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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Nov 30. 2021

11월, 접는 분위기

   드라마 '공항 가는 길'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것은, 잘생긴 남주와 여주가 저지르는 사랑이야기 때문도 아니었고, 저런 곳을 어찌 찾아냈나 싶은 아름다운 풍경 때문도 아니었다. 

그 드라마가 오래 남은 것은 대사 한마디 때문이었는데 서울의 남자는 제주의 여자에게 말하길 '지금 11월의 서울은 접는 분위기... 그러니 오지 말라'라고 한다. 11월은 접는 분위기. 그 표현이 참 오래도록 이즈음이면 기억났다. 

끝난 것은 아니지만, 끝이 다가오고, 그 끝을 준비하는 11월의 느낌이 '접는 분위기'라는 한 마디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었단 말이지.


   알림을 따라 확인한 브런치 이웃 작가님의 글은 11월을 보내는 소회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오늘이 11월의 마지막 날이었군,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11월이라면 아직 늦가을이라며 우겨볼 만 한데, 12월이라고 한다면 더 이상 빼도 박도 할 수 없는 겨울이다. 게다가 달력은 마지막 장이다. 한해의 달력 첫 장을 여는 기분과 마지막 한 장을 남기는 마음이 아무래도 같을 수는 없다.

 

  날짜는 무한히 확장되지 않는다. 삼십여 일이 지나면 달이 바뀐다. 열두 달이 지나면 해가 바뀐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 달이 바뀌고, 해가 바뀌지 않아도 인생이 흐르는 동안 꾸준히 늙겠지만, 해가 바뀌는 일은 인생의 나이테를 긋는 일이겠다. 어느 해엔 좁고 가느다란 나이테가, 또 다른 어느 해선 넓고 두꺼운 나이테가 그어졌겠지.


   올해는 아직 12월 한 달이 남았다. 끝은 아직 아니지만, 끝이 다가오는 11월의 마지막 날에 올해의 나이테를 생각한다. 아직 남은 한 달은 잉여가 아니고, 덤이 아니다. 남은 한 달도  나이테를 마저 잘 그려보기로 한다.  그 이후 새해엔.. 또다시 새로운 나이테를 그리기 시작하면 된다. 인생이란 결국 나이만큼의 나무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한그루의 나무를 나이만큼의 세월 동안 키우는 것일 테니 말이다.


   11월의 마지막 날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해가 지고, 바람이 꽤 불어댄다. 겨울비는 내릴수록 겨울을 재촉하는 비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12월엔, 춥겠다. 그러나 마음은 따뜻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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