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DB그룹에겐 어떠한 마케팅 전략이 필요할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다시 컨셉 설계 단계로 돌아가 포지셔닝 작업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장조사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경쟁사인 KB손해보험, 삼성화재, 현대해상의 브랜딩 전략을 분석하고자 한다(PS//현재 세 회사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한쪽에선 자사의 신뢰도를 제고하는 광고를 제작하고, 다른 쪽에선 할인을 강조하며 실용성을 어필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증가하는 1인 가구와 젊은 고객들의 얇은 지갑 사정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신뢰도를 위한 광고’에 집중하고자 하니 양해 부탁드린다).
먼저 살펴볼 회사는 ‘KB손해보험’이다. 전직 피겨 스케이팅 선수인 김연아씨를 메인 모델로 내세운 이 회사는 ‘희망’을 주제로 다양한 브랜드 광고를 런칭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 광고인 ‘희망으로 안다’ 편을 보면 김연아씨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포옹을 하는 장면이 쭉 이어진다. 이를 통해 기업은 고객들이 마주하게 될 새로운 출발을 KB손해보험이 든든하게 안아드리며 지원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 직전에 런칭된 ‘스트레칭’편에서는 사람들이 어깨를 쫙 편다던가, 혹은 다리를 쭉 뻗는 등 스트레칭을 하는 장면을 통해 고객이 아무 걱정 없이 희망차게 살 수 있도록 KB손해보험이 곁에서 힘껏 돕겠다는 메시지를 암시한다. 이러한 광고들의 특징을 빌어 KB손해보험을 기호사분면(or 기호사각형?) 위에 위치시키면 ‘능숙함’의 영역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광고 속에서 KB손해보험은 일종의 ‘슈퍼맨’이다. 그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소비자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여 돕겠다는 의지를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회사인 ‘삼성화재’는 ‘당신의 봄’을 주제로 다양한 시리즈의 광고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이 광고들은 말썽꾸러기 아들을 둔 엄마, 암에서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부부 등 주변에 있을 법한 친근한 사례들을 모티브로 한다.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광고모델과 보험설계사가 상담을 하는 장면을 넣어 리얼리티와 함께, 보험회사로서의 전문성을 소비자에게 어필한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배우 정해인씨를 모델로 기용하여 ‘꽃병 소화기’를 소개한다던가, 혹은 계단에서 미끄러져 다칠 뻔한 여성을 그가 도와주는 모습을 담은 광고들을 런칭하였는데 이 때 영상 속에서 등장하는 ‘꽃병 소화기’와 ‘배우 정해인’은 모두 삼성화재라는 브랜드의 상징이다. 이를 통해 결국 삼성화재 역시 KB손해보험과 마찬가지로 슈퍼맨의 신화를 자사에 투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낼 수 있다. 소비자가 믿고 자신의 삶을 맡길 수 있는 능력자의 이미지를 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삼성화재 역시 기호사각형 위에서는 ‘능숙함’의 영역에 속한다.
한편 ‘현대해상’의 경우는 좀 다르다. 현대해상 광고의 대표적인 키워드는 바로 ‘마음’이다. 피노키오를 연상시키는 깡통로봇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시리즈 광고는, 주인공 로봇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마음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의 대답을 획득해 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당연히도 이 때 주인공 로봇은 ‘현대해상’을 의미한다. 그가 마음에 대해 배워가는 과정은 고객과 소통하고 함께 성장해나가는 현대해상의 오늘이다. 이를 통해 마음은 인간이 가진 가장 따뜻한 힘이며, 그 마음을 다하기 위해 현대해상이 노력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러니까 이미 완성된 슈퍼맨이라 다름없던 KB손해보험과 삼성화재와는 달리, 현대해상은 천천히 히어로가 되어가는 성장의 모습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스파이더맨’에 가깝다. 그러니 기호사각형 위에서 그들의 위치는 ‘능숙함’보다는 ‘미숙하지 않음’이 마땅하다. 비록 완벽하진 않을지언정, 결코 서툴지 않다. 모자란 부분은 고객과 소통하며 함께 성장해나가겠다. 그것이 바로 현대해상이 가고자하는 방향인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요경쟁사들에 대한 시장분석을 수행 하였다. 덕분에 우리 앞에는 각각의 브랜드들이 포지셔닝 된 전략적 그리드가 놓여 있다. 이제는 슬슬 다음 과제로 넘어가야한다. 시장에 대한 조사가 끝났으니 사람에 대한 조사를 시작할 때이다. 우리의 고객인 DB손해보험의 주력 상품은 바로 ‘보험’이다. 그렇다면 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 보험에 가입하는 것일까.
보험이란 무엇인가. 네이버 사전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같은 종류의 사고를 당할 위험성이 있는 많은 사람이 미리 금전을 각출하여 공통준비재산을 형성하고, 사고를 당한 사람이 이것으로부터 재산적 급여를 받는 경제제도’를 뜻한다고 나와 있다. 그러니까 ‘보험’이란 다수의 사람들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여 자금을 형성하고, 그 자금으로 미래에 닥칠 위협을 대처하는 제도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한 줄의 정의에서 주목해야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 밑줄을 그어보자면 그건 아마도 ‘자금’일 것이다. 즉, 자금을 꾸준히 형성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야말로 보험 상품 가입자의 핵심 요건인 것이다. 때문에 보험의 소비자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부여가 된다. 안정적인 수입(직장)이 존재하며, 그 수입의 일부를 지속적으로 자신의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노려야 할 1차적 타겟이다.
