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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un 03. 2021

그 시절의 요즘 아이들

1

"쉽지 않아서요."

걔가 어디가 그렇게 좋냐는 내 물음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녀석이 말했다. 그러자 듣던 아이들이 우우우우, 야유를 보냈다. "걔는 쉽지 않을지 모르는데 네가 너무 쉬운 거야, 그러니까 네가 걔 호구라구!"    

녀석은 같은 여학생에게 몇 번을 차이고, 그때마다 세상 잃은 얼굴로 며칠을 살았다. 차고 간 여학생은 짧은 연애가 끝나면 다시 돌아오는데 그럼 다시 녀석의 얼굴은 빛이 났다. 다들, 이번에도 받아주면 호구인증이라며 뜯어말렸으나 결국 한 여학생과 이어진 그 녀석의 연애는 여섯 번을 차이고 , 다시 한 번 더 차이고서야 끝났다.    

요란스럽고 질긴 연애를 그렇게 끝내고 그 녀석은 대학에 갔고, 군대간다며 찾아와서는 그간 새로 사귄 여자친구 자랑을 잔뜩 늘어놓고 갔다. 여자친구 어디가 좋으냐 했더니 쑥스럽게 웃었다. “엄청 착해요! ”         

2.

아이들은 ‘짱들의 수업’에 들어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쩌다보니 근처 두 중학교의 짱인 녀석들이 한 반에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그들끼리는 절친이었다. 그러나 그 반에 들어오는 다른 아이들은 다들 티내지는 않았으나 겁을 냈다.

학원과 집이 가까운 나는 걸어서 집에 가던 밤이었다. 어둠속에서 봐도 불량 청소년들이 껄렁대며 지나가는 나를 흘낏흘낏 보는데, 학원의 짱들은 귀엽기만 했지만 밖에서 보는 불량 청소년들은 살짝 겁이 났다. 다음날 지나가는 말로 수업시간에 그 이야기를 했더니 녀석들이 말했다.

"하긴, 쌤은 키가 작아서 밤에 보면 어른이 아닌 줄 알수도 있어요. 혹시나 누가 시비털면 걱정마시고  저희들 이름대세요!  인맥 넓어요, 저희! "  

살다 살다 중학교 짱들이 든든해 보긴 처음이었다.         

짱들도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었고, 그 이후에는 소식을 듣지 못하다가 몇 년 후 들었다. 학원생 몇이 모여 집으로 치킨 배달을 시켰는데 그때의 짱이 배달을 왔더란다. 워낙 유명했던 짱이니 아이들도 얼굴을 다 알았고, 서로 어색해하며 치킨을 받고 돈을 건네주었다고 했다. 

한 아이가 " 그러니까 우리 공부 열심히 하자! 뭐냐, 치킨 배달이! " 했다. 그러자 또 한 아이가 말했다. "치킨 배달이 나쁘냐?  자기가 일해서 버는 건데 그건 아니지. 근데 나는 일단 대학가서 알바로 하고 싶긴 하다."  

가만히 아이들 하는 말을 듣고 있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자라고 있었다.       

3.

한 학생의 엄마는 늘 우는 소리를 달고 살았다. 원하는 최상위권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엄마는 항상 아들이 문제라고 했다. 아이는 엄마에게 혼나고 잔소리들은 기억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작은 일에도 칭찬을 해주면 너무 좋아했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고, 남자아이치고는 꾸미는 일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늘 소심해서 신경이 쓰였다.

그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저지 트레이닝복이 유행이었다. 트레이닝복의 옆줄 색은 은연중 아이들의 급을 구분 짓는 거라고 했다. 흰색, 연두색, 분홍색 이런 식이었는데 보통의 평범한 아이들, 조금 잘 나가는 아이들, 짱급으로 잘 나가는 아이들의 레벨대로 색을 입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아이들 통해 들었다.

예쁜 색을 좋아하는 그 아이는 핑크색 줄이 들어간 저지 트레이닝복을 사 입고 갔는데, 학교의 여학생 짱이라는 아이가 급도 안 되는 주제에 핑크색을 입었느냐며 당장 벗으라고 해선 옷을 가위로 잘라버렸다는 소릴 친구들에게 전해 들었다.

아이고, 요즘 아이들 진짜…….했던 것이 벌써 십년도 훨씬 더 지난 옛일이다.         

4  

나에게 아이들은 늘 요즘 아이들이었다. 처음 대학을 졸업하고 근무한 학원에서 중학생들이 어찌나 말을 안 들었던지 “요즘 녀석들은 진짜!”하며,내 분에 못 이기고 의자를 걷어찬 적도 있었다. 요령이 없고, 경험이 없고, 어렸던 쌤 시절이다.

이제 내가 운영하던 학원은 딸아이가 맡아서 운영한다. 분명 내가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가꾼 곳이지만, 올초 은퇴를 하고 나서 어쩌다 지나는 길에 들러보면 이상하리만치 낯설다. 한때 나의 공간이었던 곳에서 손님이 된 듯한 기분이다.

사는 곳도, 학원도 같은 동네이므로 지금도 간혹 동네에서 마주치거나, 혹은 안부를 물어오는 아이들이 있다. 사람 눈이 어두워 열번보면 열번 다 다른 사람인 나는, 마스크까지 쓰고 다니는 요즘 더더욱 사람 얼굴을 구별하기 쉽지 않다. 게다가 어른들이 늙는 속도와는 비교도 안 되게 아이들이 자라는 속도는 빠르다. 중고등학생 시절을 지나 쑥쑥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의 얼굴은 적응이 쉽지 않다. 하지만 늘 아이들은 나를 먼저 알아보고 반색해준다. 

“어떻게 쌤을 몰라볼 수가 있겠어요.” 라며 기특하게 군다. “쌤! 어쩜 그대로에요!” 라며, 이제 나이든 사람 듣기 좋은 소리도 할 줄 아는 요즘 아이들이 되었다.         





*2w매거진 12호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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