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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Nov 22. 2021

마지막 수업

   학원을 운영하며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쳤으니 "쌤!"으로 불린 나날이 참으로 길었다.   그 오래 해온 일을 올해 초 접었다. 두어 달 진정한 백수의 자유를 누릴 즈음,  고1까지 다녔던 쌍둥이가 고3 마무리를 부탁하며 연락을 해왔다. 선뜻하겠다고 대답을 못하고, 다시 연락드리겠다고만 했다. 


   결국, 일주일에 두 번, 두 시간 반씩...  고3이니 몇 달만 마무리해주면 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며 아이들을 맡았다.  마지막으로 고3 한타임의 그 수업을 끝낸 것은, 수능 전날이었다. 아이들에게, 그리고 학부모에게 인사를 전하고 나서는 일로 오래 "쌤!"이라 불리던 시절을 그렇게 완전히 정리했다. 

"후딱후딱 군대 갔다 오고, 장가갈 땐 청첩장 보내고, 집에 가다가 괜히 서운하다고 울지 말고, 울 거면 여기서 울고 가! " 웃으며 아이들과 인사를 나눴다.


   집과 학원은 한동네였으므로, 길에서도 종종 아이들을 만났다. 특히 다니다가 그만둔 아이들은 저마다 반응이 참 달랐다.  저 멀리에서부터 요란하게 "쌤! 보고 싶었어요! "라며 뛰어와 와락 안기는 아이도 있었다. "어쩜 하나도 안 변하고 그대로 세요." 라며, 이제 나이 든 사람 듣기 좋은 소리를 할 줄 아는 어른이 된 녀석들도 있었다.  반면, 분명 눈이 마주쳤는데 먼저 고개를 돌리며 모른 척하는 아이들도 없지 않았다. 그럴 땐 나 역시도 굳이 먼저 아는 척하지 않고 지나갔다.

대학 들어가면 술 사준다는 약속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 녀석들도 있었으며, 예전 과외하던 아이들은 결혼 청첩장을 들고 오기도 했다. 물론 방문판매 알바를 한다는 녀석들도 있어서, 생각 않고 있던 영양제를 사주었던 경험도 있다.


   오랜 세월 아이들을 가르치고, 학원도 운영했으니 소위 진상이 없었을 리가 없다. 진상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학원도 마찬가지였다. 

시험 점수가 떨어지면 그것은 전적으로 학원의 책임인 듯 구는 학부모도 있었다. 일주일에 두 번, 두어 시간의 수업을 하는 학원이지만 그렇게 굴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학생이 매번 지각하길래 아이에게도 주의를 주고, 학부모에게는 시간 맞춰 등원하도록 지도 부탁한다고 했더니 학원에 제시간에 오게 하는 것은 학원에서 할 일 아니냐는 사람도 있었다. 학교에 지각해서 담임선생님이 연락했어도 그렇게 이야기했을까 싶었다.

비슷한 경우로 숙제를 해오지 않으면 남겨서 하고 가게 했더니 항의 전화가 왔다. 숙제를 하는지 까지 신경 쓰려면 뭐하러 돈 들여 학원을 보내느냐, 숙제 때문에 남는 바람에 다음 학원을 제때 못 갔다고 화를 냈다. 그들의 이런 반응에 깔린 것은 바로 그것이다. "나는 돈을 냈다. 그러니 나머지는 돈 받은 너희가 해야지."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내가 지불한 대가는 어디까지인 것인가 고민하는 시늉이라도 하는 과정은 애초부터 그들에게 생략되어 있었다.


부모들만 진상이며 갑질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 아이들도 갑질을 한다. "내가 돈 내고 다니는 덕에.."라는 의식은 아이들에게도 있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학원에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아이들일수록 학원에 갑질을 하려고 든다.

어느 날 버릇이 없고, 수업에 불성실하기 이를 데 없는 학생을 불러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다. "제대로 할 의지가 없다면, 수업 분위기 흐릴 것 없이 이제 학원 그만 나와라." 학생은 당황했다. 어이없는 얼굴로 대꾸했다. "제가 계속 다녀야 선생님이 좋은 거 아니에요? " 그래서 시큰둥하게 대답해주었다. "아니, 네가 그만둬야 내가 좋은 거야."  그 학생이 그만두고 학원을 나가며 나에게 한 말은 이랬다. "먼저 학생더러 그만두라고 하는 학원은 여기가 처음이에요."  학원 문을 나서는 아이 얼굴에 쓰여있었다. '학원 따위가 감히 나를 잘라? '


