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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Mar 13. 2021

학교 앞 병아리

 어렸던 시절엔 봄이 되면 학교 교문 앞에서 병아리를 팔았다.   삐약삐약 꼬물대는 그것들은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았고, 종종 손에 들려 가기도 했다.   동생은 매해 그 꼬물꼬물 삐약거리는 병아리를 사 왔다.    

사온 병아리들은 거의가 부실해서 하루도 못 넘기고 꾸벅꾸벅 졸더니 죽기도 했고, 기르던 강아지가 살짝 입에 넣었다 뺐는데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기도 했다.   그렇게 사 오는 족족 며칠을 못 넘기고 병아리들은 죽어나갔는데, 그래도 매해 봄이면 동생은 또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사들고 와서 엄마에게 혼나곤 했다.   


 어느 해 동생이 사 온 병아리 중 한 마리가 며칠을 넘기고 몇 주를 넘기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병아리는  보송보송한 털 대신 깃털이 나기 시작했고,  닭도 조류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샷시 없는 4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푸드드득 땅에 안착하는 묘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사들인 것은 동생이고, 죽지 않고 닭이 된 녀석의 뿌듯함은 우리들의 어깨 으쓱한 자랑거리이기도 했지만, 막상 모이를 챙기고 똥을 치우며 냄새를 감수하는 건 엄마였다.    게다가 이 녀석은 닭 본연의 직분에 충실하려는 듯 새벽이면 아파트 단지에서 우렁차게 꼬끼오,꼬끼오 알람을 울려댔다.

 이웃에서 시끄럽다는 원성이 들려오자 기회는 이때다 싶은 엄마가 시골에 닭을 보내자고 하셨다.   동네에서 다들 시끄럽다고 난리다!라는 말씀에 우리는 서운함 가득했지만 닭과 이별했다.     시골에서 자유롭게 잘 살라고 보내주었다.   


 얼마 후 어느 날 동생과 식탁에 앉았는데, 메뉴는 우리들이 좋아하는 카레였다.   너무 맛있다!  열심히 숟가락질을 하다 반쯤 먹었을 때, 카레 속의 고기가 닭고기임을 발견하고 멈칫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는데 동생도 동시에 숟가락을 멈추었고, 고개를 들고 둘이 눈이 마주친 순간 무언가가 번쩍! 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엄마아!!!  이거 우리 닭이야???  "

이미 울음이 반쯤 들어간 우리가 소리지르자, 엄마는 당황해서 표정관리가 안 되는 얼굴이셨다.   얘들이.. 뭐 먹는 걸 갖고 그래애...

 우리는 숟가락을 집어던지고 울고 불고 한동안 난리가 났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이후에 치킨을 먹지 않았다거나, 닭고기 카레는 먹지 않았다거나 하는 트라우마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치맥도 좋아하고 닭고기도  잘 먹지만 가끔 치킨카레를 보면 그날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나기도 한다.   멈칫, 하며 동생과 눈이 딱 마주치던 순간도 생생하다.


 스쿨버스를 타고 초등학교를 다녔던 딸아이는 하교하면 집 근처의 다른학교 교문 앞에 가서 노는 게 일상이었다.    어느 날 봄에, 딸아이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교문 앞에서  할아버지가 병아리를 파신다며 사달라고 졸랐다.    아무리 그거 바로 죽는다고 해도 소용없었다.    동생이 어렸을때 그랬듯. 기어이 두 마리를 소중하게 사들고 들어오는 딸아이를 보자 예전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났다.

 물론 그 병아리는 며칠 못 넘기고 죽었으며,  비가 부슬부슬 오던 날 부녀가 마당에 나가 화단에 묻어 주었다.   고양이가 파헤칠지도 모른다며 커다란 돌까지 야무지게 얹어놓은 그 날 이후로 더 이상 병아리는 사 오지 않았지만, 엄마와 나는 가끔 어린 시절 닭이 되었던 그 병아리 이야기를 하며 웃곤 했다.

 갑자기 생각난 어느날  엄마에게 물었다, 대체 그 닭은 어떻게 잡은 거냐고.      엄마는 쿨하게 대답하셨다.   " 시장 닭집 가서 잡아왔지."


 요즘은 더 이상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팔지 않는다.   그래도 학교 앞에서 병아리를  팔던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어서인지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진 오후에 초등학교 앞을 지날 때면, 어쩐지 어디서 꼬물거리는 노란 병아리들이 오글오글 모여 삐약거리는 광경이 벌어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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