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명원 Dec 31. 2021

한 해를 보내며

한해의 마지막 날이다. 한 장 남은 달력의 마지막 숫자를 물끄러미 보며 올 한 해를 생각한다.

'더 이상 출근하지 않는 삶'을 이룬 한 해였다. 다소 느슨하게, 일생 꿈꾸어오던 시간을 보냈다. 한 달에 이삼십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또한 열심히 썼다. 

읽은 책은 더러 잊었고, 열심히 쓴 글은 더러 지웠다. 그래도 괜찮았다. 

늘 또 다른 책을 읽었고, 오늘의 글을 썼다. 무엇이 남고, 무엇이 될까는 굳이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생각해보면 매일이 새 날이니, 오늘의 한 해가 가고 내일의 새해가 오는 것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떠서 새 날을 맞는 일은 엄청난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새날을 맞았는데 무려 그날이 2022년의 시작이라면 얼마나 더 엄청난 일이겠는가.

"나는 공돌이라 그런지 새해라고 별 특별한 감상 따위는 없는데..? "라고 했던 친구도 있었다. 공돌이와 새해의 특별한 감상이 없다는 것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새해라고 특별할 것은 없다는 것이었을 테다.


가끔 이모를 생각했다. 이모는 엄마와 자정이 넘도록 전화로 수다를 떠셨다고 했다. 잠이 없어진 노인 둘이 그렇게 전화로 긴 수다를 떨고 전화를 끊었는데 그다음 날 아침 이모의 부음이 날아왔다. 긴 통화를 마치고 자리에 누운 그 밤이 이모 인생의 마지막 밤이었고, 더 이상의 아침은 없었던 것이다.

그 이후 사람이 잠을 자고 일어나 맞는 아침이 얼마나 큰 기적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잠에 들며 매일 죽는다. 그리고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며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떠나며 무언가 하나씩 가르침을 남긴다. 


한 해의 시작이 특별한 기분이었다고 해도, 그 특별함이 365일을 가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든 처음은 특별하고 새롭지만, 매일 한해의 첫날과 같을 리는 없다. 그러니 때로는 희망을 놓치고, 때로는 늘어진 끈처럼 무력했다. 시간이 그저 흐르기도 했다.

첫날의 새로움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선 시간들은 '첫'이라는 수사를 앞에 달지 않았으므로 그저 한해의 일부였다. 하지만 모든 날들은 내 인생의 첫날이자 유일한 날이다. 기억하지 못하는 올해의 많은 날들 역시 내 인생의 처음이며 마지막인 것이다.

열심히 살았던 시간들뿐 아니라 때로는 느슨하게, 놓쳐버린 시간들도 생각해본다. 잊을 수 없이 특별했던 나날들과 함께, 그저 별스럽지 않아 잊은 날들도 떠올려본다. 그 시간들의 또 다른 이름은 '익숙함'이다. 이렇게 2021년은 특별함과 익숙함으로 채워진 한 해가 되었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올 한 해의 마지막 페이지를  조용히 넘기고 있다. 아직 읽어야 할 뒷부분이 남아있다. 남은 부분의 새로운 첫 번째 챕터는 2022년이다. 

새해의 이야기는 다음장에서 여전히 이어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 그리고 그들과의 대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