   대부분의 아이들은 친구처럼 편안했고, 점수와 관계없이 이쁘고 사랑스러웠다. 나 역시 학교 다닐 때엔 선생님들이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예뻐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직업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며 느낀 것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이쁜 것이 아니라 잘하려고 노력하는 아이가 예뻐 보였다.  수학 성적은 늘 30점대였어도 말이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집중 안 하고 계속 같은 소리에서 맴돌고 있는 아이에겐 짜증이 났다. 상습적으로 늦거나, 과제를 해오지 않는 아이들에겐 화가 났다. 요즘 아이들 말투가 그런 걸 알면서도 버릇없는 말에는 울컥하기도 했고 말이다.

 어느 날은 몸도, 맘도 피곤해서 수업에 꼭 필요한 말만 했다. 평소에 나는 아이들과 잘 웃고 떠드는 선생님이었기에 아이들은 금세 뭔가 다른 분위기를 감지했다. 그때 한 녀석이 눈치가 없는 건지, 빠른 건지 알 수 없지만 한마디를 했다. "선생님! 왜 오늘은 농담도 안 하시고, 웃지도 않고, 엄청 딱딱해요? " 

순간 '내가 개그맨이냐?' 하며 버럭 소리 지를 뻔했다. 그때였다. 다른 학생이 문제를 푸는 펜 놀림을 멈추더니 갑자기 어른스럽게 말했다. "야! 쌤도 사람인데 어떻게 맨날 농담하고, 웃고 그러냐. 쌤도 웃기 싫고, 말 안 하고 싶을 때가 있으신 거지. 자식이 눈치가 없어도 너무 없어." 그 학생의 어른스러운 말에 갑자기 마음이 녹아내리며 웃음이 났다. 쌓인 스트레스로 맘도 몸도 무거워 세상 귀찮던 그 순간, 어쩐지 내 맘을 다 아는 듯한 그 아이 말 한마디에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래서 이 일을 좋아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종종 '감정노동자'라는 말을 접한다. 콜센터에서도 전화연결전 누군가의 가족인 직원에게 폭언을 하지 말라는 멘트가 나오며, 아르바이트생에게 예의를 지켜달라는 문구를 써놓은 상점도 더러 있다. 

버릇없는 아이들이나 개념 없이 구는 학부모들 이야기를 하며 함께 일하던 강사와 술잔을 앞에 두고 성토를 한 적이 있다. "우리도 감정노동자예요, 그렇죠? " 그리고는 뒤에 한마디를 더 붙였다. " 혹시 내가 원장이라고 선생님한테 갑질 하는 거 있으면 바로 얘기해줘요. 설마 나도 진상인 건 아니죠? " 그날 강사와 나는 오래 웃고 떠들고 헤어졌다. 다음날 출근해서 만났을 때엔 스트레스 대신 숙취가 남았지만, 며칠 안가 또다시 같은 스트레스는 또 쌓이는 것이 일상이기도 했다.

   가끔은 늘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수업을 해야만 하는 일이 힘든 순간도 있었다.  개인적인 나의 기분을 드러내는 것은 당연히 일하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지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학부모이거나 순간 욱해서 책상을 박차고 나오고 싶게 하는 버릇없는 아이들의 반응에도 즉각 조건반사로 대응할 수는 없었던 시간들을 가끔 떠올려보기도 한다.


   꿈꾸던 '더 이상  출근하지 않는 삶'의 첫날 아침이었다. 햇살 잘 드는 거실 창가의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었다. 나 역시 삶의 바다에 떠있다. 어제 그랬던 것처럼, 오늘 역시 같은 바다 위에서 항해하는 중이다.  하나의 수업이 끝나고 더 이상 출근하지 않는다고 해서 항해가 끝난 것은 아니다. 어제의 항해가 끝나고 오늘 새로운 항해를 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 역시 같은 배를 타고 항해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어제와는 다른 방향을 보고, 다른 생각을 하는 내가 되었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파도가 배에 닿아 부서진다. 앞으로의 항해 길은 적당한 파도와 선선한 바람, 그리고 온화한 햇빛이 함께 했으면 한다.

   언제나 화창한 날씨만 있을 수는 없겠으나, 많은 화창한 날의 기억은 더러 비바람 치는 하늘 아래 폭풍우 속을 항해하는 순간이 있더라도 헤쳐나갈 힘을 줄게 분명하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 정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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