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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Sep 03. 2020

꺼내어 놓은 것들

       

   포장이사가 보편화되기 이전의 이사라는 것은, 짐을 내려놓고, 트럭에 옮겨 싣고,  밧줄로 고정을  잘 시켜서 옮기는 일련의 과정이었다.   요즘 포장이사는 사다리차로 이삿짐을 내려서는, 탑차라고 하는  트럭 안에 바로 차곡차곡 넣어 옮기므로  이사하는 동안 내 살림들이 거리를 누비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예전에는 (라떼는 말이야, 에서 자유롭지 않은 나이다.)  자잘한 세간은 박스를 구해다 포장하고, 가구류는 서랍이 열리지 않게 테이프를 붙여 트럭에 올려 실었다.   

   트럭에 실리는 차례를 기다리며, 세간들이 길바닥에 놓여 있었다.   집안에선 깔끔했고, 빛났고 단정했던 것들이 길바닥에 옹기종기 놓여있으면 이상하게 새것도 남루해보이고 낡아보였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첫 이사를 하던 날, 민트색 하이그로시 옷장이 길바닥에 서서 트럭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도 조금씩 왔었다.

   그날 이해했다, 엄마의 말을.    


   어렸을 때 엄마는 오래전부터 써온 재봉틀을 전동식 자동재봉틀로 바꾸었다.   그 오래된 재봉틀은 다리가 달리고 상판은 호마이카 무늬가 있었는데 재봉틀 본체를 뒤집어 넣으면 책상처럼 쓸 수도 있어 나는 그 재봉틀을 좋아했다.   

   정든 물건이지만 새것으로 바꾸고 엄마는 오래된 재봉틀을 시장 입구 가게에 팔았다.   나는 학교 오가는 길에 그 재봉틀이 누군가에게 중고로 팔리길 기다리며 가게 입구에 나와 서있는 것을 한동안 보았다.   다른 이들이 지나쳤을 낡고 오래된 재봉틀이 가게 입구 밖에 서있는데, 우리 가족은 모두 알아보고 지날 때마다 눈길을 주었다.

   엄마는 그 재봉틀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꼭 자식 내다버린 것처럼 기분이 안 좋았다고 하셨다.   재봉틀을 잘 사용했던 엄마는 당신이 아끼던 물건이라 남달랐을 테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그저 내 눈에 익은 물건이니 눈이 들어왔고, 한참 지나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저 잊었다.   


   엄마는 종종 그 재봉틀 이야기를 했는데, 뜬금없이 내가 첫 이사를 하던 날 그 재봉틀을 떠올렸다.   버리고 갈 것도 아니고, 팔고 갈 것도 아닌데,  트럭이 오면 싣고 데려갈 것인데 그래도 이상하게 내가 아끼고 쓰던 살림살이들이 길바닥에 나와 있는 모습을 보니 신혼을 갓 지난 새 물건들이 남루해보이고 안쓰러웠다.  내 속살을 내어놓은 것처럼 내 얼굴이 뜨겁기도 했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 아파트단지엔 종이며 플라스틱 같은 재활용 쓰레기들이 주차선 대여섯 칸을 차지하고 모여 있다.    경비아저씨들이 깔끔하게 구획정리해서 분류를 도와주시는데 비가 오는 날 베란다밖을 내다보면 심란하다.   집집마다 모아 놓은 재활용 쓰레기들, 특히 종이류들이 비에 젖어 모여 있는 광경은 서글프다.   

   아끼고 다듬던 살림살이도 아니다.    쓰임을 다했고, 소임이 끝난 쓰레기가 되었을 뿐이나 한때는 중요하고, 한때는 손에서 놓지 않았을 것들이 버려지면서까지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은 미안하다.     그래서 재활용쓰레기를 수거하는 매주 화요일엔 비가 오지 않았으면, 눈도 오지 않았으면 한다.    


   어쩌면 이삿짐이거나 재활용 쓰레기뿐이 아닐는지 모른다.   사람 맘도 다르지 않아서,  늘 품고 있다가도 어느 날인가는 꺼내어 길바닥에 내어놓을 수도 있다.    쓰레기처럼 모아놓을 수도 있고,  버려진 물건처럼 구석에 부끄럽게 세워 놓을 수도 있다.   아니면, 예쁜 상자에 담아 소중히 건네어 주며 보여줄 수도 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속에 담아 두었던 마음을 꺼내었을 때 안꺼내놓으니만 못한 후회가, 내보인 사람이나 내보인 것을 나눈 사람이나 모두에게 밀려드는 경우도 많다.      가지고 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겠으나, 마음을 꺼내어 놓을 때에는 어떻게 내어 놓을지, 그 모양과 포장역시 잘 고심하는 것도 지혜와 예의일 것이다.

   그러니 늘 마음을 꺼내놓을때는 한 번 더 들여다볼 일이다.   

   한 번 더, 내어놓은 내 마음이 길가에 서있는 모습을 상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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