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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Nov 18. 2020

나의 소울푸드

오늘의 생선구이 역시 조금 탔다. 늘 덜 익거나, 너무 태우거나 한다. 역시 불과 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음식을 하는 기본일 텐데 요리 감각 없고 눈썰미도 없는 나의 생선구이는  멀쩡한 비주얼이 나오기 쉽지 않다.


부모님이 사시던 집은 길 하나 건너였다. 오후 출근을 하는 나는 종종 부모님 댁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너 때문에 생선을 사둔다'라고  늘 엄마는 말씀하시며 냉장고의 생선을 꺼내셨다. 엄마도 아빠도 생선을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나는 엄마가 프라이팬에 촉촉하게 구워주는 생선을 좋아했다. 주로 고등어, 삼치였고 가끔 임연수어나 커다란 부세조기를 구워주시기도 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자 그리운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끝도 없었지만, 나는 고등어나 커다란 조기 따위를 마트에서 볼 때마다 엄마의 생선구이를 생각했다. 몸살이 나거나 입맛이 없을 때면 꼭 엄마가 기름지게 구워준 생선 한토막에 , 푹 끓여주는 소고기 뭇국이 먹고 싶었다. 


'할머니가 해주시던 것처럼 삼겹살 썰어서 수육 한 거 먹고 싶어"

어느 날 딸아이가 말했을 때  흔쾌히, 그러지 뭐! 했다. 너에게 할머니의 소울푸드는 그것이었구나, 싶어서.

엄마는 썰어놓은 삼겹살을 사다가 굽지 않고 물에 삶아 수육을 해주셨었다. 그래서 우리 식구는 모두 삼겹살 구이보다 수육이 익숙했다. 하지만 삼겹살을 사 와서 막상 수육을 해보려는데 처음부터 헷갈리기 시작했다. 물이 끓을 때 넣는 건가, 처음부터 넣고 끓이는 건가. 뭘 같이 넣고 끓여야 하는 건가. 이 나이 먹고 부끄럽지만, 해주시는 음식에 익숙하고 사 먹는 것에 익숙하니 집에서는 시간 없다는 핑계로 해 먹는 음식이 거의 없었다.

 음식은 맛뿐 아니라 추억도 함께 먹는 거라고 했다.   소울푸드라는 말도 그러니 생겨났을 것이다. 간혹 와서 점심 먹고 가라는 말씀에 귀찮아하며 갔던 적도 있다. 맨날 같은 국에, 생선구이냐며 툴툴댔던 기억도 있다. 그 같은 국, 그 생선구이가 이렇게 그리워질 줄 모르고 말이다.


집에서 요리를 거의 하지 않는, 사실은 요리를 못하는 나는 시간이 많아진 지금도 완제품 봉지 국으로 대부분 해결한다. 냉장고엔 종류별로 국이며 찌개가 준비되어 있다. 마트 덕분이다. 

담석증으로 아파서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제대로 먹지 못할 때, 할머니의 소고기 뭇국이 먹고 싶다 했더니 딸아이가 마트에서 사다 데워 주며 이거라도 먹어보라 하였다. 엄마의 솜씨는 아니었지만, 딸아이의 마음 씀씀이가 얹어져서 꽤 힘이 나는 한 그릇이었다. 아픈 것이 지나가고 나니 웃음이 났다.   나는 식구들에게 봉지 국을 일생 먹였으니, 딸아이는 먼 훗날 내가 없는 시절에도 마트 음식을 소울푸드로 간직하겠구나.   그럼 마트가 망하지 않고 오래오래 번창해주기를 바라야 하는 것인가.

:

아주 드물게 어떤 날은 맛있게 생선이 구워진다.   그릇에 놓으며 늘 멀쩡하게 구워냈던 듯 혼자 으쓱한다.  "이제 생선구이쯤이야! "

그러나 아직도 나는 엄마의 소고기 뭇국은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아마도 소고기 뭇국은 영원히 나에겐 엄마의 소울푸드이자, 그리운 엄마의 음식으로 남을 듯하다.

딸아이는 할머니의 삼겹살 수육을 그리워한다.  먼 훗날, 딸아이는 엄마의 소울푸드로 뭘 기억하려나 싶다.

생선구이라도 좀 더 연습해보아야 하는 걸까.  이번에는, 불의 세기를 조절하고, 시간을 좀 더 여유 있게 다루며 자글자글 기름진 고등어 한토막 잘 구워내 보고 싶어 진다. 잘 구워지면, 엄마한테 자랑해야지. " 나 생선 좀 구울 줄  안다고요!"

멀고 먼 곳에서 우리 엄마, 뭐라고 하시려나.  그 나이에 자랑이다!  하시겠지.


* 2w매거진 11호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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