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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Jul 05. 2022

마법이 풀리는 시간

                         

‘마술을 대극장에서 본다고? 그게 텔레비전으로 보는 거랑 뭐가 다르겠어?’ 

반신반의했지만, 함께 보자며 결코 싸지 않은 티켓을 예매한 딸아이에겐 그런 맘은 감추었다. 오히려 엄청 기대된다고, 재미있겠다고 했다.      


엄마는 자식에게 베푸는 것은 당연했고, 내 자식에게 무언가를 받는 것은 마음이 편하지 않다고 늘 말했다. 옛날 사람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것은 엄마 성격이었을까. 아마도 둘 다였을 것이다. 게다가 알뜰하기 이를 데 없어서, 실용적이지 않은 선물에 대해서는 그 값어치를 굉장히 아까워했다. 나이를 먹은 후에, 내 살림을 하면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끝내 이해할 수 없기도 했다.     


나는 다른 이가 내게 건네는 선물은 맘에 들지 않아도 격하게 좋아하며 받는다. “뭐하러 이렇게 비싼걸 사 왔어?” 이런 말도 절대 하지 않는다. 선물이라는 것이 물론 의무감에서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순수하게 주는 기쁨뿐 아니라 반대급부를 생각하는 선물도 있다. 그 어떤 경우든 선물이란, 어떤 것으로 할까 고르며 순수하게 즐겁거나, 나에게 되돌아올 무언가를 기대하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선물 받은 사람의 예의는, 받은 자리에서 풀어보는 것이 아니라 반갑게 좋아해 주는 것이라고 여긴다. 받은 이후의 쓰임이야 그는 모르는 것이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에게 받은 선물은 또 다른 어느 시간, 다른 장소에서 내가 그에게 선물하면 된다.     


여름은 해가 넘어가는 시간에도 더웠다. 집 가까운 공연장을 향해 세 식구가 걸었다. 아직도 뜨거운 햇살을 피해 그늘을 찾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착한 공연장에는 생각과 달리 사람이 엄청 많았다. 심지어 만석이라고 했다. 놀라운 일이었다. 마술이라면, 데이비드 커퍼필드의 마술쇼를 텔레비전에서 봤던 것만 기억하는 사람이 나였다. 이은결, 최현우 등의 젊은 마술사들이 더러 예능프로그램에 나오기도 하면서 낯익기는 했지만 그것이 다였다. 그런데 참 많은 사람이 매직쇼를 보러와 있었다.     


매직쇼는 상상 이상으로 재미있었다. 두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나 완전 소름 돋았어! 굉장하다! ”

우리 가족은 흥분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어둠이 내린 거리를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술에 관해 이야기했다. 괜히 마술이 아니고, 역시 매직이었으므로, 우리는 끝끝내 그 트릭을 알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신나고 재미있는 것이기도 했다.

딸아이가 사준 표가 아니었다면, 아마 내가 자발적으로 마술쇼를 보러 가는 일은 없었을 것 같다. 그것은 텔레비전에서나 보는 것이지, 라고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딸 덕분에 진짜 재미있었네. 다음번 시즌에 새로운 쇼를 하게 되면 또 보고 싶다.”

누군가 내게 건네는 선물은 무엇이든 기쁘고, 반갑게 받는 나였지만 딸이 선물한 매직쇼는 진짜 새로운 세계였다.      


마술사는 쇼를 끝내며 말했다. 이미 시작부터 정해져 있었던 많은 것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의 마술은 마술이기도 했고, 심리학이라고도 했으며, 뇌과학이라고도 했다. 그의 위트 넘치는 쇼맨십과 기술로 포장된 그것은 어쨌거나 멋진 마술쇼였다. 나는 문득, 엄마를 생각했다. 

“그 비싼 걸 뭐하러….”라고 말했을 게 뻔하지만, 엄마에게도 때로 어떤 것은 즐거운 시간이 되었을지 모른다. ‘엄마는 이런 거 돈 아깝다고 안 좋아하니까….’라면서 지레짐작으로 미루어놓았던 건 없을까. 멀리 떠난 부모님을 생각할 때, 늘 후회로 남는 많은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한다. 

자식의 마법인지도 모르겠다. 자식은 자식이라는 마법에서 풀려나는 순간에 이르러서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 해가 지고 난 여름밤은 어느새 조금 선선해져 있고, 밤하늘엔 별도 더러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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