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명원 Aug 30. 2022

아직 가을은 오지 않았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고속도로를 달렸다. 주말 이른 아침의 도로는 한산하고, 푸른 하늘은 멀리 높고도 넓다.

“ 근래에 본 하늘 중 가장 예쁘다. 완전 가을하늘이네. 언제 이렇게 가을이 되었지?”

차창 가득히 담긴 하늘빛에 감탄하며 말했다. 그리고 이내 덧붙였다.

“벌써 가을이 다 되고, 올 한 해도 이제 넉 달밖에 남지 않았어.”

더는 풀이 자라지 않는다는 처서가 지났고, 어느새 바람은 아침저녁으로 서늘하고 선선하다. 이제 막 가을로 들어서는 하늘이 예쁘다고 하는 8월의 끄트머리에, 이미 한해를 다 살아낸 사람처럼 말한다. 지금의 선선해진 가을 (심지어 아직 제대로 오지도 않은)을 제대로 즐기기도 전에 한해가 넉 달 남은 아쉬움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언제인가부터 늘 이런 식이다. 

지금을 지금 즐기지 못하는 건 왜일까.     


나이가 들면 나이만큼의 속도로 시간이 빨리 간다고들 한다. 열 살 때 시속 10㎞의 속력이었다면, 쉰 살엔 시속 50㎞의 속력으로 시간이 달려가는 것이다. 점점 시속이 빨라지는 것이니 하루도 금방 가고, 일주일도 순식간에 지나간다. 한 달도, 일 년도 그렇게 창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기분이 든다.

어떤 철학자는 그 이유를 비례이론으로 설명했다고 한다. 열 살 어린이에게 일 년은 십 분의 일, 오십 살 어른에게 일 년은 오십 분의 일이니 같은 일년이어도 더 짧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학자는 나이가 들면 생체시계가 달라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이렇게 더 빨리 흐르는 시간을 잡는 방법에 대한 말들도 많다. 대부분은 적극적으로 새로운 것을 익히고 다양한 경험을 하라고 조언한다. 많은 말들 속에서 정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모두다 정답일 수도, 모두 다 정답이 아닐 수도 있는 일이다


나 역시도 점점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만 같은 마법을 경험 중이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도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꼈던 적은 분명 많다. 특히 시험을 앞두었을 때, 혹은 정말 싫어하던 체육 시간이 다가올 때는 특히나 시간이 빨리 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날에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진 않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비로소 특별한 일이 없어도 생각한다. ‘시간이 정말 빨라. 뭘 했다고 오늘이 벌써 금요일이네.’ 하고 말이다. 

어린아이들이 인생의 끝을 생각하며 살지는 않는다. 물론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누구에게든 공평하게 다가올 그 인생의 끝을 늘 생각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제 한 살 더 먹는 것이 ‘성장’을 의미하는 나이가 아니므로 어린 시절과 달리 나이가 들면 먹은 나이보다는 남은 나이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마음이 저절로 조급해진다. 지난날을 그리워하며 동시에 남은 날을 자꾸 가늠해보려는 것이다.      


미래는 지금이 모여 만들어진다. 삶이란 것은 점이 아니라 선이다. 반드시 선분이 아니더라도, 점선으로 이어질지언정 그렇게 이어지는 선이므로 어느 날 문득 점을 찍는 일이 아닌것이다. 그러니 오늘 하루는 온전히 지금의 행복감에 젖어보기로 한다. 내일 지구멸망이 와도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경지에 오를 자신은 없으나, 넉 달 남은 올 한 해보다 오늘의 이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겨보기로 말이다.

올가을은, 하늘이 유난히 푸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야 필사여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