻는데 성공하게 되는데, 이러한 주체의 행로는 평가 단계에서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이를 광고 속에 적용해보자. 우선 계약 및 조종 단계에서 노인은 우연히 길을 가다가 주차된 스파크를 보고 관심을 가진다. 능력 단계에서 노인은 인터넷으로 스파크에 대해 검색해보거나, 매장을 찾아가 점원의 설명을 들으며 스파크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모아 나간다. 실행 단계에서 마침내 노인은 스파크를 구입하고, 기뻐하는 손녀의 반응을 통해 자신이 이제껏 걸어온 행로를 평가받는다.



영리하게도 <깐깐한 선택>은 이러한 스토리 구조를 활용해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가 경차에 대해 가진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우선 저렴하고 효율적이다. 주로 젊은 계층과 여성 소비자들에게 환영받으며 디자인이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진다. 반면 차량이 작고 가벼워서 사고에는 취약하다. 한편 <깐깐한 선택>은 스파크를 향해 ‘안전성만큼은 탁월한 차량’이라며 내내 강조한다. 그러니까 경차의 가장 큰 약점을 오히려 광고가 전달하려는 핵심 메시지로 삼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광고 전략은 스토리 속에서 어떻게 호흡할까. 노인은 손녀에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차인 스파크를 선물한다. 노인에게 손녀는 선물을 받는 수신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보호해야할 대상인 셈이다. 이는 한국 사회 특유의, 유교적 문화에 기반한 가족애, 전통적, 보수적 코드들과 연결된다. 즉,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을 스파크와 결합함으로써 자신들이 설정한 제품의 핵심 메시지인 안전성을 전달하는 것이다. 덕분에 이러한 서사 구조 속에서 스파크는 여타 다른 경차들과는 다르다. 그건 사고로부터 내 가족을 지켜줄 수 있는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차량'이다.



마지막으로 심층구조 속에서 <깐깐한 선택>의 광고 코드들을 살펴보겠다. 여기에는 그레마스의 기호사각형을 사용하려 한다. 기호사각형은 기호들 간의 관계를 구조적인 도식으로 나타낸 것으로서 크게 세 관계를 보여준다. 우선 A와 B는 대립 관계를 이룬다. NOT A와 B, 혹은 NOT B와 A는 포함 관계를 이루며, A와 NOT A, B와 NOT B는 모순 관계를 이룬다.


좀 더 쉽게 설명하겠다. 여름과 겨울은 대립 쌍을 이룬다. 非여름에는 봄과 겨울, 가을이 포함된다. 때문에 겨울과 非여름 사이엔 함축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여름과 非겨울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름과 非여름 사이에는 대립도, 함축도 성립되지 않는다. 이러한 관계를 우리는 모순 관계라고 부른다.





그레마스의 제자이자, 조형기호학의 대가인 ‘장 마리 플로슈’는 이러한 기호사각형을 이용해 시트로앵 사의 자동차 광고를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광고들은 크게 네 가지 유형의 가치들을 승용차에 부여한다(아래 표 참조). 그렇다면 <깐깐한 선택>은 이 중에서 어떤 유형에 해당할까. <깐깐한 선택> 속에서 집중하는 스파크의 매력은 바로 ‘안전성’이다. 그러니까 플로슈가 분류한 대로라면 실용적 가치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는 특히 외국의 스파크 광고랑 비교했을 때 흥미롭게 다가온다. 외국의 광고들은 좀비로 가득한 세상을 스파크로 질주하질 않나,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강아지가 스파크를 운전하기도 한다. 이러한 광고들이 설정하고 있는 가치는 유쾌함과 재미에 있다. 다시 말해 스파크의 주 고객층인 젊은층의 취향을 겨냥하여 자사의 상품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스파크 광고인 <깐깐한 선택>과 분명 다르다. 정신분석학자 칼 융은 ‘문화 원형’이란 개념을 제안하며 이를 “동서양 공통으로 인간의 심층 속에 날 때부터 부여된 집단무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원초적, 상징적 이미지와 요소라고 정의했다. 재미에 집중한 외국의 광고들과 달리 한국의 스파크는 손녀를 향한 노인의 사랑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 이 광고의 기획자는 한국 사회의 문화 원형을 가족애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월호 사고, 경주 지진, 제전 화재 참사 등을 겪으며 안전에 대해 민감해진 한국 사회의 현재를 감안하면 <깐깐한 선택>이 강조하는 안전성 역시 치밀한 광고 전략에 의해 도출된 코드임을 눈치 챌 수 있다. 그러니까 <깐깐한 선택>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안전에 대한 집착’을 ‘가족애’ 스토리로 녹여낸, 다분히 한국적인 광고인 셈이다.


이처럼 30초 남짓한 짧은 광고라 하더라도 제품이나 브랜드의 이미지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들이 담겨있다. <깐깐한 선택>의 기획자들은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 깊이 자리 잡은 가족애 등의 문화 코드를 노인이 손녀에게 차를 선물한다는 내용의 스토리와 다양한 비주얼 기표를 통해 구체화 시켰다. 반대로 우리는 그들이 심어놓은 기표와 스토리를 통해 <깐깐한 선택> 속의 광고 코드가 가족애임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기호학이 콘텐츠를 만들려는 기획자에게, 그리고 그 콘텐츠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알고자 하는 보다 능동적인 수용자에게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각각의 툴들과 이론들에 익숙해지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프로의 감성이 아니라 아마추어의 열정이다. 적극적으로 배우고, 또 이용하고자 하는 마음만으로도 당신의 기호학 공부는 이미 그 첫 단계를 넘어섰다.


이제 다시 유튜브로 돌아가 <깐깐한 선택>을 틀어보시라. 듣기 좋은 기타 연주와 함께 영상이 시작되고, 당신의 눈은 이전엔 보지 못했던 것들을 잡아낼 것이다. 자, 무엇이 보이는가. 어떤 것들을 읽어낼 수 있으신가. 수많은 장식들을 털어내고서 당신이 찾아낸 그것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던가.




※본 글은 '로라 오즈월드'의 <마케팅 기호학>을 기반으로 하였습니다.

※백교수님의 가르침,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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