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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Aug 26. 2022

숨을 불어넣어 피어나는 소리, 대금

작은 공간 안에 끊어질 듯 이어지는 대금의 선율이 가득 들어찼다. 그 어느 악기든 그렇게 바로 앞에서 연주자가 연주하는 것을 보고 들은 기억이 없다. 대부분의 연주회라는 것은 멀리 무대에서 연주하는 풍경이 익숙하다. 물론 넓은 홀을 가득 휘돌아오는 음악의 선율도 나름의 맛이 있지만, 이렇게 열 명도 채 안 되는 청중이 전부인 작은 음악회는 퍽 인상적이었다. 

동네의 작은 책방이라는 공간은 책을 파는 곳이면서 음료를 마시며 쉬어갈 수도 있는 공간이다. 거기에 더해 무언가를 배우거나 나누는 모임의 장소이기도 했다. 가을로 조금씩 다가서며 제법 선선해진 늦은 여름밤, 책방은 이렇게 대금 소리로 가득한 공간으로 변신했다.

대금연주자는 눈을 감고 연주했는데 악기에 숨을 불어넣을 때, 마치 그는 동떨어진 곳에 혼자 있는 사람 같았다. 대금을 부는 그는 그렇게 자기만의 공간에 있었고, 그의 연주를 듣는 나는 나대로 대금 소리로 둘러싸인 낯선 공간에 혼자 있는 기분이었다. 그곳은 책방이었으나 또한 책방이 아니기도 했다. 

     

다들 알고 있듯 대금은 대나무로 만들어진 우리의 악기로, 서양의 리코더처럼 앞으로 부는 것이 아니라 옆으로 불어 소리를 낸다.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는 한 개의 취구와 여섯 개의 지공이 뚫려있어 그것으로 음의 높낮이를 조절한다고 한다. 구멍의 크기에 따라서, 혹은 그 간격에 따라서도 미묘하게 음 차이가 있어 연주자들은 저마다의 대금을 갖는 일이 기성 제품 사듯 쉽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갈대 속청인 얇은 막을 붙여서 세게 불 때는 특유의 떨리는 소리를 낸다. 연주자는 연주 시작 전에 악기와 곡에 관해 설명하며 그 청의 소리를 잘 들어보라고 덧붙였다. 

그는 네 곡을 연주했다. 정악과 산조를 섞어서 들려주었는데, 그가 이야기한 청의 소리는 마치 바람이 지나가는, 마음이 떨려오는, 창호지를 넘어오는 아련한 불빛처럼 느껴졌다.      


듣는 귀가 달리 있지 않은 나는, 그가 연주한 곡을 일일이 구별하며 느낄 수는 없다. 하지만 대금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이 소리로 가득한 공간을 느꼈다면, 그가 대금 하나로 만들어낸 그 공간을 충분히 즐긴 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그가 마지막에 연주한 ‘상령산 풀이’는 내가 대금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러한 느낌들을 실재하는 것으로 펼쳐 보여주었다. 

  소리는 끊어질 듯 이어졌다. 

  창호지를 바른 창밖으로 스며 나오는 불빛처럼 아른거리기도 했다. 

  작은 구멍을 통과하는 바람 소리기도 했다.

  마음은 문득 슬퍼지기도, 이내 강인해지기도 했다.     


연주가 끝난 후 그는 대금이라는 악기에 대해 짧게 이야기했다. 대나무로 만들어진 대금은 양쪽에 골이 있었다. 그래서 쌍골대라고 한다는데 단단해서 더 좋은 대금이 나오므로 그것으로 대금을 만든다고 한다. 예전과 달리 굵고 좋은 대나무를 구하기 쉽지 않다는데 무엇이든 참 흔해진 시대 같지만, 또 어떤 것은 이렇게 귀해진 시대이다.

그가 가까이 보여준 대금은 통으로 된 하나의 대나무였으므로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는 취구가 위치한 곳이 바로 뿌리 부분이었다. 그래서 취구 부분을 자세히 보면 윗부분의 매끈함과 달리 잔뿌리를 정리한 흔적이 보였다.     


대금의 취구에 입을 대고 바람을 불어넣어 여섯 개의 구멍을 조절해가며 소리를 낸다. 잘린 대나무의 뿌리에 숨결을 불어 넣어 소리가 피어난다. 연약한 듯 강인한 대금의 소리는 어쩌면 그 뿌리에 숨결을 불어 넣기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돌아오는 밤거리, 골목엔 대금 소리 같은 바람이 길게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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