이제 보험 가입자의 요건을 알았으니, 지금부턴 그들이 보험을 가입하는 이유를 생각해볼 때이다. 사람들은 도대체 왜 보험에 가입하는 것일까. 앞서 살펴 본 보험 상품의 정의를 고려하면, 그 이유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 2016>을 보면 사회적 파고에 대비해 자신만의 생존전략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소비자들을 지칭하는 ‘플랜 Z세대’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소비자들은 매일 같이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쓰고, 보험회사들은 바로 그 점을 노린다. 그것이 보험 업계에 ‘슈퍼맨 신화’가 브랜드 신화로서 널리 퍼져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 신화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나약하고, 미래에 대한 예측 능력이 부족하여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위험에 취약하다. 때문에 소비자들에겐 그런 자신들을 든든히 보호해주고,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슈퍼맨’ 같은 존재가 필요하다. 보험 회사들은 그런 존재가 되기를 자처한다. 따라서 그들은 전지전능하다. 앞서 우리가 만들었던 전략적 그리드를 떠올려보자. 주요 보험사들은 하나 같이 ‘능숙함’이나 ‘미숙하지 않음’의 영역에 포지셔닝 되어 있다. 그들은 절대로 서툴러서는 안 된다. 그들은 날 것과 익힌 것의 대립항 중 ‘익힌 것’에, 자연과 문화 중에선 ‘문화’에, ‘미숙함’과 ‘능숙함’에선 ‘능숙함’의 영역에 위치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보험 소비자들의 궁극적인 니즈다. 만약 기업이 1%의 미숙함이라도 보이게 된다면 그 브랜드 신화는 거짓으로 판명 나고, 소비자의 신뢰를 잃어버릴 것이다.
그럼 이쯤에서 우리의 고객인 ‘DB손해보험’에게로 돌아가자. DB손해보험에게 필요한 새로운 컨셉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는 앞선 DB의 새로운 광고들을 통해서 DB가 ‘동부그룹’에서 새롭게 이름을 변경한 만큼 역동하는 젊은 기업의 이미지를 내세우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젊다는 것은 곧 ‘미숙함’을 연상시킬 수 있는 위험 요소를 내포한다. 할인을 강조하는 DB손해보험의 광고는 이러한 위험 요소에 기름을 들이붓는 격이다. ‘저가’는 실용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비자에게 수상쩍은 의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할인 전략을 내세우고 싶다면 그 이전에 해당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부터 재고해야한다. 이것이 타경쟁사들이 자사의 브랜드 광고에 ‘능숙함’과 ‘할인’을 동시에 어필하는 이유이다. 따라서 DB손해보험도 우선 신뢰도를 보장하는 광고를 선보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능숙함’의 영역에서 우리의 브랜드를 어필해야 할까? 하지만 그러기엔 경쟁 브랜드들이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미 DB손해보험으로 이름을 바꾼 마당에 ‘동부화재’ 시절의 옛 명성에 기대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DB손해보험은 ‘능숙함’이 아닌 ‘미숙하지 않음’의 영역에 자신들을 포지셔닝해야 한다. 이는 현재 ‘현대해상’이 실제로 취하고 있는 브랜딩 전략이기도 하다. 그들은 깡통로봇이 인간의 마음에 대해 배워가며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을 자사에 투영한다. 그들은 완벽한 슈퍼맨이기보다는 ‘착실한 스파이더맨’이기를 택한 것이다. DB손해보험 역시 마찬가지이다. 동부화재 시절엔 보험 업계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베테랑 중 베테랑 슈퍼맨이었겠지만, DB손해보험으로 이름을 바꾼 오늘날에는 신생기업마냥 그 이름이 익숙지 않다. 그러니 ‘능숙함’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보다는 젊은 기업답게 고객을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열정적으로 어필하며, 그 모습이 결코 ‘미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게 효과적일 것이다. 그리고 그곳이야말로 DB손해보험이 자신의 브랜드를 환기할 수 있는 기호학적 공간이다.
이상으로 DB손해보험에 관한 컨설팅 작업을 마치도록 하겠다. 정말 길고도 힘든 작업이었다. 내게도 이제껏 쓴 글들 중 가장 많은 준비를 필요로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사실 이번 시간은 이전 시간들에 대한 복습의 완결판이라 해도 사실상 무방하다. 기호학에 대해 간략하게 개괄했던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우리는 그레마스의 서사 기호학, 기호사각형, 의미작용 등의 주요 개념을 배우며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것들이 ‘브랜드 신화’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 지를 배웠다. 마케팅이란 결국 브랜드 신화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기호학은 브랜드 신화가 성공할 수 있는 요령을 제공한다. 보편적인 사람들의 문화/행동 양식을 분석하여, 그들에게 최적화 된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코드를 발견해내는 것이야말로 기호학의 궁극적인 과제이기 때문이다.
다음 시간부터는 기호학의 새로운 경향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제껏 우리가 공부한 기호학을 굳이 분류하자면 ‘서사기호학’쯤 될 것이다. 허나 서사기호학은 기호학의 시작과 함께 태동하여 사실상 90년대에 이르러 ‘그레마스’에 의해 완성된 분야나 다름없다. 이러한 이유로 다음 시간부터는 서사기호학에서 벗어나 ‘브랜드 기호학’으로서의 가능성과 인지기호학, 공간기호학 등 현대 기호학의 최신 경향들을 소개하려 한다. 다루고자 하는 콘텐츠의 범위들도 이젠 광고를 벗어나 뮤직비디오, 디자인, 테마파크 등 다양한 범주로 확대하려고 하니 분명 이제껏 보다는 보다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들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오늘도 여러분들의 무사한 기대와 관심을 부탁드리며 나는 이쯤에서 안녕의 인사를 드리겠다. 이번 시간도 긴 글을 읽어주시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다음에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며, 우리 모두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