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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명원 Dec 08. 2021

하우스 - 박정석

   도서관 서가를 걷다가 우연히 집어 든 책이다. 집을 짓는 일이 딱히 궁금한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오래전 집을 지어본 적이 있다. 지나고 나니 '수월하게 지은 편'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시간의 마법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집 짓는 일이 그리 녹록지는 않았던 기억으로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작가가 왜 바닷가의 집 짓기에 대한 로망을 갖게 되었는지 그 부분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엇이든 그러하겠지만, 대부분의 커다란 어떤 일은 참으로 소소한 이유거나 어린 시절의 작은 꿈에서 출발하는 법이다. 그러니 꿈을 이루었다는 사람들은 불굴의 의지와 노력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오래 잊지 않고 간직할 줄 아는' 사람들 인지도.

집을 지으며 좌충우돌 속 터지는 경험들이 나온다. 공사현장의 인부들을 상대하며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 집 짓기의 무대일 테니 말이다. 때로는 웃음이 나고, 때로는 혀를 끌끌 차게 된다. 어떤 부분에서는 나 역시 경험했던 건축주의 입장을 공감하며 울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내 인생 최초의 집을 지었던 것은 2002년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즈음이었다. 동네가 택지개발지구의 단독주택용지에 면해 있었으므로 집 짓기의 현장은 흔했다. 그래서 겁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덜컥 집 짓기를 시작했다.

계약서에 없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든지, 명시된 제품이 아닌 것으로 자꾸 설치하려 한다든지 하는 일은 흔했다. 소소한 일은 그냥 넘어갔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큰소리가 오가기도 했다. 그래도 그만하면 험한 소리까지 하지 않고, 크게 얼굴 붉히지 않고 집이 만들어졌다. 

열두 해를 살고 우리 가족은 그 집에서 이사했다. 그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이는 초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되었다. 어렸고, 젊었던 강아지는 주둥이가 하얘지고, 백내장으로 앞을 잘 못 보게 되더니 급기야 치매를 앓다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우리 부부는 함께 나이를 좀더 먹었다. 책을 읽으며 우리의 '보람빌'을 내내 생각했다. 많은 일이 있었고, 그만큼 많은 추억으로 남겨진 곳이었다.


   아직도 그 집에서 첫밤을 보내던 날을 잊지 않고 있을만큼 그 집은 특별하고도 특별하다. 물론 처음 마음이 그대로 십 년 넘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매일 올라가 해바라기라도 할 것 같던 로망 가득했던 옥상은 한 달에 한번 올라갈까 말까 했다. 그저 옥상은 기르던 강아지의 놀이터였을 뿐이다. 작은 마당엔 화단을 가꾸어야지 했지만, 아래층에 임대를 주었던 원룸 세입자들의 자전거 보관소와 쓰레기집하장으로 전락했다. 주택살이는 손이 많이 갔다.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에도, 배관을 얼릴까 걱정되는 한겨울에도 주택은 그렇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다.


   이제 우리 가족은 더 이상 주택에 살지 않는다. 아파트살이는 편하다. 하지만 주택살이의 로망이 없어진 것은 아니어서 요즘도 지나가며 예쁜 주택을 보면 눈길이 간다.  그래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우스'라는 이 책을 서가에서 집어 든 것은 말이다.

떠나온 지 칠 년이 되었어도 아직도 보람 빌을 떠올리는 것은 기나긴 장마철이거나, 한파가 몰려오는 어느 겨울 아침일때가 많다. 그리움보다는 '그래, 신경 쓸 것 없으니 역시 아파트가 편하긴 하지.'라는 안도감이 먼저였다. 그런데 책장을 덮었을 즈음엔 잊고 있던, 아주 가끔 떠올릴 뿐인 우리의 '보람빌'이 만난 지 오래된 옛친구를 떠올리듯 그리워졌다. 


   책 말미부분에는,  집이 거의 다 완공되었을 즈음 목수가 지나가는 말로 "이제 이 집에서 사는 것처럼 사시겠네."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나온다. 언덕 위에 조망이 좋은, 작가가 꿈에 그리던 로망을 실현한 집이었을 것이다. 작가가 책을 펴낸지 십년도 더 넘었다. 문득, 후일담이 궁금했다. 그도 나처럼 그 언덕위의 집을 떠나서 가끔 그리워하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 그곳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나는 우리의 '보람빌'을 다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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