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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Mar 02. 2022

이름을 쓴다는 것

본명과 필명에 대해 생각했다. 특히 필명을 쓰는 일에 대해서 말이다. 

글을 쓸 때 한 번도 본명 대신 필명을 쓰겠다는 생각을 해본 일은 없었다. 나의 글을 쓰는데 당연히 나의 이름을 내걸어야 맞지, 했다. 

어쩌면 필명에 대한 편견이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본명을 내보이지 않는 사람은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필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편견 말이다. 물론 필명을 쓰는 일은 흔하다. 우리가 본명으로 알고 있는 유명 작가들 역시 알고 보면 필명인 경우가 꽤 많다.      


대형서점의 기성 출판물도 좋았고, 그에 못지않게 독립서점의 책들도 재기발랄한 매력이 있었다. 기성 출판물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었던 것처럼, 독립 서적이라고 해서 재기발랄함이 전부는 아니었다. 제목부터 독특한 것들이 많았지만, 때로는 묵직한 깊이로 다가오는 책들도 제법 있었다.

늘 이곳저곳의 서점과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확실히 최근의 책일수록 필명이 많아지고 있었다. 필명 역시 그들의 책들처럼 다양하고 기발했기에 더 눈에 띄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개중에는 살짝 경박한 느낌을 주는 필명도 있었다. 한 작가가 여러 개의 필명을 쓰는 일도 더러 있다고 해서 의아하기도 했다.    

 

본명을 내세운다는 것이 반드시 전부를 내보인다는 것은 아니다. 필명을 쓴다는 것이 가면을 쓰고 표정을 숨기는 것만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굳이 필명을 써야 할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그렇게 한동안은 이해할 수 없던 것이 필명이었으나 오히려 이제 나는 그 필명이란 것에 흥미가 생겨 유심히 보기도 한다.      


개명신청을 한 경우가 아니라면 본명을 자기가 짓는 경우는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대부분 부모님이거나 작명가에게 받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필명이라면 다르다. 그들은 직접 자기의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원하는 바, 추구하는 것, 꿈꾸는 모습이 그 필명 속에 오롯이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필명은 나 스스로 내보인 나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또 다른 책임감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어쩌면 본명보다 더 자기를 잘 드러내는 호칭일지도 모른다.     


본명과 필명 사이의 편견을 깨준 것은 역시 '글'이었다. 본명을 쓰거나 필명을 쓰는 것에 따라 감동의 무게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때론 실망스럽고, 때로는 너무 감동적인, 어느 순간엔 모두 잊고 포복절도하게 하는 그들의 글은 본명인지 필명인지에 따라 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필명에 대한 편견은 사라져 갔다.     


나는 여전히 필명을 쓰지 않는다. 나의 이름은 전명원이다. 할아버지가 지어 보내신 이름이다. 필명처럼 나를 좀 더 표현하는 이름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필명을 쓸 생각은 없다. 

그러나 내가 필명 대신 본명을 쓴다고 해서 이제 필명에 대한 편견을 갖지도 않는다. 오히려 때로는 내가 '전명원'이기에 객관화되기 어려운 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또 다른 '필명'이 있었더라면 좀 더 과감하게, 오히려 더 솔직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기도 한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며 말이 곧 나인 것처럼, 나의 글은 모두 다르면서도 같은 나의 이름이다. 결국 본명이든 필명이든, 그 어떤 것이든 글로 내보이는 나의 이름은 내가 맞다. 역시 글이 알려주는 깨달음이다. 

나는 오늘도 글을 읽는다. 작가의 이름이 본명인지 필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글은 모두 나에게 그들 자신으로 건네는 말들이다. 

마찬가지로 '필명을 갖고 있지 않은 전명원' 역시도 또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는 솔직하고도 따뜻한 말들을 글로 쓰려고 노력한다.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그들처럼 말이다. 

이렇게 이름은, 저마다의 무게와 색을 갖는다.      



*2w매거진 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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