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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Sep 17. 2022

나의 인사

                           

책 속에서 작가는 친구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외국 여행을 가면 동네 묘지를 찾아가 묘비명을 읽고 온다는 친구 이야기였다. 그의 생각을 하며 작가 역시 마을 공동묘지에서 묘비명을 꼼꼼히 들여다보았다고 했다. 읽었던 많은 책 사이에서 제목도 작가도 잊었지만, 가끔 알지 못하는 누군가 마을 한구석 작은 공동묘지에서 오래된 묘비석을 읽는, 그 멈춰 선 풍경을 상상해보곤 했다.     


얼마 전 들었던 강좌에서 강사는 "자신의 묘비명을 무엇으로 하고 싶은가요?"라고 물었다. 잠시 막막했다. 묘비명을 생각해본 일은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묘비란 것은 대부분 그의 생몰 연도와 이름 외에 관직이 적힌 것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런 우리와 달리 외국의 공동묘지에선 묘비석에 생몰년도 외에도 문구를 적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고인이 원하는 문구거나 그를 추모하는 글귀들이라고 한다. 개중엔 유명인의 잘 알려진 묘비석 문구도 많다.      


미국 여행 중 캘리포니아의 역사와 함께하는 오래된 스물한곳의 성당인 Mission 중 하나에 간 일이 있었다. 그 스물한 개의 미션중 내가 갔던 곳은 열여덟 번째 미션인 Mission San Luis Rey였다. 

구름 한 점 없는 캘리포니아의 하늘, 그림자의 경계가 자로 대고 그린 듯 선명한 햇살. 그곳에 흰 회벽을 두른 성당이 서 있었다. 성당 건물 바로 옆에 붙은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우연히 그 작은 묘지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제각각 모양의 묘비석들이 있었다. 크고, 작고, 낡고, 새것인 묘비석의 생몰 연도는 다양했다. 대여섯 살 어린아이의 묘비석엔 ‘나의 딸’이라고 쓰여 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에게 소중하고도 소중했을 그 딸이 떠난 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그 딸을 가슴에 묻었을 부모 역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을 세월이 지나 있었다.

어떤 이는 군인이었는지 묘비석에 성조기를 여러 개 세워놓았다. 더러 성직자의 묘비도 있었다. 아직도 누군가 자주 찾는 것이 분명한 묘비석도, 모두 떠나버린 세월이 분명한 낡은 묘비석도 모두 쓸쓸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나오려는데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주차장에 도착한 차에서 내린 사람은 스코틀랜드 전통 복장인 킬트를 입고, 손에 백파이프를 들고 있었다. 묘지로 들어가기 전 주차장에서 백파이프를 구성지게 연주했다. 그에겐 아마 연습이었겠지만 그 백파이프 소리가 길게 퍼져나가며 뭉클했다.

”오늘 장례식 하는 고인이 아마 스코틀랜드 혈통인가 보네.“

주차장을 빠져나오며 형부가 말했고, 킬트를 입은 그의 백파이프 소리가 가늘게 멀어졌다.     

 

누구나 한번은 죽을 테지만 죽음을 현실로 생각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같지 않으니 말이다. 나 역시 늘 살아있으므로 사는 일만 생각했다. 진짜 내 묘비를 세운다면…. 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나는 장례식을 하지도, 묘비를 세우지도, 무덤도 만들지 않을 생각이다. 하지만 묘비석이 있어 문구를 새긴다면 그것은 오랜 인사로 남을 것이다. 그러니 묘비에 새기지는 않을 인사를 생각했다.     


내 오래된 좌우명은 '두려움에 맞서라!'이다. 이런 좌우명을 갖고 산다고 해서 사는 일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두려움이 많기에 굳이 좌우명으로 삼아 자신에게 단도리를 하는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두려운 것은 많다. 어떨 땐 작고 하찮은 것이 두렵다. 또 어떨 땐 너무 크고 거대한 것 앞에서 또 두렵다. 그 어떤 경우이든, 일단 한 발을 내디디고 나면 어찌 가게 되는데 그 첫 한 발을 위한 용기를 내는 일이 참 어렵다.     


내가 생각한 묘비명은, 결국 좌우명과 맞닿아있다. 묘비명은 남은 이들에 대한 인사이기도 하지만, 나에게 보내는 인사일 수도 있다. 사는 동안 '두려움에 맞서라'라며 자신을 단도리 했던 두려움 많은 나에게,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겪어보지 못한 크기의 두려움 앞에 결국은 서게 될 나에게 해주는 말이다. 그러므로 내 묘비명을 쓴다면 이렇게 새기고 싶다. 

"또 다른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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