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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ug 18. 2022

좋은 시절, 그리고 좋은 날

    


                             

그 무엇도 영원한 것은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 나라 최고의 부를 일구었다는 대기업의 총수 역시 일생동안 모은 많은 것들을 두고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갔다. 일반인들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와 부피를 가진 많은 것들도 어느 것 하나 가져가지 못했다. 대신 그의 일생에 걸친 수집물들은 세상에 내놓아져 많은 사람이 그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었다. 

이것이 원래 그의 계획이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순수한 예술적 감상만으로 작품들을 수집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인이 일생동안 모은 작품들을 보면서 그 수집가에게 잠시 마음속으로나마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의 수집품은 방대해서 한 번에 다 전시할 수 없는지 회차마다 구성이 조금씩 달랐다. 지난 회차의 인왕제색도가 빠져서 아쉬웠지만, 미술에 큰 관심이나 조예가 깊지 않아도 익숙한 작가들의 이름이 꽤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오래된 유물부터 현대미술까지, 국내 작가부터 모네의 그림까지 모여있는 작품들은 참으로 다양했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두고 모은 것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돈이 있다고 해서, 보는 안목이 있다고 해서 그 수집의 과정이 수월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많은 작품들 사이 세년계회도앞에 오래 서 있었는데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 그림보다는 세년계회도의 서문 글귀였다. 

“모두 기억할 수 없어 기록으로 남긴다. 좋은 시절은 다시 오기 어렵지만, 좋은 일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요즘의 사진처럼 예전에는 모임이나 행사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던 모양이다. 하긴 정조대왕의 능행차그림을 보더라도 그 세밀하게 풍경을 남긴 것을 보면 그 시대에도 사진처럼 순간을 오래도록 다시 꺼내 보고픈 사람의 마음은 다르지 않은 듯하다. 물론 서문에서처럼 기록의 목적도 분명 있었을 테고 말이다. 

세년계회도 역시 모임의 풍경을 남긴 그림의 일종이라고 하는데, 그림 속 풍경과 함께 서문의 문장을 읽고 또 읽었다.      


사진으로 순간을 남기거나, 동영상으로 시간의 흐름을 남긴다고 해서 그 좋았던 시절이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되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잊고 있던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는 일은 좋은 일이다.

사진을 찍고 클라우드에 넣어둔다. 가끔 알람이 온다. 생각지도 않은 순간에 일 년 전 오늘, 삼 년 전 오늘, 혹은 십 년 전 오늘의 사진을 보여준다. 잊고 있던 그 순간이 잠시 그렇게 불쑥 다가온다. 좋았던, 그리운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진 속 일 년 전의 나, 십 년 전의 우리를 보는 일은 좋은 일이다.      

수집가의 손에 이끌려 들었다가 이제 세상의 많은 사람 앞에 선 오래된 작품들 사이를 마저 천천히 걸었다. 어쩐지 나에겐 ‘좋은 시절은 다시 오기 어렵지만, 좋은 일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라는 그 서문의 글귀가 이 전시를 대표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전시를 다 보고 밖으로 나와 여름 한낮의 햇살 속을 걸어 돌아오며 생각했다. 다시 올 수 없는 좋은 시절이, 좋은 일로 오래 남겨지는 일을 해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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