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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Oct 05. 2022

바람과 햇살속을 걷는 일

                           

중고등학교 입시에 체력장이 있던 시절이었다. 백 미터 달리기, 매달리기, 오래달리기 등등의 종목이 있었는데 입시 학년이 되면 체육 시간마다 이런 종목들을 연습했다. 그리고 입시가 다가오는 가을 무렵이면 체육 시간이 아닌 때에도 모두 운동장에 집합해 체력장 연습을 해야 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운동과는 담쌓은 사람이다. 체력의 문제 이전에 체격의 문제인 것이, 일단 뛰거나 매달리기에 내 몸은 너무 둔하고 무거웠다.      


고입체력장은 전교에서 딱 세 명 만점을 받지 못했다. 그중 하나가 나였다. 담임선생님은 체육 과목 담당이었는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야, 인마! 담임이 체육인데 만점 못 받은 세 놈 중 하나가 우리 반에서 나와야겠냐?”

내가 담임선생님이었어도 열받았겠구나 싶은 맘에 뭐라 말대꾸를 할 수가 없었다.

“연합고사 지필시험에서 세 문제 더 맞을게요.”

기껏 한다는 말이 이랬는데, 실제로 세 문제를 더 맞힌 기억도 없다.   

  

대입 체력장은 설렁설렁 연습시키던 고입체력장과 달리 좀 더 닦달하는 분위기였다. 체격의 성장과 별개로 나의 운동신경은 그대로였으므로 백 미터 달리기는 24초에 들어오면 잘 들어온 수준이었다. 오래달리기 역시 지나치게 느리다 보니 친구들이 바퀴 수를 채워 돌고 난 후에도 비슷한 몇몇 동지와 함께 운동장을 계속 돌아야 했다. 눈앞이 핑 돌아 기절이라도 했으면 싶었으나 아무리 진이 빠져도 그런 행운까지 따라오진 않았다.     체력장시험을 보기 한 달 전쯤 가뜩이나 운동신경 없는 몸은 그만 달리기를 하다 제대로 넘어졌다. 종아리가 온통 다 까졌는데 양호실에서 바른 빨간약이 문제였다. 어려서부터 잘 넘어지고, 잘 다쳤다. 그리고 상처가 잘 낫지 않았다. 종아리에 빨간약을 넓게 발랐는데 며칠 후 상처가 심해져 병원에 가니 약품 화상이라고 했다. 그간 상처가 잘 낫지 않았던 건 빨간약 알레르기가 있는 걸 모르고 발라서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3도에 가까운 화상인 거라며 병원에서 드레싱을 하고 붕대를 감아주었다. 걷는 데는 지장 없었고, 체력장시험을 볼 즈음엔 그마저 거의 나았지만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말했다.

“체력장 보러 갈 때 그 붕대 풀지 말고 그대로 감고 가라.”

종아리를 친친 감은 붕대 덕인지, 대충 다 붙는 고입과 달리 대입이었으므로 초인적인 의지로 젖 먹던 힘을 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입 체력장에선 가까스로 만점을 받았다.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어도 나는 운동이란 것을 거의 하지 않았다. 살 좀 빼볼까 싶어 헬스장에 석 달을 등록하면 삼 일을 가고 그만이었다. 남들 많이 탄다는 사이클을 해볼까 하다가 쫄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사실에 기겁해서 맘을 접었다. 요가를 해보고 싶기도 했으나 지나가는 레깅스 입은 아가씨들의 뒤태를 보고는 자신감을 상실한 채 또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이런 내가 몇 해 전부터 운동이랄 것은 없으나 ‘걷기’를 한다. 우연한 기회에 언니와 ‘걸어보자!’라고 한 이후 지구 반대편의 자매는 함께 걷기 시작했다. 서로의 걸음을 카톡에 인증하며 걸었는데, 집에서 나설 때까지는 매번 귀찮았다. 하지만 막상 나서고 나면 바람과 햇살 속을 걷는 것은 즐거웠다. 그뿐만 아니라 걸으면서 생각한 것들은 그대로 글이 되었다. 그래서 더 오래, 더 많이 걸을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여자축구에 푹 빠져있는 친구는 걷기 따위가 무슨 운동이냐고 말한다. 함께 걸어보자고 꼬드긴 딸아이는 그렇게 정처 없는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산티아고 갈래?”

어느 날 언니에게 툭 던져본 한마디는 그대로 실제적인 계획이 되었다. 이제 내년 3월 산티아고길을 걷겠다는 목표로 언니와 나는 매일 ‘걸어야 한다’라고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주문을 외는 중이다. 

지구 반대편의 언니는 헬스도 시작하고, 동네를 좀 더 열심히 걷는다. 나는 걷기의 핑계를 만들려고 일부러 먼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오기도 한다. 함께 공유하는 걷기 앱에 서로의 매일 걸음수가 찍힌다. 시차 덕에 언니의 어제는, 나의 오늘 걷기의 목표이며 자극제가 된다. 아마 언니도 그럴 것이다.


물론 우리 자매는 걷기 연습을 해야 한다고, 서로에게 짐이 되면 큰일이니 체력훈련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사실 손가락 운동을 더 많이 하고 있긴 하다. 산티아고 걷기가 끝나면 주변을 여행하자며 그 정보를 찾아보느라 바쁘다. 걷겠다는 사람들이, 막상 식당에서 뭐든 주문해 굶지 않고 먹으려면 스페인어 몇 개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뜬금없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순례길을 먼저 걸었던 사람들이 이런 것은 꼭 필요하다고 하는 말엔 벌써 무언가를 지르느라 쇼핑몰을 열심히 드나들며 클릭을 한다.      


어쨌거나 나는 오늘도 열심히 걷는다. 내년 봄 산티아고를 걷는 상상을 할 때면 이렇게 매일 걷는 동네 산책길은 먼지 풀풀 날리는 스페인의 순례길로 변신한다. 운동화에 가벼운 차림으로 동네를 걷는 나는, 배낭을 메고 뜨거운 스페인의 한낮 태양이나 미스트처럼 흩뿌린다는 그곳의 빗속을 걷는 순례자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내가 걸었던 시간은 글이 되고, 글들은 모여 내가 되었다. 내년 봄 산티아고를 향해 걷는 여정의 나날들은 또다시 글이 되고, 내가 될 것이다. 그러니 봄의 산티아고를 위해 운동화 끈을 조이고, 집 밖으로 나서본다. 이렇게 오늘도 바람과 햇살 속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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