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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Dec 01. 2021

책,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

참석자 ; 전명원, 순례자 인척 하는 자의 순례 여행기,  매여울 도서관, 독립서점들

                    

   전명원; 한 해가 참 빨리 흘렀습니다. 식상하지만, 해마다 이 시기쯤 되면 이 멘트 이상의 인사말은 없지요. 이런 흔한 말 외에 좀 더 신박한 표현이 없을까 매해 생각해보지만 딱히 없네요. 하지만 올해도 한해의 끝자락에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된 것을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시간이 멈추지 않고 흐른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고민이니까요.

2021년의 끝자락에 책, 그리고 책들의 공간인 여러분들을 모시고 저와 함께  해주신 올 한 해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싶었어요. 우리는 그 어느해보다 의미있는 시간을  함께 했으니까요.     


   '순례자 인척 하는 자의 순례 여행기' ; 저는 올해 태어났어요. 정식 출판은 아직입니다만, 세상에 이름표를 처음 내보이던 날이 생생합니다. 인디자인이란 프로그램 속에서 제가 조금씩 만들어져서 활자로 세상에 나왔을 때는 날개를 단 기분이었지요. 

그런데 저자이신 명원님께서는 딱 하루쯤 좋아라 하더니, 이내 이런저런 지적을 해대는 통에 좀 풀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더 멋지게 다듬어주시겠다고 한 새로운 제 모습을 기대하고 있어요. 사실, 몇 달간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열어놓고 이것도 모르겠다, 저것도 모르겠다며 혼자 끙끙대던 명원님을 생각하면 할수있을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전명원 ; 뜨끔하네요. 한 번에 멋진 결과물을 완성시키고 야심차게 출간도 해보고 싶었습니다만, 인디자인은 어려워도 너무 어렵습니다. 그리고 상상과 실제의 결과물은 또 다르더라고요. 도저히 그대로 내보일 수 없었어요. 좀 더 보강해서 멋지게 다시 해보고 싶은 제 맘을 이해해주시는 것 같으니 다행입니다. 

 출간의 기쁨만 생각하며 편집을 했는데, 가제본이 나오고 보니 출간의 무거움이 더 느껴지더라고요. 일단 찍어내 놓으면 되돌릴 수 없다, 라는 것은 역시 무겁고도 무거운 책임감이었어요. 새해엔 좀 더 멋진 모습으로 꼭 만나보고픈데, 큰일입니다. 그사이에 인디자인 배운것을 반이상은 잊어버린것 같단 말이죠. 하하하.      


   매여울 도서관 ; 명원님과 저는 길을 하나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어요. 예전 명원님은 앉아서 주로 수업할 교재를 보고 있더군요. 수필을 좋아하는 사람이 왜 미적분  프린트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일까 안타까웠답니다. 그런데 세상에나! 명원님,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올해엔 한 달이면 삼십 권이 넘는 책을 읽어대는 명원님을 보았어요. 반갑고, 신이 납니다. 이제 드디어 명원님이 꿈꾸던 삶을 살고 있구나 싶어서 명원님이 서가에 들어서면 흥분해서 이 책 저 책들에게 마구 소리 질렀어요. 

"명원님 등장! 다들 얼른 책등을  한껏 내밀고 어필하세요! 저분, 우리 도서관 큰손이에요! "     


   전명원 ; 네, 저는 올해부터 그간 꿈꾸던 '출근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어요. '돈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는 지금이 좋기도 , 살짝 불안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제 그만 느슨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에는 정말 만족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었다, 글을 못썼다.. 이런 것은 다 핑계겠지요.  이제 더 이상 댈 핑계가 없으니 열심히 읽고, 돌아다니고, 쓰고 있습니다.  

집 앞에 길만 건너면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에요. 이제 서가에 들어설때면 여러분들의 즐거운 외침소리가 들려오는것을 상상하게 될테니 그 기분좋음이 몇배는 늘겠군요.     


   독립서점들 ; 저희 역시도 올해 명원님을 자주 만났군요. 사실 꽤 여러 해 전 한번 독립서점에서 책을 만난 이후 명원님이 많이 실망했던 적이 있었지요. 오탈자도 많고, 내용도 실망스럽다고 한동안 명원님은 독립서점을 찾지 않았어요. 올해 다시 발걸음을 하기 시작한 명원님이 무척 좋아하던 표정이 생각나네요. 예전과 달리 너무 다양한 내용과 눈길 끄는 표지, 그리고 읽을거리들이 넘쳐난다고 한동안 집 근처의 독립서점 이곳저곳을 찾는 모습이 정말 뿌듯했어요. 언젠가는 명원님의 책도 저희 공간에 품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전명원 ; 아, 맞아요!  올해는 독립서점을 자주 다녔지요. 재기 발랄하고, 감동적인 많은 독립 서적들을 읽었어요.  서점지기들의 삶에 대해서도 종종 생각해봤습니다. 분명 무언가를 파는 가게이지만, 또 무언가를 파는 건 아닌 것 같은 이중성이 독립서점에는 있어요. 

집에서 멀지않은 몇곳의 독립서점이 있지요. 그중 한곳은 본인이 직접  책을 낸 작가이면서 책들의 공간을 운영하는 젊은 서점지기의 공간이에요.  "전명원 님, 이제 저에게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라고 저자인 서점지기가 해준 사인이 적힌 책을 들고 나온 날을 가끔 떠올립니다. 언젠가 저의 이야기도 이곳저곳 크고 작은 서점의 서가한켠에 꽂혀 사람들에게 조곤조곤 말을 건네볼 날이 오길 소망하면서요.     


한 해의 끝자락에서 책과 그들의 공간인 여러분과 이렇게 소소한 마음을 꺼내놓는 시간을 보내게 되어서 참 좋습니다. 해가 바뀐다는 것이 어제가 오늘이 되는 것처럼 특별할 것이 없는 일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간밤의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것만큼 굉장한 일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일이 오늘인 새날을 맞이하는 일도 그러한데, 해가 바뀌는 일이라면 더 엄청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2022년에도 저는 여러분들을 늘 가까이에서, 함께 많이 만나고 싶습니다. 여러분과 함께 하는 또 한해라면, 365일 모든 하루가 늘 새것같이 희망차고, 가슴 뛰는 시간들이 될 것이 분명해요.     



*2w매거진 18호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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